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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편에서 '미꾸라지 추'자 찾기

천수호 

도랑을 한 번 쭉 훑어보면 알 수 있다
어떤 놈이 살고 있는지
흙탕물로 곤두박질치는 鰍
그 꼬리를 기억하며 網을 갖다댄다
다리를 휘휘 감아오는   
물풀 같은 글자들
송사리 추, 잉어 추, 쏘가리 추
발끝으로 조근조근 밟아 내리면
잘못 걸려드는
올챙이 거머리 작은 돌맹이들                   
어차피 속뜻 모르는 놈 찾는 일이다
온 도랑 술렁인 뒤 건져 올린
비린내 묻은 秋는 가랑잎처럼 떨구고
비슷한 꼬리의 추 ,추 ,추만
자꾸 잡아올린다.

△천수호: 200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아주 붉은 현기증' '우울은 허밍' '수건은 젖고 댄서는 마른다'. 횡성 예버덩문학의집 운영위원, '삶의향기 동서문학상' 운영위원, 도서출판 '걷는사람' 기획위원.

박정옥 시인
박정옥 시인

한파가 전국을 강타했다. 코로나에 몸도 마음도 꽁꽁, 날씨도 꽁꽁 천지가 얼어붙었다. 이 추운 날 미꾸라지들은 어디에 숨어 있을까. 방안에서 옥편을 끼고 미꾸라지라도 잡아야겠다. 옥편에 나온 '추' 字만 107개다. 그 중 물고기(魚) 들어간 글자가 다섯이다. 미꾸라지鰍, 송사리? 잉어? 뱅어? 쏘가리?
물풀과 부수는 한글의 자음 모음이라고 할 수 있다. 속뜻 모르는 놈들이다. 물풀 속에서 변, 방, 머리, 몸, 발, 엄, 받침을 조물락 거리면 나타날 수도 있겠다. 밑에 있는 놈, 위에서 왼쪽을 덮고 아래쪽을 감싸고 있는 놈, 빙 둘러 에워싸고 있는 놈, 오른쪽 왼쪽, 위쪽에서 활개 치는 놈, 그 중에서 숨어 있는 활어를 건져내면 点心(딤섬)! 반드시 마음에 점 하나는 찍고 만다. 그런 날을 한번이라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 동네는 공동 우물이 있었다. 집집마다 머리에 이고 퍼 나르던 수돗물이었다. 가끔 누군가 우물가에서 빨래를 하면 뿌연 물이 스며들기도 했다. 추석 전에는 해마다 집집이 돌아가며 햅쌀인 처미로 밥을 짓고 장정들이 공동 우물물을 죄다 퍼 올린다. 양동이로 퍼 올린 물을 커다란 소쿠리에 붓는다. 누런 미꾸라지들이 소쿠리 안에서 투당탕거린다. 엄청난 양의 미꾸라지에 소금을 쫙 뿌리고 호박잎으로 치댄다. 처미와 추어탕을 조상께 올리고 마을잔치를 벌였던 곳. 연로한 노인들이 장죽을 물고 참관을 하며 새로 자갈을 깔고 우물을 깨끗이 청소 했던 곳.

깨끔발을 하고 올려다봐도 그때는 우물테두리에 매달려질 뿐 안을 볼 수 없었다. 새마을운동으로 상수도가 생기고, 나도 자라서 우물을 들여다봤을 때 왁자한 수선이 사라진 퀭한 폐허만 보였다. 그 많던 미꾸라지는 어디로 갔을까. 물위에 지나간 回憶만 떠돌았다. 다리를 휘휘 감아오는 물풀 같은 글자들을 만나러 오늘도 내일도 쉼 없이 책 속을 순례한다. 
 박정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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