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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여정부를 태동시킨 여당의 실력자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탈당(脫黨)행렬에 몸을 싣고 있다. 현 정권의 3대 주역으로 알려진 천신정(千申鄭) 가운데 천정배 의원은 일찌감치 탈당을 했고, 나머지도 언제 어떤 행보를 취할지 알 수가 없다. 천 의원이 탈당 변(辯)으로 내놓은 일성이 "이대로 있다가는 다음 정권을 기대할 수 없어서"라고 했다. 즉 당을 뛰쳐나가서라도 참여정부의 정신을 계승, 발전시킬 수 있는 제 세력들을 규합해 정권재창출이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포부다. 당에 남아 있는 나머지 주역이라 할 정동영 전 의장과 신기남 의원의 생각도 오직 정권재창출에 함몰돼 있다. 그러면서 이들은 하나같이 자신이 핵심적인 역할을 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논리를 편다. 한때 여당의 차기대선 주자로 확고한 입지를 굳혔던 정 전 의장마저 지금은 '대선기여 역할론'에 비중을 두고 있다. 그 역할이라는 것이 일명 '킹메이커'다. 게다가 친노파(親盧派)와 당 사수파의 대명사인 안희정씨와 이광재 의원도 예의 정권창출에 일익을 담당하겠다며 동분서주하고 있다. 집권초기 세력들을 다시 규합하는가 하면 야당의 대선주자에까지 손을 내밀며, 악착을 부리기는 마찬가지다. 또 호남인심을 결집, 노 대통령이 당내경선에서 당선될 수 있도록 하는데 일등 조정자였던 염동연 의원도 있다. 어디 이 뿐인가. 노 대통령 취임과 동시에 장기 유학길에 나섰던 추미애 전 의원도 권토중래를 노리며 일전을 벼르고 있는 형편이다. 많아도 너무 많다.

 

   넘치는 자칭 '킹메이커'
 야당에서 역시 킹메이커를 자임하는 인사가 넘쳐나고 있다. 현재 상종가를 치고 있는 한나라당의 이명박 전 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 손학규 전 지사 진영에도 하루가 다르게 책사들이 몰려오고 있어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다. 두 번의 대선에서 패장(敗將)을 모셨던 윤여준 전 의원이 암중모색을 하고 있고, 핵심 당직을 지냈던 인사들까지 차기 대선의 전면에 포진해 있다. 이들에게 최대 화두는 오직 자신이 미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일이다. 그래야만 다음 정권 5년간을 호가호위하며 권력에 취해 볼 수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터득하고 있다. 최고 권력자에게 얼마나 가까이, 그리고 자주 접할 수 있느냐가 실세(實勢)의 측량 기준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경선과 본선에서 후보자가 자신의 진언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이를 선거전에 대입시켜야 가능하다. 때문에 이들은 그동안의 대선관련 자료를 취합해 최상의 선거 전략이 무엇인지에 골몰한다. 국민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수 있는 선거공약과 의제 발굴은 물론이고, 후보의 메이크-업 등 시시콜콜한 일에도 훈수를 두는 이들이다. 마치 먹이를 놓고 저들끼리 육탄전을 하는 '승냥이 떼' 같다. 한(漢)의 유방을 도와 천하를 통일했던 장자방이나 불가능을 알면서 삼고초려에 감복, 유비의 책사로 나선 제갈공명과 같은 품격은 고사하고 우리 역사에 등장하는 숱한 정략가와도 비교할 수 없는 천골(賤骨)들에 지나지 않는다. 그저 물신에 젖어있는 허접스런 인간들이다. 더욱이 이들은 적과 동지를 함께 아우르면서, 대선을 치를 수 있는 도량마저 없다.

 

   김윤환의 장수비결 회고
 '전두환-노태우-김영삼' 3대 정권에서 권력의 최중심에 있었고, 2대에 걸쳐 '킹메이커'역을 했던 허주(虛舟) 김윤환이 그저 되었겠는가. 그는 누구도 범할 수 없는 탁월한 정치감각과 분석력, 이해관계를 조정해내는 정치력이 있었다. 여야를 떠나 마당발로 통하면서, 누구에게나 친근한 미소와 후덕한 인심을 잃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에게는 탄탄한 정치경륜이 있다. 오랜 언론사 생활에서 얻은 인맥과 친화력을 바탕으로 정치에 입문, 5선(選)을 기록했다. 그랬기에 정치적 고비마다 특유의 처세술로 장수할 수 있었다. 그가 맡았던 정치이력은 조선시대 3대에 걸쳐 조야를 주물렀던 한명회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그런데 지금의 자칭 킹메이커 군상들에게선 젖먹이의 비린내만 진동한다. 또 한편으론 이 모든 것이 5년 단임 정부들이 낳은 부산물이라 생각하니 씁쓸하기도 하다. 허주가 지하에서 이를 보고 있다면 아마 소이부답(笑而不答)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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