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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성균 피노키오 극단 대표

무엇이든 1등만 집중하는 세상

"1등만 기억 하는 더러운 세상!?"
 얼마 전까지 우리나라 모 방송국 개그 프로에서 인기리에 방영되던 코너에 등장하는 한 개그맨의 대사다. 만취한 채 난동을 피우던 이 사내가 늦은 밤 파출소로 붙들려왔다. 신상명세를 묻는 순경과, 같은 취객 입장으로 불려 온 여인과의 해프닝 끝에 내뱉는 개그맨의 칼 같은 대사다. 그런데 3류 상황인 취객의 사내가 이 말을 할 때마다 객석에선 통쾌하다는 듯 박장대소하는 모습을 보았다.
  
   필자로선 공중파 방송이라 혹시나 아이들도 시청할텐데 더러운 세상이라 표현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이 개그맨은 거침없이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 표현했다. 그 몸짓과 말짓을 보고 들으며 유쾌한 듯 웃어대는 관객들의 모습을 보니 참 아이러니했다. 그러다 나 역시 1등 인생이 아닌 걸 깨닫고 보니 관객들의 박장대소가 이해됐다.

   얼마 전 광저우에서 열린 아시안 게임을 지켜 보며 또 하나의 아이러니를 느꼈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아시안 게임에서 1등을 하고 금메달을 목에 건 선수에게는 우뢰와 같은 박수와 환호성이 쏟아졌다. 각 국의 취재진들이 퍼붓는 눈부신 카메라 플래시와 스포트라이트가 끊임없이 집중되는 광경을 지켜 보며 주목 받지 못하는 2등과 3등의 선수들이 순간 경험했을 그 마음을 돌아보게 됐다.

앞만보고 달리던 전후세대 고난

 우리나라 전후 세대라면 기억할 것이다. 먹을 것이 없어 허리를 졸라매며 보릿고개를 지내오면서도 가정에선 오직 아이들 쑥쑥 많이 낳기를 소원했다. 그래서 우리 부모 세대가 못다한 1등의 꿈들을 자식들 세대에 가서라도 으뜸이 되고 주인되는 세상을 위해 열심히 달려온 우리 아버지들의 고단하지만 희망에 부푼 세월이 있었다.

   주린 배를 쓸어안으며 나랏님들이 시키는 대로 충직하게 새마을 운동과 경제 발전 5개년 계획의 성공을 위해 독일 탄광촌 인부로, 혹은 간호사로 몸 바쳐 충성하며 허리 휘어질만큼 오직 1등이 되자는 목표 하나로 달려온 세월이 있었다. 그 세월이 헛되지 않아 눈부신 지금의 한국을 만들어 낸 것에 박수를 보낸다. 어느덧 세월은 흘러 21세기의 시작을 훌쩍 뛰어 넘어 2010년의 한 해도 어느새 저물어 가고 있는 12월의 끝자락 앞에 모두들 서 있다.

 이젠 숨 가빴던 지난 세월을 한 켠에 잠시 내려놓고 숨 고르며 뒤 돌아보면 안될까? 1등 제일주의에다가 경제 성장 '제일', '제일'을 외쳐왔던 그 동안의 조급한 마음을 내려 놓고 이 12월의 끝에서 그동안 오직 1등을 향해서만 달려 왔던 세월! 무거운 짐 보따리 등에 지고 가파른 산길 그저 위로만 올랐던 산행! 이제 허리 펴가며 올라온 길 뒤 돌아보며 훠이 훠이 먼산도 바라보며 큰 한 숨 잠시 쉬어가면 안될까?

연말연시 그늘진 곳 돌아보며

 이 만큼 높은 산 올라 온 것도 감사한 일이라며 겸허히 자족하고 만족해보는 건 어떨까? 우리가 지닌 욕심은 끝이 없기에 말이다. 연말이 되니 국회를 비롯한 정치계와 사회 전반에 걸친 모양새들이 물 없이 끓는 솥처럼 뜨겁기만 하다. 연초에 마음먹고 다짐했던 약속들은 연말이 되면 언제나 다 풀지 못한 후회로 밀려온다. 그래서 후회란 결코 앞질러 찾아오지 않는 불쾌한 손님이다.

 얼마 전 아들 녀석 이름으로 유니세프에 매달 후원하기로 약정했다. 아들이 참 좋아라했다. 물론 생산활동이 없는 중학생 이기에 아들 녀석 통장으로 아빠·엄마가 1만원씩 입금해 주고 나머진 매달 받는 부모의 용돈을 보태어 기아에 허덕이는 이웃나라 친구들을 돕기로 아들이 스스로 작정했다. 지금도 지구 곳곳엔 먹을 것이 없어 앙상한 뼈마디를 드러낸 채 굶어 죽어가는 기아들이 숱하다. 이들을 돌아보지 않는 사회가 있다면 가진 자들과 나라들의 또다른 횡포다. 개구리 올챙이 시절 기억 못하면 안된다. 올챙이가 커서 개구리가 됐다해도 개구리의 옛 모습은 올챙이였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진리임을 기억해야 한다.

경쟁아닌 '나눔의 마음' 가지길

 거리마다 캐롤송이 울려 퍼지고 있다. 어둡고 죄 많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1등이 아닌 낮고 낮은 말구유에 3등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기리는 성탄절이 다가오고 있다. 구세군 냄비가 곳곳에 등장해 우리의 자선을 기다리고 있는 마지막 계절이다. 그 자선냄비 앞을 지날 때 우리 아이들에게 공부 잘하는 1등이 되라고만 닥달할 것이 아니라 꼭 1등이 아니어도 좋으니 가난한 이웃들을 돕고 사랑을 베풀 줄 아는 따뜻한 인간애를 가진 사람이 되길바라며 자선의 기회를 권면해 주는 진정 성숙된 1등 부모, 1등 울산 시민들이 돼주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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