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심의숲 산책] 초대받은 아이들
[동심의숲 산책] 초대받은 아이들
  • 서순옥
  • 2021.04.19 19:44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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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함께라 행복한 생일
'초대받은 아이들'
'초대받은 아이들'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가방부터 내던지더니 대뜸 하는 말 요번 토요일 생일날 친구들 많이 초대할 거니까 생일파티에 맛있는 음식 많이 준비하라고 엄포 놓는다. 

처음 학부모가 되고 딸아이 친구들을 초대한다니 표정은 담담했지만 내심 초초했다.
요즘 아이들이 뭘 잘 먹는지 시댁 어른들 생일상 차리는 것보다 더 긴장되어 식구들이 잠든 시간 식탁에 앉아 메모지를 펼쳐놓고 떡볶이, 김밥, 튀김, 과자, 과일, 음료수 등 생각나는 대로 쭉쭉 써 내려갔다. 

아침에 딸아이가 메모지를 보고는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불만을 쫑알쫑알 읊어댄다.

"요즘 누가 생일파티에 떡볶이, 김밥, 과자를 같은 거 차려놓고 친구들 불러! 분식집이 아닌 레스토랑으로 초대해서 스테이크, 피자나 스파게티 같은 거 먹고 노래방도 끊어주고 그런단 말이야 엄마의 사고방식이 하도 구식이라서 내가 조금 양보하고 엄마 생각해서 집으로 한 건데 떡볶이가 뭐야 떡볶이가……" 라며 퉁퉁거리더니 아침도 먹는 둥 마는 둥 얼굴을 울그락불그락 학교 가는 뒷모습을 보고 불편한 마음이 내내 가시지 않았다. 

서순옥 아동문학가
서순옥 아동문학가

친하게 지내던 몇몇 학부모들에게 전화해서 물어도 보고 자문을 얻어 드디어 토요일 생일상을 차려놨다.

통닭은 집에서 만들기가 좀 그래서 몇 마리 시키고, 떡 케이크에 돈가스는 직접 만든 수제 돈가스로, 질 좋은 소고기를 듬뿍 넣은 잡채, 손만두에 미역국, 찰밥 등으로 한 상 차려놓았다. 고구마와 여러 가지 과일은 후식으로 내놓았다. 

사실 학부형들은 파자나 통닭 같은 걸 배달 시켜 주라고 했지만 이리저리 고민하다가 그냥 내 사고방식대로 한 상 떡 벌어지게 차려놓았다. 딸아이의 어이없어 하는 표정은 지금도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곤 하는데 딸아이 친구들이 하는 말 "어머니 우리가 나이도 어린데 어른 대접받은 것 같아 기분이 너무 좋아요……. 생일상이 아니라 생신상 수준인데요?" 

어째 좀 놀림 받는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주방에서 일하는 척하면서 저들끼리 먹으면서 하는 말을 한 귀를 쫑긋 세우고 들어보았다. 우리 엄마는 미역국도 안 끓여주고 밖에 나가서 외식하고 뭐 돈으로 간편하게 해결하는데 너희 엄마 정성이 대단하시다는 둥, 우리 엄마도 이렇게 배웠으면 좋겠다는 둥, 음식을 해준 보람이 제대로 였다고나할까. 

초대받아 온 친구들 중에 빈손으로 온 아이 둘이 음식도 잘 못 먹고 말도 없이 잘 웃지도 않았다. 보는 내내 좀 신경이 쓰였지만 엄마가 간섭을 하면 좀 어색할까 봐 그냥 모른 척 보고만 있었다. 다행히 딸아이가 선물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고 그 둘에게 더 신경 쓰면서 이것도 먹어봐 저것도 먹어봐하면서 젓가락으로 집어 밥에 올려주는 걸 보았다. 선물해준 친구들도 고맙지만 이렇게 초대에 와준 친구들이 너무 고맙지 라고 하는 딸아이가 너무 대견스러워 보였다. 집에서는 까칠한 딸아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친구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참 따뜻한 딸아이였던 것에 감사했던 하루였다. 레스토랑과 노래방이 아니어도 잘 먹어주는 아이들에게 편견 없이 친구를 대하는 딸아이에게도 잔잔한 감동과 행복을 맛본 20년 전의 일이다. 

황선미 작가는 1963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 서울예술대학과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01년 제1회 SBS 어린이미디어 대상 우수상을 수상했고 '나쁜 어린이표' '마당을 나온 암탉' '샘마을 몽당깨비' 등이 있다. 

단 한 번이라도 외톨이가 되어 본 적이 있는 아이, 얼굴에서 생긴 흉터나, 곱슬머리 때문에 놀림당하는 아이, 생일 초대 한번 받아 보지 못한 아이들을 위해서 쓴 이야기에요.

잊지 말아야 될 게 있어요. 외톨이가 되더라도 나 자신을 사랑하는 일. 나를 위해서 노래 부르고, 촛불도 켜고, 선물도 준비할 수 있어야 돼요. 나를 포기 하지 말아요. 그리고 너무 오래 속상해하지 말아요. 나를 알아보는 친구는 가까운 곳에 반드시 있으니까요.  

초대받지 못하는 자신의 아이를 위해서 지혜를 짜내는 엄마의 생각과 행동이 '초대받은 아이들' 글을 보면서 감동이 가슴에 저며 든다. 

별일 아닌 것 같아도 아이들에게는 상처로 남는 큰일이 되기도 하는 소소한 일일지라도 풀어버리는 방법을 몰라 쌓고 쌓이면 마음에 응어리가 오래오래 남아 성장기에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 책 한 권으로 세상 모든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필자의 마음이다.  아동문학가 서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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