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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호 수필가
이선호 수필가

돈이 많으면 어떤 일이든 다 할 수 있어 행복할 거라는 비현실적인 기대가 정당한가? 너무 행복한 상황 속에 있으면 생물은 퇴화한다. 삶의 희로애락을 이해하고 꿈을 꾸고 눈물 나는 고통과 괴로움으로 영혼이 꽃피어야 진정한 어른이 된다.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특별히 하는 일 없이 너무 느슨하고 무료한 상태에서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면 결국 우울증과 치매라는 불청객이 반긴다.

돈이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거라면 왜 부유층 자녀들은 아름다운 승계와 사회적 헌신이라는 자본권력의 책임과 의무를 망각하고 무절제한 마약과 도박에 빠지고, 폭력을 휘두르고, 갑질을 하는 등 몰지각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가?

고통과 좌절 그리고 피나는 노력 없이 당연하듯이 물려받은 생짜 유산을 거머쥔 업보가 아닐까? 삶의 밑바닥 경험 없이 물질적 타락으로 영혼이 메마르고 정신이 혼탁해져 스스로를 제어 못하는 그들의 미래는 불확실성에 매몰 될 수 있다. 돈은 많지만 끝없는 사회적 비난과 처신의 위기 속에서 인간이 인간답게 인생을 제대로 이끌지 못하는 사람들이 과연 행복하다 말할 수 있을까?

복권 당첨 이후 결혼 생활이 깨지고, 유산을 둘러싼 피도 눈물도 없는 형제간의 분쟁에 휩싸여 콩가루 집안이 되고, 돈이 많아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어지자 허무의 늪에 빠져 약물에 중독자가 돼 인생을 망치는 등의 이야기는 이제 더 이상 뉴스 꺼리가 아니다. 주체하기 어려운 물질적 풍요를 누리며 사치와 방탕, 향락이 인생의 최고봉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종국에 알고 보니 온갖 스트레스에 권태, 우울, 고독의 원천이었다.

백만장자가 됐지만 아직도 가정용품 방문 판매원 일을 한다는 어느 영국 여자는 이렇게 말을 한다.

"아직도 이런 일을 하는 것이 미친 짓이라고들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실 저는 이 일이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돈은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지 못합니다.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바로 사람이지요" 

그녀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과 주변이 굳게 이어져 있음을 인정하며 인연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의지의 발로라 할 수 있다.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며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사람의 내면세계는 찬란한 영혼이 가득 차 있을 것이다.

사람이 부유해질수록 돈이 욕망과 필요의 관계를 왜곡한다. 통계에 따르면 고소득자 상위 5퍼센트에 속하는 사람들 중에 무려 40퍼센트가 정말 필요한 것을 구매할 여력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기현상은 욕망과 필요를 구분하지 못하는 데서 기인한다. 욕망과 필요를 구분 못하는 상태에서 사람들은 소비 욕망을 만족 시키고자 점점 많은 일을 하게 되고 돈에 집착하면서 생각했던 만큼 만족감을 맛보지 못한 채 오히려 갖지 못한 사치품에 대한 갈망만 커진다. 만족되지 않은 욕망을 떠안은 채로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일상을 반복하다 보면 결국에는 불안과 우울증에 시달리게 된다.

어릴 때부터 '학문의 어머니'라 일컫는 인문학 교육이 절실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부와 소유에 집착하고 탐욕에 시간을 허비하다보면 정신적 굶주림이 육체적 굶주림보다 더 끔찍하게 된다. 외적인 무엇인가를 통해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으려 하기보다는 자신의 내면의 인성을 키워 세계와 삶을 스스로 긍정하고, 자신의 삶의 창조와 완성, 즉 보편적 가치에 방점을 둬야한다. 더 나아가 착한 이웃들과 선량하고 민주적인 시민으로 살며 베풂과 나눔을 생활화하여 영혼을 풍요롭게 가꿔야 한다. 그러면 많은 사회문제들이 저절로 해결 될 것이다.

우리는 삶의 목적인 존재와 경험보다 수단인 물질 소유에 탐닉하고 집착하느라 한 번뿐인 소중한 삶을 허무하게 보내는 데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 유한한 삶에서 소유하는데 대부분을 낭비한다면 인생에서 진정한 나 자신과 나의 삶을 위해 살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다. 물신주의에 도취된 도시생활을 접고 홀로 산속에서 자급자족하며 행복해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현상은 어째서 일까? 여건이 허락한다면 한 번뿐인 인생에서 자연을 벗 삼으며 자유로운 영혼으로 가슴 펴고 살고픈 로망은 누군들 없겠는가?

빈부를 떠나, 나이를 떠나, 환경을 떠나 소소한 것일지라도 무언가에서 의미를 찾으면서 끊임 없이 자신의 삶을 창조하는 사람만이 알차고 충만한 삶을 이끌고 나갈 수 있어 진정한 삶의 주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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