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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송이가 비행기로 내려온지 한참 만에 난데없이 제주산 귤이 평양공항으로 실려갔다. 귤이 가자 남쪽에서는 김정은 방남이 가시권에 왔다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오비이락인가. 원희룡 제주지사는 지난 10일 백록담에 올라 헬기 착륙 시설을 설치해야 하다는 뉘앙스로 언론에 말을 흘렸다. 

방남이 실현돼 김정은이 한라산에 오른다면 동릉의 헬기장부터 계단 데크를 100m 가량 걸어 산 정상에 올라가야 한다. 여기서 다시 백록담에 가기 위해서는 고도 80m를 내려가야 하기에 김정은의 건강 상태 등을 고려해 백록담 분화구 내 헬기장 설치가 거론된 모양이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여론이 들끓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원 지사는 부랴부랴 입장문을 내고 "오해가 있었다"며 "남북 정상이 헬기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 것이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나도 인공적인 구조물 설치에는 반대한다"라고 밝혔다.  

민족의 영산 한라 머리에 위치한 백록담은 말 그대로 신성한 금기의 땅으로 여겨진다. 백록담은 한라산 정상에 위치한 타원형 분화구다. 백록담으로 불린 것은 옛 선인들이 이곳에서 흰사슴 뿔로 담근 술을 마셨다는 전설 때문이다. 백록감은 여러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형태로도 예사롭지 않은 곳이다. 동쪽 벽은 독특한 현무암 층으로 이뤄졌고, 서쪽은 구기의 백색 알칼리 조면암이 심한 풍화작용을 받아 주상절리가 발달해 기암절벽을 이루고 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과거에는 백록담 일대에 야생 사슴이 많았다고 한다. 백록담 분화구는 면적 21만 230㎡의 전형적인 산정화구호로 둘레 1,720m이다. 분화구 최대 높이가 1,950m, 바닥이 해발 1,838m인 점을 감안하면 분화구 깊이는 112m이다. 백록담 분화구에 물이 가득 찬 모습이 장관인데 세월이 흐르면서 호수 깊이가 점차 얕아졌다. 분화구 내부로 흘러내린 토양층에 물이 잠기면서 수심이 낮아졌다는 것이다. 

이익이 '성호사설'에서 "지금 바닷가에 둘러 있는 산과 제주지방에는 사슴이 많이 있는데, 다 잡아도 이듬해가 되면 여전히 번식하니 바다의 물고기가 변해서 사슴이 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라고 기록한 것을 보면 제주도에 사슴이 많았음을 알 수 있고, 특히 백록담에는 과거부터 흰사슴이 집단 서식한 것으로 보인다.

백록담 둘레에는 기암괴석이 병풍 친 듯이 둘려 있으며 그 사이로 눈 향나무·구상나무·철쭉 등이 우거진 숲을 이루고 있다. 특히 봄철이면 군데군데 진달래 꽃밭이 펼쳐져 있고 겨울에는 다음해 5월까지 눈 쌓인 모습을 간직해 신성스러운 땅, 태초의 땅으로 여겨져 왔다. 

이곳을 찾았던 백호 임제(林悌)는 '남명소승'에서 "옛날에 사냥꾼이 한라산 정상에 올라 사슴을 쏘려다가 잘못하여 활집을 스쳐나가 하늘의 배를 쏘았는데 옥황상제가 크게 노해 주봉을 뽑아 버리니 움푹 파인 데가 백록담이 됐고, 뽑은 봉우리는 대정 남쪽으로 옮겨 놓았으니, 산방산(山房山)이라고 부른다"라고 적었다. 이런 민족의 영산에 김정은을 위해 헬기 착륙장 설치 운운했으니 원희룡 제주지사가 구설에 오를 수밖에 없는 모양새다.   편집이사 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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