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과거사에 대해 '치매현상'을 보이는 일본이 요즘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모양이다. 둘도 없는 맹방으로 여겨왔던 미국이 자신들의 '치매'를 중병으로 진단한 것이 스트레스의 원인이다. 위안부 문제는 거론하기 조차 불쾌한 우리 역사의 상처이다. 역사의 기록을 읽을 때마다 얼굴이 붉어지는 이 상처를 굳이 들춰내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미래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의회가 역사적 사실에 대한 평가 차원에서 일본 정부의 사과와 역사적 반성을 요구한 이번 결의안 채택도 미래지향적인 세계를 위한 지성의 목소리라는 점에 의의가 있다.
 일본의 역사는 조작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임진왜란 시기부터 조작된 것으로 알려진 일본의 역사서 일본서기는 일본인들이 과거사 치매에 면죄부 역할을 담당해 왔다. 사실 근대화 과정에서 일본이 보인 탈 아시아적 태도는 메이지 쿠데타를 주도한 3류 사무라이들의 얄팍한 국수주의가 그 뿌리다. 이토 히로부미 등 3류 사무라이들은 300여 년 간 지속되어 오던 도쿠가와막부의 '평화의 시대'를 거부하고 '살육의 시대'를 선택했다. 그런 의미에서 메이지 쿠데타는 일본에 있어 근대화의 시작이기도 하지만, 섬나라 일본의 '광기의 역사'가 시작된 세계사의 불행이기도 했다.
 지금 일본의 1만 엔 권 지폐의 밑그림에 나오는 후쿠자와 유키치는 일본인 대부분이 정신적 지주처럼 생각하는 스승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수천 년간 일본의 멘토 역할을 해온 중국과 우리나라 등 아시아 국가들을 '터럭만큼도 도움이 안 되는 나쁜 친구'라고 비하하고 이를 이론적으로 엮어 '탈아입구론(脫亞入歐論)'까지 썼다. 아시아의 촌티를 벗고 서구와 벗이 되자는 유키치의 세치 혀에 3류 사무라이와 그들을 추중하는 일본인들은 열광하기 시작했다. 이 광기의 역사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폭으로도 막을 수 없는 현재진행형 일본정신으로 자리잡아 버렸다.
 그동안 일본이 역사교과서 왜곡이나 위안부문제에서 보인 태도는 사카모토 다카오라는 일본 가쿠슈인 대학 교수의 궤변으로 잘 드러난다. 그는 "위안부의 역사 기술은 화장실 구조에 대한 역사와 마찬가지로 교과서에 기록할 가치가 없다"고 망언을 서슴지 않았다. 당시 우리나라와 중국 언론은 위안부와 공중화장실을 같은 것으로 취급했다며 벌집을 쑤셔 놓은 듯 흥분했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자신들의 한마디 말에 흥분하는 모습을 일본인들이 오히려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우리 근대문학의 선구자로 알려진 춘원 이광수는 '탈아입구론'을 쓴 유키치를 두고 "하늘이 일본을 축복해 내려준 인물"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런 식의 친일 발언은 터져 나올 때마다 '어쩔 수 없는 시대적 상황'이라는 보호막을 치며 친일의 당사자를 옹호하는 세력이 있기 마련이지만 시대적 상황이 부끄러움을 상쇄할 수는 없는 일이다. 미 하원이 맹방 일본에 대해 결의안을 채택하기에 앞서 우리 국회는 보다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법안으로 60년 세월을 어둠속에 살아온 위안부 할머니들의 한을 보듬어 줄 수는 없었는지 답답한 마음이 앞선다.  편집부국장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