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필자는 이 글을 꼭 정신과 의사라서 쓰는 것은 아니다. 그냥 일반 시민으로서 자살에 대한 견해와 느낌을 적어 보려 했다. 우리나라 자살률이 OECD국가 중 제일 높다고 한다. 하루 40명의 한국인이 자살한다고 하는데 이는 필자가 정신과 레지던트로 근무하던 1980년대 초기에는 생각하지도 못한 일이다.

하루평균 40명…OECD국가중 최고

 1980년대 초기로 말할 것 같으면 분명 환경적으로는 더 열악했던 것 같다. 만원 버스에서 시달렸던 기억, 쉬는 날도 없이 당직이 많아서 여유라고는 없었던 생활, 사회적 불안감 그리고 인권도 지금보다 훨씬 더 무시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지난 10년간 자살률이 2, 3배로 급등했다는 것이다.
 자살행동의 원인은 다면적 복합적이라서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다. 생물학적, 심리적, 사회학적 원인의 통합을 모색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당장 자살을 결심한 '그 사람'에게는 이런 모색이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

사망자 90% 정신·심리적 고통 원인

 슈나이더만이라는 심리학자는 이런 모색과는 조금 달리 자살이란 참을 수 없는 '심리적 고통 '에 대한 인간적 반응이라는 시각을 가지고 본다. 단순히 말하자면 고통을 멈추게 하기 위해서 자살을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결국 1980년대 초기보다 지금이 마음의 고통이 더 많다는 것이 된다.
 그런데 고통이란 정말 주관적이다. 객관적이라고 할 수 있는 신체적 고통이라도 그 느낌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래서 똑같은 수술을 했어도 고통 호소는 각양각색인 것이다. 그런데다  자살사망자의 60%, 심지어는 90%가 정신과적 진단이 가능한 고통에서 자살을 했다는 것이다. 즉 신체적 질병으로 자살하는 경우는 드물고 정신적 고통에서 자살했다는 것이다.

초고속 성장·핵가족화로 더욱 증가

 생각해보자. 정말 마음의 고통이 더 증가한 것인가. 1970-80년대 헐벗은 시절보다 지금이 마음의 고통에선 더 아픔이 있는 것인가?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르게 보면 고통이 더 증가한 것이기 보다는 참을성이 더 적어진 것일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4-50년간 초고속 성장을 했고 그러면서 사회문화적 변화가 많았으며 핵가족으로의 변화로 전통가족제도가 무너지며 그 핵가족마저도 높은 이혼율로 해체되고 있다. 그러면서 겪는 견딜 수 없는 스트레스 때문에 자살률이 늘고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그러나 주위에서 또 보게 되는 부정적인 현상들이 있다. 고통이라면 그것이 무조건 나쁜 것처럼 여기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무통분만, 무통시술이 유행이다. 정말 고통이라는 것이 나쁘기만 한 것인가.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쫓겨 죽음에까지 내몰렸다면 그 고통이라는 것은 과연 얼마만큼의 것일까. 자살자의 케이스리포트를 보면 참으로 참담한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이렇게 죽음 가까이 자살을 결심하는 단계까지 갔다는 것은 어느 면에서는 '진짜 삶'을 살아보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죽음 가까이 몰렸었지만 오히려 값진 인생을 되찾은 사람들이 있으며 그들의 회고록은 정말 인간 본연의 실존기록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삶의 의미 찾는다면 값진 인생 살 것

 빅톨 프랭클은 사람들이 좌절하는 것은 고통에서가 아니고 그 고통 속에 의미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고통 속에 아무 의미가 없다면 그 고통을 참고 있을 아무 이유도 없는 것이다. 빅톨 프랭클 자신은 '의미치료'에 대한 책을 써야 한다는 의미 때문에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았다고 한다.
 고통이 늘어나서 고통만이 자살이 늘어난 이유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으로부터 소외되고 의미를 잃어 가고 있기 때문에 자살이 늘어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죽음에까지 내몰리는 그 고통 속에서 의미를 발견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