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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과 관련한 두 가지 뉴스를 접했다.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수가 처음으로 1백만명을 넘었다는 소식과 유엔 인종차별위원회가 우리나라를 인종차별국가로 분류하고 단일민족국가의 이미지를 극복하라는 충고를 했다는 소식이다.


 어릴 때부터 단일민족을 훈장처럼 달고 산 우리에게 유엔의 충고는 충고를 넘어 상처가 될 수 있다. 사실 우리민족의 뿌리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는 고루하기 짝이없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단일민족이라는 코드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유엔이 간과한 부분이 있다면 단일민족이라는 단어에 함의된 일제강점기하의 공동체 정신이다. 일제의 잔재나 전쟁의 피해가 극복되지 않은 우리의 사정을 도외시한 채 "이미지를 벗어라"고 충고하는 유엔의 목소리는 그래서 어설프게 들린다.


 경남 양산에 살고 있는 버섯박사 망절일랑씨는 귀화한 일본인이다. 그는 1942년 김해에서 일본인 경찰간부의 8대 독자로 태어났다. 광복으로 가택연금 중이던 부모가 이웃에 놀러간 네 살배기 아이를 챙길 틈도 없이 강제송환 당하면서 그는 천애고아가 되었다. 이후 한국인 양부모의 성을 따라 양씨로 살던 그는 일본의 아버지와 연락이 닿아 자신의 성씨를 찾았다. 하지만 그는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고 아내와 아이가 있는 한국을 삶의 터전으로 삼았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세계적 기업인인 손정의 소프트뱅크 사장은 일본인으로 귀화하면서도 '손'이란 성씨를 버리지 않고 '손 마사요시'로 이름을 지었다. 한국의 희귀성 '망절'이나 일본의'손'씨가 보여주는 것은 역사가 가진 유기적 상호작용이며, 다문화 다양화 사회의 실체이다.
 삼국시대부터 우리나라에는 멀리 아라비아부터 가까운 중국까지 다양한 인종이 삼국의 백성으로 자리 잡았다. 여진에서 유래한 청해 이씨, 몽골에서 들어온 연안 이씨, 위구르에서 귀화한 경주 설씨를 비롯해 충주 매씨, 남양 제갈씨는 중국이 뿌리다. 베트남 왕실의 후예인 화산 이씨는 이미 유명세를 탄 귀화 성씨이고 덕수 장씨는 아라비아에서 출발해 한반도에 정착했다.


 단재선생이 일제강점기에 '단일민족'를 슬로건으로 민족의 정체성을 강조한 것은 이같은 다양한 귀화인들의 존재사실을 몰라서가 아니라 단일민족의 실체를 문화와 정신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얼굴모양이나 피부색깔 따위의 생물학적 혈통주의에 근거한 좁은 단일성이 아니라는 말이다.
 유엔의 충고가 쓴소리이긴 하지만 우리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외국인노동자들에 대한 차별대우와 외국인 결혼가정의 인권유린의 현장을 접할 때마다 저절로 얼굴이 붉어지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문제는 오랜 세월동안 다른 민족이나 문화를 수용하는데 관대했던 우리가 유독 오늘에 와서 국제사회의 지탄이 될 만큼 달라진 이유를 고민하지 않는데 있다. 전쟁이나 무역 등으로 우리 땅에 뿌리를 내린 귀화인들과 지금 이 땅에서 인권을 날치기당한 외국인들의 차이는 바로 우리의 태도에서 발견할 수 있다.


 '혈통'을 훈장처럼 차고 아직 털어내지못한 계급문화를 채찍처럼 휘두르는 우리의 모습이 있는 한 국제사회의 충고는 계속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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