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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호 수필가
이선호 수필가

극악무도한 세기의 독재자 히틀러, 스탈린, 무솔리니는 무소불위의 권력자답지 않게 술을 입에도 대지 않았다. 4대 성인 중 예수는 술을 멀리하지 않았으며 그와 포도주에 얽힌 이야기들이 종교적 의미로 성경에 여러 번 거론된다. 소크라테스는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마셨다하면 누구보다 잘 마셨다. 그러나 술 취한 모습은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다. 공자 또한 주량이 대단한 술고래였지만 어지러움에 이르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어, 그 분도 술이 셌다는 얘기다.

술은 인류가 탄생한 이래 동서고금을 통해 빼놓을 수 없는 신성한 물질로 공간과 시간 속에서 다각적인 방법과 용도로 사용 됐다. 술은 적당히 마시면 긍정적인 효과를 촉진 시킬 수 있는 일종의 향정신성 물질이다. 하지만 과음하면 의식이 흐려져 이성을 잃을 수 있어 건강과 안전의 위협은 물론 남에게 피해를 줘 패가망신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술은 돈독한 관계의 촉매제로 닫혔던 마음을 여는 힘이 있어 각종 인간관계에서 필수 윤활유로 손색이 없다. 

한국은 개인문화보다 집단문화가 강해 만나면 술로 분위기를 만드는 게 불문율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혼자면 혼자라서 좋고 여럿이면 여럿이라 더 좋은 것이 술 마시는 문화다. 국내외여행 중에도 술을 준비해가지고 다니며 식사 때나 저녁에 마시는 알코올 열혈 팬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심지어 교육기간 중이거나 예비군 동원 훈련 중에도 술을 몰래 숨겨 들여와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군에서 점호 후 출출할 때 벽난로에 끓인 라면을 안주 삼아 마시는 소주나 막걸리는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맛을 모른다. 소대장 시절 밤늦게 BOQ 울타리 넘어 위치한 할머니가 장사하는 '뒷집'에서 끓여주는 라면과 한 잔의 집 막걸리 마실 때 기분은 왕후장상이 부럽지 않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산에서 음주 적발 시 과태료 5만원을, 두 번 이상부터는 10만원을 부과 시키는 제도를 벌써부터 실시하고 있다. 산에서 안전사고 건수 중 20%이상이 음주로 인한 것이기에 산행 금주조치는 등산객들의 안전을 위한 정부의 고육지책으로 보인다. 음주 운전처럼 음주 상태에서는 만용과 대담함이 발동해 사고의 개연성이 높아지며 순발력이 떨어져 큰 사고로 이어지기 쉽다. 위험한 산에서조차 음주를 절제 못하는 우리네 문화를 외국인들은 이해할까.

외국인들이 한국의 산에 오면 놀라는 것이 세 가지가 있는데, 그것들은 선진 시민을 자처하는 우리로서 조금은 부끄러운 부분이 없잖아 있다. 말하자면, 누구나 한결 같은 색상과 디자인의 히말라야 등산복장, 산에서 앉았다 하면 술판 벌이기,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큰 목소리로 떠드는 행위 등이다.

수십 년에 걸쳐 몸과 마음에 깊이 배인 '아무데서나 술 마시기 습관'이 하루아침에 고쳐지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금주령은 과거에도 여러 번 시행됐던 기록이 있다. 특히 영조는 엄청난 애주가여서, 금주령을 자신이 내리고서도 매일 곡차라는 이름으로 술을 즐겼다고 한다. 또한 1920년대 미국의 금주령 시대에도 밀주가 독버섯처럼 거래된 것을 보면 인간에게 술은 물고기에 물과 같아 없어서는 안 되는 물질이다.

산상 음주금지 취지는 과태료가 무섭고 단속반과의 실랑이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당신만 바라보는 사랑하는 가족들을 생각해 보라. 정신이 번쩍 들 것이다. 음주로 인한 사고가 '나는 괜찮겠지'라고 생각하는 요행 확률은 누구에게나 제로다. 금지된 사과가 더 맛있듯이 숨겨진 술이 더 맛있을 게다. 산에서의 음주는 치명적이라는 점에서 음주운전과 다를 바 없다. 산상 음주 또는 음주운전은 따끔한 맛을 경험하지 전까지는 습관성 요행수 음주 행위로밖에 볼 수 없다.

술에 취하지 말고 자연에 취하자'는 국립공원의 캐치프레이즈는 자발적인 의식 전환을 독려하는 글귀로 부드럽지만 강한 경고의 메시지로 들린다. 등산은 깨인 상태에서만 운동이 된다. 취중 등산은 심장에 부담을 주고 근육이 손상 될 수 있다. 술 생각이 난다면 하산 후 소박한 호프집에서 여유롭고 편안하게 둘러앉아 뒤풀이 겸해서 소주나 막걸리 한잔 하는 게 어떨까. 등산의 성취감을 공유하고 인생사를 안주삼아 웃음과 대화를 나누며 산행 피로를 푸는 것이 선진 시민의 올바른 자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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