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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나라 일본 미야지마의 이츠쿠시마 신사 정원 한 곳엔 하늘 높이 솟은 9간송(九幹松)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이 나무는 수령 665년생으로 이 지방 사람들은 지극정성으로 관리하며 섬기고 있는 나무이다.

日 9간송 지극정성 관리에 건강

 이 나무는 신사가 들어서기 이전부터 이곳에서 자라면서 숱한 세월동안 희노애락을 다 겪으며 살아온 역사의 증인이다.
 신목처럼 섬기는 이 나무에는 삥 둘러 새끼줄을 치고 정초가 돌아올 때마다 주민들과 내외 수많은 관광객들이 부적을 메달고 길흉화복과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아주 신성한 노목이다.
 이 나무를 얼마나 조경사들이 잘 다듬었는지 마치 미장원에서 곱게 머리를 매만지고 나온 미모의 여인같이 품세가 아름답기 그지없다. 나무 높이는 18M이고 가지 뻗음이 팔방인데 동서길이가 9M나 된다. 아홉줄기 노송이 이렇게 보기 좋고 건강한 모습은 드물게 보는 명목이다.

 우리 울산의 동헌에 가면 아쉬운대로 9간송을 볼 수는 있어도 바람에 기울어져 자란 상태여서 수형이 아름답지 못하다. 이츠쿠시마 신사의 노송에 비할바가 못 된다.
 과거 울산부에 속했던 기장군 죽성리에 가면 구로다가 정유재란 때 쌓은 왜성 아래편 바닷가 등성이에 7간송이 명품이다. 마치 외형이 한 그루가 자란 듯 멀리서 보면 볼수록 매료된다.
 몇 해 전 일본의 모대학 교수들이 저들의 조상들이 쌓은 왜성을 연구하려고 이곳에 들렀다가 이 나무의 아름다움에 반해서 그 날 돌아가지 않고 하룻밤을 더 머물고서 다음날 다시 이곳을 찾아 나무를 감상하고 갈만큼 그들의 소나무를 소중히 하는 정신과 사물을 바라보는 혜안이 우리들 보다 훨씬 앞선 사람들이다.

염포 이주마을 만신창이 된 노송

 지난 7월 초순경 동구문화원이 주관한 심포지움에 참석하려고 동구로 내려가던 중 염포 성내 이주마을에 들렀다. 시간의 여유가 있어 한동안 보지 못한 당고개의 노송을 보고 가려던 참이었다. 골목길을 돌아 소나무가 선 등성이로 가는 골목길에 차를 세우고 걸어서 다가섰다. 순간 나는 깜짝 놀라서 그 자리에 걸음을 멈추고 우뚝 섰다. 푸른 가지를 사방으로 너훌거리며 언제든 반겨줄 노송이 마치 아랫도리를 벚은 채 선 노인 같이 나무주변이 훤하게 공간이 넓었다. 그 뿐이랴? 검푸른 소나무 특유의 잎새가 빨갛게 단풍이 들어 있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무슨 영문인가 싶어 한달음에 다가서 보니 이미 껍질은 수 많은 벌레 구멍이 생겨 있고 톱질해 잘린 가지 그루터기는 흉물스럽게 상한 자국이 깊었다. 아뿔싸, 못 볼 것을 본 것일까? 가슴이 두방망이질 하며 갑자기 울컥하는 분노가 치밀었다. 도대체 주민도 그렇고 관계 당국은 무얼하고 있었기에 보호수가 이렇게 만신창이가 되도록 내버려 두고 죽게 만들었는가 생각하니 화가 치민 것이다.

 버젓하게 안내판을 만들어 붙여놓고도 여태 손 한번 쓰지 않고 관리한 흔적 하나 없으니 정말 유명무실이다. 보호수 지정번호 23호, 수종 곰솔, 소고 18M, 나무둘레 445CM, 수명 350년, 관리자 성내마을, 소재지:울산광역시 북구 염포동 산148번지.
 아마도 보호수로 지정된 지가 수십년이 넘은 듯 안내판의 글자가 비바람에 낡아 겨우 읽을 수가 있었다.
 나무를 다루는 필자의 개인적 소견으로 볼 때 400살은 훨씬 넘은 것 같은 노송은 무지한 농민이 저지른 소행으로 단명 된 것 같았다.

당국 무관심·농민 무지로 단명

 밭 농작물에 그늘이 진다고 해서 무지하게 마구잡이로 아랫가지를 잘랐으니 쌍간의 한쪽 줄기는 그로 인하여 등걸이 다 썩어 내렸다. 정말 안타까운 노릇이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 산언덕에서 염포만과 성내 만호진을 바라보며 조선의 안위를 소망했을 노목. 그 노목이 영욕의 시간을 견뎌 왔건만 이렇게 허무하게 명을 다하다니 안타까운 노릇이다.

 과거 신작로가 개설되지 않았을 때 염포에서 남목으로 오가던 수많은 길손들을 바래주고 그늘에 쉬게 했을 당산 고목.
 울산이 자랑하는 또 한 그루의 고목인 노송이 인간의 우매한 소치로 이 땅에서 영원히 자취를 감추게 되었으니 이 나무와의 인연도 염원도 모두 바람결에 사라지는 허망뿐이다. 한 그루 좋은 고목은 귀중한 문화재 이거늘 어찌 이렇게도 무심했던가? 스스로 자문하면서 노송의 죽음 앞에 조사를 올리고 싶다.
 오호, 통제라 보호수 노목의 죽음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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