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
  • 안성길
  • 2021.06.10 20:18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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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길 시인·평론가
안성길 시인·평론가
안성길 시인·평론가

얼마 전 동네 천마산 등산로 초입에서 안면 있는 어른을 만났다. 늘 애창곡을 작게 틀고 다녀 약간은 민폐인 분이었다. 주로 트로트였다. 그런데 그땐 블랙핑크의 노래를 듣고 있어 '참 젊게 사시네요.' 하니까 손녀가 줬다며 블랙핑크 제니의 인스타가 '캐치미이프유캔(Catch me if you can)'이라는 것까지 적어주었다고 자랑하셨다. 사실 그 문장은 '나 잡아 봐-라!'는 재미있는 구절로, 유명한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의 범죄 스릴러물 영화 제목이기도 하다. 그 영화 속 대사 중에 '우유통에 빠진 두 마리 쥐의 우화'는 요즘도 한 번씩 듣곤 한다.

 그 우화 속 쥐 한 마리는 발도 안 닿는 상황에 절망해 금방 우유에 익사한다. 그러나 다른 쥐는 계속 발을 저으며 탈출을 시도하는 사이 버터가 된 우유를 딛고 사지를 빠져나온다.

 2002년 월드컵 당시 가장 많이 주목받은 구절은 "꿈은 이루어진다."였고, 우리는 유사 이래 처음으로 축구 세계 4강에 나라 전체가 환호작약한 기억은 여전히 새롭다. 그런데 사실 꿈은 꾼다고 그저 되는 것이 아니다. 요즘 세계 톱을 찍는 BTS의 노래 제목인 소위 '피땀눈물'이 그 배면에 숱하게 깔려야만 가능한 것이다.

 '피땀눈물'을 정신없이 쏟아붓게 하는 동인은 오롯한 간절함이다. 따라서 얼마나 간절한가? 진실로 간절히 원하는가? 여기에 달렸다.

 최근 미얀마의 카렌족 출신 난민 가족이 화제였었다. 그들은 태국 등을 전전하다가, 가장인 아빠마저 사고로 잃는 등 갖은 고초 끝에 2016년 국내에 들왔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얼마 전 난민으로 인정받고 정착한다. 열 몇 살 어린 나이에 가장이 된 소녀와 이들 가족의 사연을 필자는 유튜버를 검색하다 좀 더 구체적인 걸 알게 되었다. 그 주인공은 현재 15살로 비록 어리지만 엄연히 프로 가수다. 필자는 우연히 그 완이화의 노래와 맑은 목소리에 찐팬이 됐다.

 그런데 불과 몇 달 전인 2월 1일 아침, 미얀마군이 쿠데타를 일으키고 국가고문 아웅산 수치와 중요 몇몇 인사들까지 체포 구금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이 군부 쿠데타를 항의하는 시민들에게 군인들이 발포까지 했고, 주변국들은 물론이고 UN과 국제사회마저 외면하는 사이에 일천 명에 가까운 무고한 시민들이 학살되고 말았다는 사실이다.

 저들 미얀마 시민들의 한결같은 바람은 일인들이 제작한 미얀마의 거리 인터뷰 영상에 잘 드러났다. 미얀마의 시민들은 대한민국처럼 자유로운 나라를 원하고 있었다. 우리나라가 그렇게까지 자유로운 줄은 몰랐는데, 그들의 현실을 전해 듣고는 참 많이 놀랐었다. 이제 미얀마는 거의 내전 상황이라고 한다. 정말로 안타깝다.

 이 와중에 최근 이제 대한민국 국적 소녀가수 완이화가 미얀마를 응원하는 노래를 발표했다. 그런데 자막 아래 깔린 미얀마 시민들의 주검은 공포 그 자체였다. "어릴 적 불러주던 어머니의 자장가/잘자라 잘자라 봄이 오는 꿈을 꿔다오/뒷동산 소나무길 연기 속에 가려져/들리는 자장가 아버지의 자장가/차가운 바람에 몸을 던진 사람들/자유에 달콤한/Everything will be Okay/자유 자유 아버지의 고향/세 손가락 꽃 되어/피어나라 미얀마/차가운 바람에 몸을 던진 사람들/자유에 달콤한/Everything will be Okay/자유 자유 아버지의 고향/세 손가락 꽃 되어/피어나라 미얀마" -'미얀마의 봄' 아티스트 완이화

 필자는 이 동영상을 보는 순간 1980년대 초 시인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 시집을 가슴에 품고 남몰래 친구들과 돌려가며 읽던 기억에 눈물이 쏟아졌다. "아직 동 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발자국 소리 호르락 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소리/신음소리 통곡소리 탄식소리 그 속에 내가슴팍 속에/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살아오는 삶의 아픔/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떨리는 손 떨리는 손/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백묵으로 서툰 솜씨로/쓴다.//숨죽여 흐느끼며/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타는 목마름으로/타는 목마름으로/민주주의여 만세" - 김지하 '타는 목마름으로' 부분

 다시 두 글의 내용을 비교하며 살펴보니 만감이 교차한다. 그 시절 많은 이들은 정말 간절했던 것이고, 그 덕분에 오늘 내 삶이 있는 것이다.

 이 '간절함'과 가장 밀접한 이는 고대 그리스의 왕이자 조각가였던 피그말리온이 있다. 독신이었던 그는 상아로 완벽한 여인을 조각하여 살아있는 여인인 듯 대화하고, 장신구까지 선물하며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에게 제물을 올리며 진심으로 빌었다. 이에 감동한 아프로디테는 그의 바람대로 그 상아 조각상을 갈라테이아라는 여성으로 바꾸고 그와 결혼하게 했다. 그들 부부는 파포스라는 딸까지 얻어 행복하게 살았다.


 그런데 누군가는 비록 조각상이던 갈라테이아였지만 엄청난 사랑을 날마다 받았던 그녀 또한 피그말리온의 간절함과 맞먹을 정도로 간절했으리라 말한다. 나도 모르게 정말 무릎을 쳤다. '줄탁동시', 병아리가 세상 밖으로 나오려고 안에서 껍질을 쪼면 그 소리에 껍질 밖의 어미닭도 바깥에서 껍질을 쪼아 같이 깨트려준다는 말이다. 우리가 그토록 간절했으니 오늘의 미얀마 역시 그럴 것이다. 오늘은 저 여리고 여린 15세 소녀 완이화가 어미닭이요 갈라테이아다. 우리 또한 마음만이라도 저 갈라테이아가 되어 미얀마를 응원해 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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