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겨울 여자는 프랑스로 그림을 배우러 떠났다. 아무런 의미 없는 꽃이 피고 비가 오고 좀처럼 오지 않던 눈마저 내리는 날들이 스쳐 갔다. 여자는 가끔 에펠탑이나 니스 해변의 여인들을 그린 엽서로 존재를 증명했으나, 남자는 그것이 사랑의 증표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몇 번의 겨울이 오고 가고 몇 번의 국제우편이 날아들었으나 언제쯤 돌아오냐는 남자의 물음에 대한 답은 오지 않았다.너무 오래 버려진 그리움은 그리움이 아니었지만, 한 번씩은 지독한 몸살처럼 찾아와 온몸을 울리곤 했다. 남자는 자주 공항을 기웃거리며 활주로 유도등처럼 서
날이 짓궂다. 구름이 포개져 금세 비라도 뿌릴 듯 낮게 내려앉았다.저기 포항 호미곶 어디쯤 가다 보면 너른 벌판의 풍경과 세한도가 중첩된다.봄이면 청보리로 뒤덮이고, 늦은 가을이면 늙은 옥수수 대 서걱대는 벌판에 옹기종기 선 소나무 몇 그루가 추사를 소환한다. 추사 김정희는 정조에서 철종의 세도정치가 관통하는 시대를 살다 간 서화가이자 실학자였다. 또한 금석학을 성립하고 추사체를 완성한 문인이기도 했다. 그러나 삶과 죽음이 끊임없이 서로의 영역과 자리를 넘보는 싸움에서 추사는 패했고 꼼짝할 수 없는 음모 속으로 던져졌다. 불온한 시
아버지는 저 길을 10여 년 다녔다.자전거에 하얀 1말짜리 술통 4~5개씩을 걸고, 아침이면 어김없이 도가로 향했다.막걸리를 말 통으로 받아와 되로 파는 마을의 유일한 공판장이 우리 집이었다. 모내기나 벼 베기 철이 되면 아버지의는 아침이 아닌 낮에도 술도가를 향하곤 했다. 일꾼들의 참이나, 반주를 논으로 직접 배달했다. 아버지의 하루는 그렇게 빈 통을 덜그럭거리며 도가로 향하는 게 시작이었다. 자전거는 굵은 바퀴와 철근으로 만든 짐받이가 달려있는 짐 자전거였다. 어린 내가 타기엔 너무 높았고, 크고 무거웠다. 그래도 프레임 사이로
울산의 진면목은 밤에 드러난다.어스름 해가 지면 석유화학공장은 주황과 백색의 빛으로 뒤덮인다.휘황찬란한 불빛 아래로 석유 정제와 추출, 분리의 화학적인 장치들이 물리적으로 정렬해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움직인다. 보이지 않는 눈과 손들이 모든 공정을 지켜보며 한 치 오차도 없이 운용하고 있다. 베셀이나 타워라는 이름을 가진 플랜트들은 눕거나 서서 그 위용을 자랑하고 원자재나 그 결과물들을 담은 저장용 탱크들의 엄청난 크기는 사람을 압도한다. 1962년 1월 울산은 특정공업지구로 지정됐다. 대형 선박이 접안 가능한 깊은 수심은 항만 조성
새들의 세상엔 경계가 없다. 사람들의 인위적인 땅 나눔은 대륙과 반도를 가르고 그 반도 허리쯤 철책으로 또 155마일을 단절시켰다. 삼엄하거나 견고한 그 물리적인 단절을 새들은 개의치 않는다. 몽골의 남쪽 초원지대서 삶을 영위하던 독수리들이 2,000여㎞를 건너왔다. 초원을 지나고 산맥을 넘고 강을 건너며 하루에 70여㎞씩 보름간에 걸친 길고 긴 여정이었다. 그렇게 중단없는 날갯짓으로 찾아온 곳이 울주 범서 입암들이다. 혹독한 겨울 추위에 내몰린 새들의 선택은 생존 영역의 확장이었고, 어떤 연유로 이 반도의 남쪽 끝까지 왔는지 사람
'…고마웠어. 잘 지내!'여자가 건넨 마지막 소식이었다. 바다 보러 갈래? 여자의 한마디에 무작정 달려 마주한 곳이었다. 길 하나를 곁에 두고 바다를 접한 작은 카페. 커피향이 은은했다. 햇살이 빗금으로 누운 테이블 위로 이사오 사사키의 'One fine spring day'가 늘어졌다. 늦은 오후의 바다는 보석처럼 반짝거렸고 여자의 가늘고 긴 손가락이 하얀 커피잔과 잘 어울렸다. 시간은 맑았고 깨끗했다. 남자는 풋풋했고 여자는 싱그러웠다. 말이 없어도 어색함이 없었고 자기 안의 세상에 빠져있어도 무료함
저기 억새꽃 만발한 강어귀 어디쯤 조개섬이 있었더랬지요.때론 친구 같았고, 때론 형 같았고 어떨 땐 어머니 같았던 누이들과 자주 꼬시래기 잡으러 다니던 곳이었지요.가을 햇살 말간 날, 뒷산에서 시누대 꺾고 지렁이 몇 마리 잡아 나서면 지척이었습니다.가끔 기다림에 지쳐 염초 위에 두 팔 베고 누우면 파란 하늘이 출렁이듯 내려오고 갈바람 수군수군 귓불을 간지럽히기도 했습니다.현대차 울산공장이 지금처럼 강변을 다 차지하지 않았을 때 저기 5공장 어디쯤인가 끝 간 데 없이 너른 뻘밭이 있었지요.그 뻘밭을 달려가면 게들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휴일 오후 파도마저 잠든 한가로운 포구의 풍경입니다. 부산에서 시작한 해파랑길이 울산을 거쳐 감포로 가기 전 전촌항에서 머문 발걸음에 늘 푸른 바다와 물오른 신록 아래로 이어지는 길들 사이로 가끔 이런 한 폭의 그림을 선사하기도 합니다.정물처럼 앉은 두 사람의 뒷모습이 눈길을 잡습니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나란히 앉았지만 서로 다른 시선을 가진 채 각기 다른 생각으로 각자의 시간을 영위합니다. 어떠한 중대한 결정을 필요할 때 눈앞이 텅 빈 공간이 제격입니다. 그 공간은 세상의 간섭을 배제하고 사고의 폭과 깊이를 증대해 더 신중
서해안 그 칠흑 같은 어둠 속,채 피지 못한 어린 생명들을 놔두고 우왕좌왕 못난 어른들의 대처가 허둥거렸던 십여 일. 쓰러진 책들과 쓸데없는 뉴스로 가득 찬 책상 위에서 찾는 길은 그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한때 믿었던 희망마저 절망이 되어, 버려진 시간이 쌓여갔고 내가 만든 뉴스의 행간은 너무 선택적이어서 너무 많은 것들이 버려지고 너무 많은 것들이 첨가돼 사실조차 불분명해진 채 휩쓸려 떠다녔다. 쉽게 건너와 쉽게 사라지는 출처 불명의 소식들이 가득 찼고 무사 생환을 기원하는 노란 리본은 전국을 수놓았지만, 그 어떤 것도
벽을 타고 유리창까지 넘어온 담쟁이덩굴입니다. 투명하고 가벼운 봄 햇살 아래 놓인 여린 잎들의 속이, 마치 아기 볼의 투명한 실핏줄처럼 훤하게 드러납니다. 매끄러운 유리를 잡고 오르는 저 힘겨운 삶의 터전, 작디작은 흡착판 몇 개로 버텨내야 할 고단한 시간들이 눈앞에 선합니다. 그러나 담쟁이는 작은 바람결에도 잎을 흔들어 화답하고, 환한 햇살을 받아들여 안
가을은 저 멀리 산 위에서부터 오지만봄은 사람 가까이서 시작됩니다.가을이 저 북쪽에서부터 성큼성큼 다가온다면 봄은 가까이서 살며시 시작됩니다. 알게 모르게 시작된 봄이 어느 순간 온 세상을 물들입니다. 꽃잎들이 부풀어 오르는 싱그러운 봄날의 오후시청 꽃그늘 아래 잠시 빈 시간을 풀어놓습니다.벤치 위엔 햇살이 흥건하고 그 따사로움에 저절로 눈이 감깁니다.잠시
지난 주말 포항 화진해변의 풍경입니다.그 흥겨웠던 여름의 기억은 잊힌 지 오래, 가끔 백사장을 휘젓고 돌아서는 바람에 모래 알갱이들만 날릴 뿐입니다. 계절이 두세 번 바뀔 동안에도 파도는 끊임없이 바다를 풀어놓고 거두어 가길 반복한 모양입니다.밀려온 것인지, 드러난 것인지 알 수 없는 돌로 백사장 가장자리가 덮였습니다. 끊임없이 밀려오고 끌려가는 물결에 닳
지난 주말 밀양의 풍경입니다.도심에서의 비가 고도에 따라 진눈깨비로 변하더니 산 정상에 이르러 함박눈으로 변했습니다.모든 것을 덮을 듯 쏟아져 내리는 눈 아래 길은 벌써 하얗게 누웠습니다.아직 그 누구도 밟지 않은 새 길을 걷는다는 것은 즐겁습니다.뽀드득 뽀드득 여운 짧은 소리를 뒤로하고 걷다가 문득 돌아보면,저만치 펼쳐진 발자국 위로 서서히 지워지는 시간
경주 양남 보덕암 아래 풍경입니다.고만고만한 지팡이들이 가지런히 기대 있습니다.계곡 깊숙한 절벽 위에 자리 잡은 탓에 주불을 모신 관음전으로 가기 위해선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합니다. 오랜 세월 풍파로 노쇠한 늙은 몸을 위한 절집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절로 읽힙니다. 시린 무릎, 약한 근육을 지탱해 줄 든든한 버팀목인 게지요.일주문도 범종도 없이 남루한
누구도 관심 없던 어느 담벼락 밑 여리디여린 연초록의 잎들이 봄을 피웁니다.잎을 틔우고 줄기를 뻗어 분홍과 진보라의 작디작은 꽃망울을 엽니다. 늘 먼 곳만 바라보며 봄을 기다린 아둔한 사람의 발아래 해맑게도 피었습니다.숨은듯 수줍게 핀 꽃망울에 벌이 찾아듭니다. 꽃봉오리보다 더 큰 벌을 지탱하며 아낌없이 주는 봄은 생명입니다.화려한 시간이 너무 짧아 꽃은
어릴 적 밤새 뽀얗게 내려 온 세상을 뒤덮은 순백의 풍경을 기억합니다. 놀라움과 신기함으로 추운 줄도 모르고 뛰어놀았던 그 첫 경험은 겨울이라도 눈 구경하기 힘든 동해남부 어촌의 아이에겐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사흘 동안 울산의 하늘을 사나워진 동풍이 몰고 온 눈이 뒤덮었습니다. 효문공단의 한 자동차 정비업체 아침은 눈을 치우는 것으로 시작하나 봅니다. 모든
김해 클레이아크미술관입니다. 국내 유일 도자전문 미술관으로 화려한 외벽이 타일로 이루어져 건립 때부터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유리로 된 돔 천정으로 내려온 겨울빛이 환합니다. 바람이 차단되고 여과된 빛이 순하디순해 따사로운 봄날을 연상케 합니다. 걸러진 빛의 증폭을 가져다준 공간은 넓고 높아 자유로움은 외로움을 이기고, 밝음은 어둠을 밀어냅니다.
전국 구상미술초대전이 열리고 있는 지난 주말 울산문예회관의 전시장입니다.전국 각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 120여 명을 초대해 마련된 대형 전시회입니다.요즈음은 직접 가지 않아도 TV로 컴퓨터로 전 세계를 볼 수 있는 시대입니다. 저기 아프리카 세렁게티 사바나나 아마존의 밀림, 뉴욕의 거리를 산책하듯 물리적인 시공간을 넘나들 수 있습니다.모든 것들이 쉽게
불면의 밤을 지새워 본 사람은 압니다. 잠기지 않는 눈꺼풀을 억지로 누르고 돌아누운 밤. 잠은 저 멀리 달아나 돌아오지 않고, 생각만이 홀로 영덕 푸른 바다를 만나고 서산 간월사를 떠돌다 더 또렷해지는 난감함을. 꼬리를 물고 일어서는 상념들이 환하게 머릿속을 밝히면서 파리 몽마르트르언덕 카페의 젊은 여종업원을 데려오고,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난 늙은
등대 아래서 내가 버렸는지, 내가 버림받았는지 모를 사랑을 생각했네 감정에 서툴고 표현에 인색한 사람 사이엔 늘 오해가 벽처럼 쌓여 넘을 수 없는 슬픔이 추억처럼 남겨지곤 했네 겨울 한복판 아직 등불을 켜지 않은 등대 아래에 서면 외로움의 깊이만큼 깊은 청록색 바다가 보였네절망과 허무를 낮술에 맡기면가끔 그리움이 희망처럼 일어나곤 했네 기억해선 안 될 숫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