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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숙 수필가
정영숙 수필가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뉴스로 조용한 날이 없다. 고즈넉한 길을 산책하는 게 망설여지고 밤길을 다니는 것도 불안하다. 부모와 자식이 서로 생명을 앗아가고 묻지 마 폭력과 살인, 보복 범죄, 성폭력 등이 심심찮게 터지고 있다. 세상이 무섭고 사람에 대한 신뢰가 없다.

퇴근 후 해가 한참이나 남아 산길을 걷기로 했다. 염포산 임도를 따라 걷는 이 길은 오래전부터 출퇴근할 때 걸어 다녀 낯설지 않다. 성내에서 오르막을 잠시 걸으면 산을 찾을 때마다 갈증을 해소해 주던 정든 약수터가 나온다. 물 좋기로 소문난 약수터는 늘 붐비던 곳이었는데 이제는 아무도 물을 긷지 않는다. 수질이 오염되어 더는 마시는 물로 이용할 수가 없다.

아쉬운 마음으로 약수터를 지나고 염포산 제2 전망대가 가까워질 무렵이었다. 저만큼 허름한 옷에다 마스크를 낀 남자가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모자를 깊이 눌러 쓴 모습에 왠지 두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 무섬증이 일어나자 걷잡을 수 없었다. 숲속을 살피니 지겟작대기로 쓸 만한 마른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나무의 잔가지를 잘라낸 뒤 손에 힘을 주어 움켜잡았다. 남자가 나의 행동을 눈치채지 못했기를 바라면서 재바르게 샛길로 몸을 숨겼다.

남자는 가던 길을 태무심하게 걸어갔고, 나는 멀어져 가는 그의 뒷모습을 힐끔거리며 쳐다보았다. 작대기를 휘두르며 한판 싸움을 벌여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잔뜩 긴장했던 터라 마음이 놓이자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가 단순히 산에 온 사람이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놓이기도 했지만, 지나가는 사람을 치한으로 오인했다고 생각하니 남자에게 미안했다.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며 가슴 조였다 싶어 씁쓸하기도 했다.

몇 년 전, 산길을 걷다가 멧돼지 출몰 지역이니 조심하라는 안내 팻말을 본 적이 있었다. 산을 밭갈이하듯이 헤집어 놓은 흔적을 보자 금세라도 멧돼지가 나타날 것만 같아 두려웠다. 하지만 근래에는 산길을 걷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산짐승일까 무섭기보다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해진다. 아무도 없는 산에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반가워해야 할 일이 아니던가. 그런데도 산짐승 만나는 것보다 사람 만나는 것을 더 무서워하다니. 어이없기도 하고, 이 불신을 어찌하나 싶기도 하다.

예전에는 야산은 물론이고, 영남의 알프스라 일컫는 가지산이나 신불산 같은 제법 높은 산을 혼자 걷기도 했다. 호젓한 산길을 걸으면서 누렸던 풀잎 하나, 이슬 한 방울의 감동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젊은 여자가 혼자 산을 오르는 건 위험한 일이라며 만류하는 이들도 가끔 있었지만, 산을 사랑하는 사람은 악인이 없다는 말로 눙쳤다. 그때는 산에서 사람을 만나는 게 이유 없이 반갑기도 했고, 낯선 사람에게 차를 얻어 마시거나 내가 가진 것을 내주는 일도 다반사였다. 생면부지의 사람과 함께 산길을 걸으면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그런 시절이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인데 산에서 사람과 마주치는 게 이렇게 두려운 일이 되다니. 주린 배를 졸라매던 시절이 끝나고 집집이 먹을 것이 넘쳐나며 개인이 자동차를 소유하는 세상이 되었지만, 행복지수는 오히려 곤두박질친 것만 같다. 맑은 물은 공해로 무용지물이 되고, 산길을 걷다가 사람을 만나면 긴장하게 된다. 낯선 사람과 마주치면 경계부터 하는 것을 보면 그동안 세상은 살기 좋은 곳으로 변한 게 아니었다.

집 뒷산을 마음 편하게 걸을 수 없고, 밤늦은 귀갓길이 두렵게 느껴진다면 행복한 삶을 영위한다고 할 수 없다. 나와 내 가족만 다치지 않으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이 빚어낸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말이 있다. 언제 어디에서 어떤 일을 당할지 알 수가 없다. 운 좋게도 여러 가지 위협에서 벗어난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상황을 염려하고 경계해야 한다면 그 삶이 어찌 행복할까.

부익부 빈익빈이 굳어진 세상에서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오를 수 없는 절벽 앞에 서 있는 기분이 된다. 가진 자들이 가지지 못한 자들을 짓밟는 세상, 재력과 권력이 판치고, 공정이 무너져버린 세상에서 평범한 사람들은 절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반사회적 성향을 키우고, 세상에 대한 불만과 불신을 초래한다. 뼈 빠지게 일해도 항상 그 자리에서 맴돌기만 하는 이 세상이 제대로 굴러간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눈앞의 이익을 좇아가느라 미래에 닥칠 폐해를 간과하기 일쑤다. 그 대가로 나타나는 피해는 후손들이 지고 가야 할 짐이 된다. 다음 세대는 비대면 세상에서 고독한 삶을 영위해야 할지도 모른다. 혼자서 배부르게 먹고 편하게 지낸다고 해서 행복한 것은 아닐 것이다. 진정한 행복이란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피어난다고 믿는다. 남의 불행을 외면하지 않는 세상,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배려할 줄 아는 세상이 될 수는 없을까. 이 불신의 시대를 끝내고, 사회적 병폐를 해결하기 위해 함께 고민하고 노력해야 하리라.

세상에는 악한 사람보다 선한 사람이 많다고 믿는다. 그래서 세상이 돌아가는 거라는 사람들의 말에서 답을 찾고 싶다. 산에서 사람을 만나는 게 반갑고, 맑은 샘물로 목을 축일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내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다. 나는 내 주변을 얼마나 살피며 살고 있는지 되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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