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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산업계에는 핵폭풍의 씨앗이 꿈틀거리고 있다.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끌날 수 있으나 지혜롭게 대처하지 않으면 쓰나미 같은 대재앙을 자초할 수도 있다. 아직은 어느 쪽이라고 예단할 수 없다.
 핵폭풍의 씨앗이란 사내하청과 관련해 7월 22일 대법원이 내린 판결 내용이다.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최 모씨는 현대차 울산공장 사내 하청업체에 근무하던 중 불법파업과 무단결근 등으로 해고가 됐다. 이에 반발해 법적 소송을 냈으나 1·2심에서는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청회사와 근로자의 관계가 형식상 도급관계일 뿐이고 원청회사로부터 직접 노무지휘를 받기 때문에 근로자 파견 관계로 봐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근로자 파견은 2년 이상 지속되면 사용회사가 고용한 것으로 간주된다"며 정규직으로 채용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현대차로서는 청천벽력 같은 일로 여겨질 것이다. 하급심을 맡았던 곳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2007년 4월 부산고검에서 항고 기각, 2007년 7월 부산행정법원 재심판정 기각, 2008년 2월 서울고법 항소 기각 등에서 보듯이 하급심에서 충분한 검토와 함께 불법파견이 아니라는 판결을 내린 사안이 180도 뒤틀린 데 대한 당혹감은 충분히 짐작된다. 또 비록 한 개인의 문제이긴 하지만, 자칫 일파만파의 파급 개연성을 전혀 배제할 수도 없다.

 여기서 우선 주목되는 것은 대법원이 고등법원으로 '파기환송(破棄還送)'을 했다는 것이다. 즉 대법원이 자체적으로 종결처리(종국판결)하는 '파기자판(破棄自判)'을 하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하급심인 고등법원은 두 가지 방안을 택할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대법원 판결내용을 바탕으로 정리를 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누락된 중요자료를 보완·취합해 재상고를 하는 것이다. 아직은 어느 쪽을 택할 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번 대법 판결에 따른 최종확정은 통상적으로 1년 이상이 소요되며, 사안에 따라 길게는 5~6년이 걸린다. 뿐만 아니라, 파기환송 후 번복된 사례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계 및 일부 정치권에서는 마치 모든 문제가 결정된 것처럼 호도하고 있어 또 다른 역풍이 불지 않을까 걱정된다.
 이번 대법원 판결에 대한 반응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대환영을 하는 쪽과 향후 우리 산업계가 겪을 일을 걱정하는 쪽이다. 전자는 말할 것도 없이 현재 비정규직 신분에 있는 근로자들이다. 여기에다 일부 노동단체와 재야단체나 일부 정당에서도 호재를 만났다며 환호작약하고 있다. 이들은 판결이 나기 바쁘게 울산, 아산, 전주 등 전국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연일 기자회견을 하는 등 물량공세를 퍼부으며 "지금 당장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라"고 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렇다면 이번 판결로 약 550만 명으로 추산되는 비정규직 모두가 하루 아침에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있을까? 대답은 "아니올시다"이다. 우선 이번 판결은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종국(終局) 판결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특정 개별 사안을 두고 모든 사람이 동일한 적용을 받을 것이라고 믿거나 부추기는 것도 매우 위험하다. '아니면 그만이고' 식으로 하기엔 사안이 너무 중대하기 때문이다. 작업조건이나 근로형태가 제 각각인 모든 근로자에 대해 일률적으로 판단·적용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는 마치 자신이 만든 침대 길이에 맞춰 작은 사람은 억지로 늘리고, 키 큰 사람은 발목을 잘랐다는 프로크로테스 같은 억지나 다름없다. 모든 게 그렇듯이 비정규직도 사회의 필요성에 의해 자연스레 생긴 것이다.
 사실 비정규직은 우리 보다 앞선 선진국에서 먼저 시작됐고 지금은 보편화되었다. 한 예로 도요타자동차의 경우 2000년대 들어 정규직 수를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기간공과 파견사원 등 비정규직 수를 빠르게 확대하면서 제조부문의 노동력 구성에 질적 변화를 꾀했다. 즉 2000년 3천140명 수준이었던 비정규직 숫자가 2005년에는 1만9천명을 넘었고 비중도 4.8%에서 29.1%까지 확대되었다. 지금은 다소 그 숫자가 줄었지만 여전히 이 같은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한편, 2007년 7월 파견법이 개정되면서 2005년 7월을 기준으로 고용의제와 고용의무를 정함으로써 비정규직 양산은 물론 기존 비정규직의 일자리조차 위협하고 있다. 즉 2년 이상 근로를 할 경우 무조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면 어느 누가 한 사람에게 2년 이상 일자리를 제공할 것인가. 이윤창출이 최대목표인 기업에게 "경쟁력이나 적자는 모르겠고, 사람이나 많이 고용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자본주의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이번 대법원 판결은 아직 종결상태가 아니라는 점, 또 최 모씨라는 한 개인의 문제라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지나친 확대해석이나 견강부회식의 비약은 또다른 사단을 만들 수 있다. 따라서 비정규직을 위한다는 현행 비정규직법(파견법 등)이 되레 비정규직 양산을 조장하거나 사회·경제적 지위를 저하시킬 우려가 있다면 그것부터 개선해야 한다. 결코 호들갑을 떨어서는 안 된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개선할 제도나 법률이 많다. 무책임한 단체행동이 대신 비정규직 처우개선 등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하는 지혜가 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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