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클립] 앙갚음 하려다 최후 맞은 실성 마립간
[오디오클립] 앙갚음 하려다 최후 맞은 실성 마립간
  • 장창호 극작가, 김동균 기자
  • 2021.06.22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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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온라인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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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울림통] 장창호가 들려주는 삼국유사 (34)
앙갚음 하려다 최후 맞은 실성 마립간. U울림통(34)

 신라 제18대 실성(實聖) 마립간. 키가 무척 크고 명민하고 지혜로왔다고 한다. 

 장창호 작가는 실성마립간 편에서 먼저 경주 황남동 대릉원의 합장릉인 황남대총 피장자로 추정되는 내물마립간에 대해 앞서 언급한다. 

 내물 마립간때 외세의 침입이 잦았다. 

 백제 근초고왕이 왜와 연합해 자주 침범하자 고구려 광개토왕에 도움을 청한다. 

 이때 내물 마립간은 조카 실성을 고구려에 볼모로 보냈다. 

 401년 9년만에 신라로 돌아와 왕위에 올랐으나 내물왕에 대한 원한이 남아 있었다. 

 결국 왜와 화친을 맺으면서 내물 마립간의 아들 미해왕자(미사흔)를 볼모로 보낸다. 

 412년 동생 보해왕자(복호) 마저 고구려에 볼모로 보내고 맏형인 눌지 태자는 늘 안타까워 했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 모두 고구려에 인질로 있었던 실성 마립간의 원한에 대해 전한다. 

 그 원한이 깊어서인지 태자 마저 고구려인 손을 빌려 은밀히 죽이려 했으나 이를 알아챈 눌지가 먼저 실성마립간을 죽이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진행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경주시 천군동과 보문동에 이르는 높이 245m 나지막한 포곡식 산성(包谷式 山城)인 명활성(明活城)의 막바지 복원 공사 중이다. 육부촌 중 배.설씨의 시조와도 깊은 인연이 있는 명활성은 동해안을 거쳐 신라 왕경을 들어오는 왜구를 막아내기 위해 지어진 성이기도 하지만 선덕여왕 때 비담과 염종이 반란을 일으켜 7년간 김춘추.김유신의 여왕파와 맞선던 곳이기도 했다. 삼국사기에 실성왕때 왜병이 성을 공격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그 이전에 만들어 진것으로 보인다. 진평왕때는 명활산성을 크게 고쳐 당시 성의 둘레가 3,000보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2021. 5. 15김대웅 제공
경주시 천군동과 보문동에 이르는 높이 245m 나지막한 산에 축조된 명활성의 전경. 석성과 토성이 함께 있는 명활성은 진평왕때 크게 고쳐 당시 성의 둘레가 3,000보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2021. 5. 15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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