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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신이 배 아파서 낳은 아이가 어떻게 귀하지 않을 수 있을까?
 요즘같이 아이를 한두 명 낳는 시대는 정말 아이에 대한 부모의 정성이 지극하다. 마트를 가든 패스트 푸드점에 가든 엄마 아빠들의 자녀 시중이 대단하다. 혼자 할 수 있도록 습관이 들여져야 하는 일에도 어김없이 엄마 아빠의 손길이 앞선다. 힘든 건 모두 엄마가, 아빠가 해결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주면서 부모 본인이 행복감을 느끼는 것 같이 보인다. 야단을 쳐야 할 때도 그지없이 너그럽다. 식당이나 지하철 같은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모인 공공장소에서 아이가 소란스럽거나 버릇없이 행동을 할 때도 아예 제재가 없던지 솜 방망이 꾸지람이 전부다. 그냥 야단치는 시늉만 할 뿐이어서 아이는 정작 본인의 잘못을 느끼기 쉽지 않게 되는 것이다. 옛 어른들 말씀처럼 귀할수록 엄하게 키우라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아이가 자라면서 들어가야 할 집단내의 상호관계나 대인관계, 아이 자신의 내면적 성장 등의 측면을 생각하면 걱정스러운 눈길이 절로 보내진다. 이러한 부모의 행동패턴 속에서 성장하는 아이들 대부분은 균형 잡힌 인간으로 자라나기 어렵다. 집단생활에서 문제를 일으키거나 자기 앞에 닥치는 문제 해결능력이 떨어지는 것이 대체적인 특징이다.
 대인 관계에서는 자기가 화제의 중심이 아니거나 자기의 의도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을 때 심한 스트레스를 느끼게 된다. 세상의 중심이 본인이고 잘못도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를 유지해왔으니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또한, 부모가 가장 공을 들이고 시키는 학습에서도 문제는 발생한다. 학습 초기 이러한 아동들은 학습부적응 현상을 나타내기 쉽다. 어떤 학습이든 시작 초기에는 의욕을 보이다가도 어려운 고비가 오면 뒷걸음질치고 흥미를 잃고 다른 학습을 시켜달라고 한다.
 그래서 이런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의 공통적인 이야기는 학습초기 다소 쉬운 부분을 배울 때는 괜찮지만 문제해결 능력이 학습되지 않아 어려운 부분을 만나면 해결하려는 의지보다는 언제나 회피하는 성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왜냐면 어려운 건 언제나 내가 아닌 부모의 몫이었으니까.
 정말 대단한 피아니스트가 될 자질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친구들과 어울려 놀거나 컴퓨터 게임에 빠져 연습을 하지 않는 경우에 있는 아이를 상담해 보면 재밌다. 자기의 문제를 아예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는 그것을 인식시키게 되는데 이 경우 인식과 동시에 자신이 문제를 해결하는 의지를 보이는 경우는 성공할 확률이 매우 높다. 인식이 되었지만 자기의 의지가 부족한 의지박약은 주위의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즉 이 경우 진정한 부모의 도움이 필요한데 이 경우 부모의 노력이 부족하면 정말 성공하기 어렵다. 왜냐면 그들은 종래의 방법이 아닌 새로운 방법으로 아이를 다루어야 하기 때문에 부모의 역할이 돼 있지 않으면 부모 자신이 힘들어 대충 역할극을 수행할 경우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기 힘들기 때문이다.
 세상의 그 누구도 연습을 하고 부모가 되는 사람은 없다. 있다면 어린 시절 소꿉놀이의 역할극이 다 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하는 모든 새로운 일들은 우리의 경험을 토대로 나의 판단력을 총동원하여 이루어질 것이다.
 오늘 하루 우리가 아이에게 내린 지시나 행동의 본보기가 우리 아이들에게 판단력과 경험의 본보기가 된다는 점을 기억하고 우리 자신의 행동을 반추해봐야 할 것이다. 나는 부모역할을 잘하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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