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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왕생이
삽화. ⓒ왕생이

한 도시에 글로벌 기업이 들어선다면 어떨까. 환경 유해 기업이면 몰라도 시민들은 쌍수를 들어 반길 터이다. 세계적 기업의 유명세만으로도 엄청난 무게감과 상징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우선 도시의 위상이 한 단계 도약하는 전기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오를 수 있다. 지역민의 자긍심도 덩달아 크게 올라갈 걸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양질의 고용 기회와 지역경제 활성화에 미치는 파급효과로 인해 크게 고무될 게 틀림없다. 

지난 2017년에 있었던 아마존의 제2 본사 유치전이 그랬다. '아마존 효과'로 전 세계가 들썩였다. 대규모 일자리와 세수 증대 등에 눈독을 들인 미국, 캐나다, 멕시코 등 200여 개 도시가 앞다퉈 제안서를 냈다. 무려 119대 1에 육박하는 경쟁률을 보였으니 당시 분위기를 감지하고도 남는다. 1년 뒤 발표된 결과도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워싱턴 DC 인근 버지니아주 북부 내셔널랜딩과 뉴욕 퀸스의 롱아일랜드시티 두 곳에다 설립하겠다는 것이었다.

아마존 측은 이들 두 지역에 향후 20년간 각각 50억 달러를 투자하고, 신규 인력도 2만 5,000명씩 각각 채용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대단한 배팅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계획은 뜻밖의 장벽에 부딪혀 반 토막이 나고 말았다. 선택지 중 한 곳인 롱아일랜드시티 주민들이 집값과 생활비 상승, 교통 혼잡 등을 이유로 거부한 탓이었다. 대규모 인력의 추가 고용에 따른 고밀개발이 각종 도시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가 핵심이었다. 한마디로 '님비 덫'에 발목이 잡힌 셈이었다.

비슷한 사례가 국내에도 있었다. 2013년 강원 춘천에 첫 데이터센터 '각(閣)'을 세워 운영 중인 네이버가 지난 2019년 경기도 용인시에 제2 데이터센터 건립을 추진했지만 불발에 그쳤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데이터센터 운영에 필요한 특고압 전기공급시설에서 유해 전자파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고, 비상 발전시설·냉각탑에서 오염물질이 나올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국내 50여 개 데이터센터 중 주거시설, 학교, 업무시설과 인접한 곳은 30개가 넘는다는 게 IT업계의 설명이고 보면 정보력 부재도 한몫했다고 본다. 세계 1위 클라우드 업체인 아마존웹서비스(AWS)는 서울 가산동, MS는 경기도 평촌 등 도심에 있는 국내 통신사의 데이터센터를 임차해 운영하고 있고 구글의 싱가포르 데이터센터도 초등학교 바로 옆에 있으니 용인시의 당시 선택은 어쩌면 두고두고 논란이 될 소지도 있다.

조재훈 편집국장
조재훈 편집국장

결국 네이버 제2 데이터센터를 품은 곳은 세종시였다. 지난 4월 기공식을 가진 '각(閣) 세종'은 그야말로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제1 데이터센터인 '각(閣) 춘천'보다 6배 큰 규모라는 것도 그렇지만 유치전에 보인 엄청난 열기가 모든 걸 대변해 주었다. 전국 60여 지자체와 민간·개인사업자 등 무려 118곳이 경쟁을 벌였으니 놀랄 만도 했다. 용인시가 '혐오시설' 취급을 하며 건립을 막았던 것이 다른 지자체에서는 초특급 '선호 시설'이었던 것이었다. '각 세종' 건립으로 생산 유발 효과 7,076억원, 부가가치 유발 효과 2,535억원, 취업 유발 효과 3,064명 등 엄청난 미래 잠재력이 가장 큰 메리트였다. 세수 수입 또한 상당할 게 틀림없다. 용인시로서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됐다. 안타까움을 더해 원망스럽기까지 할 것이다. 

데이터센터는 정보기술(IT) 기반의 각종 데이터를 보관하는 시설이다. 4차 산업혁명의 근간인 인공지능(AI), 클라우드 구동 등에 필요한 핵심 공간이다. 전문 조사기관(IDC IGIS)에 따르면 2025년 세계 데이터 총량은 163제타바이트(ZB)다. 당연히 데이터센터도 늘어나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구글이나 네이버 같은 곳에만 데이터센터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기업이 데이터를 사용하고 있기에 필요성은 갈수록 늘어날 수밖에 없다. 

앞으로 지자체들의 데이터센터 유치경쟁은 더욱 치열할 것이다. 만약 유치에 성공한다면 데이터 산업의 집결지로 성장하면서 IT중심 도시로 도약하는 발판이 될 수 있다. 더불어 '4차 산업혁명 도시'라는 이미지까지 덤으로 얻게 되니 일석삼조의 파급효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민간부문 데이터센터가 전무한 울산시가 이제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데이터센터 유치에 눈을 돌려야 하는 이유다. 미지의 분야를 개척하고 예전에 없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겠다는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자세가 미래먹거리를 창조해 낼 수 있다. 산업도시 울산의 자존심도 여기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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