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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ham이라는 학자는 그의 책 The Tourist as a Metaphor of the Social World에서 여행도 일종의 제의(ritual)라고 이야기 한다. 소망과 바램이라는 일종의 신화를 현실에 구현하는 것이 종교 의식을 포함한 제의이듯이 여행지에 대한 환상과 상상을 현실세계(여행지)에서 구현하는 여행도 하나의 제의라는 것이다. 어쩌면 이번 핀란드, 덴마크 국외 연수, 교육 '여행'도 그렇지 않을까 한다. 10여 년의 탐방과 기록 속에서 우리 교육만큼이나 잘 안다고 생각되는 핀란드 교육, 더 이상 새로운 무언가를 찾기보다는 대안이 되어 줄 수 있다는 일종의 신화를 물리적으로 만져 보고 싶고, 확인하고 싶은 생각이 더 컸었다.

고등학교 교사인 필자에게 야르벤빠 고등학교와 루오비 직업학교는 다른 방문지보다 의미있게 다가왔다. 핀란드의 유명한 직업학교인 옴니아 학교가 일반 학생들을 위한 것이라면 루오비 학교는 특수교육 대상자를 위한 직업학교이다. 다만 특이할 점은 대상을 장애 학생에 한정 짓는 것이 아니라 학교 부적응 학생, 열악한 가정환경 등의 이유로 특별한 관심이 필요한 학생 등 특수교육에 대한 포괄적 개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주 대상은 우리나라 고등학교 학생들이지만 30대의 성인까지 문이 열려있다.


야르벤빠 고등학교는 전통적 교실과 학교 공간의 개념을 깨고 열린 구조의 독특한 공간으로 널리 알려진 학교다. 현관에 전시된 전 세계의 방문 기념 선물들이 충분히 말해주고 있었다. 1층 중앙의 원형 카페테리아(식당, 공연 장소, 회의, 학생들의 자기주도 학습 공간으로 활용)를 중심으로 펼쳐진 공간은 마치 콜로세움 경기장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핀란드 고등학교는 김나지움과 루끼오가 있는데 루끼오는 한 마디로 대학처럼 운영되는 곳이다. 자기만의 코스를 선택해서 수강을 하고 학점을 채우면 졸업하는 시스템이다.


사뭇 다른 성격의 두 학교에서 어떻게 우리 고교학점제의 미래를 엿본다는 것인가? 에 대한 답은 두 학교의 설명에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비획일성과 유연성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유연한 제도도 구성원의 자율성이 없다면 운영이 힘들다. 바로 이점이 우리의 교육이 우려하는 바고, 핀란드 등의 유럽 제도를 단지 이상적인 것으로 간주해, 결국은 우리의 변화를 더디게 하는 걸림돌이라 생각한다. 공강 시간에 현관 앞에 비치된 헬멧과 외투를 걸치고 오토바이로 어디를 다녀오는 야르벤빠 학교 학생들의 모습은 우리에겐 상상하기도 힘들뿐더러, 허용할 수 없을 행동이었으리라. 둘러 앉아서 경영, 화학, 엑셀 등 정말 자기가 원하는 공부를 각자 하고 있는 루오비 학교의 교실 풍경 역시 상상하기 힘든 광경이었다.


우리의 경우를 보자. 정해진 일과 시간을 다 맞추어야 하기에 원하지 않는 수업을 '선택'하고, 정작 원하는 수업은 교원 수급으로 폐강이 되는 모습은 이미 고등학교 2학년 선택과정에서 보여지는 단상이며, 고교학점제에서 충분히 예상되는 모습들일 것이다. “어떻게 공강 시간을 줄 수 있는가? 그 시간에 일어나는 안전사고는 누가 책임지겠는가? 운영과 통제가 불가능해진다"와 같은 현장의 소리 역시 고교학점제의 본질적 취지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이렇듯 학교 구성원들의 자율성, 자발성은 고교학점제의 성공적 안착을 위해서 반드시 선행돼야 할 점이고, 그것의 부재는 고교학점제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이다.


핀란드 학생들의 자율성은 어떤 프로그램이나 활동을 통해서 길러진 것은 아니었다. 필자가 현지에서 느낀 그들 자율성의 원동력은 상호 신뢰에 있었다. 즉, 상호 신뢰에 바탕을 둔 자율성의 부여, 정확히 말하면 학교 구성원의 자율성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 되었기에 통제에 용이한 획일적, 정형화된 모습은 존재하지 않았다. 획일화와 정형화는 관리와 통제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임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당연한 명제가 핀란드 그곳에는 녹아 있었다. 지식의 효율적 습득을 위한 제도로 고교학점제가 아닌, 그토록 열망해왔던 학생 개개인의 개성과 능력, 창의력을 키워 21세기의 인재로 양성하기 위한 고교학점제라면 이 명제들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 앞에 소개한 저자는 여행이라는 제의는 그곳을 간다고 해서 자신이 갖고 있던 환상과 신화를 충족할 수 없다고 한다. 사실 제의가 우리의 바램을 실현 시켜주지는 못 한다. 기우제가 비를 오게 해주지는 못 하듯이.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환상의 세계를 현실에 구현하는 제의에 참여를 한다. 신념을 형성해나가기 위해서 10여년간 재생산된 핀란드의 교육 소개가 우리의 교육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 할 것이다. 하지만 상호신뢰와 자율성, 그리고 이 속에서 보여지는 유연함과 비정형성에 대한 확신을 갖는 그런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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