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암괴석·폭포·협곡·바위 능선의 조화가 주는 경이로움
기암괴석·폭포·협곡·바위 능선의 조화가 주는 경이로움
  • 진희영
  • 2021.12.23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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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알프스 9봉 톺아보기] 9. 재약산(수미봉)
흑룡폭포
흑룡폭포

겨울은 침묵의 계절. 이 계절에도 내가 꿈꾸는 쓸쓸한 아름다움이 곳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내가 순간에 경탄하고. 눈이 멀어버리고 마음이 녹아내릴 듯한 그런 풍경을 겨울에도 볼 수 있을까. 그리하여 내가 나를 벗어나 새로운 나로 거듭날 수 있을까? 독일의 문호 괴테의 <파우스트>에 '경탄'에 대한 구절이 실려 있는 글이다. 사람들은 제각기 겨울 산을 걸어가는 동안 많은 아름다운 풍경들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그 풍경들을 만날 때 느끼는 감흥은 저마다 다르다고 한다. 조선 초기의 문장가였던 김시습은 아름다운 경치를 만나면 주저앉아서 통곡했다고 하며, 서경덕은 아름다운 산수를 만나면 일어나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고 하며, 이달은 주저앉아서 술을 마셨다고 한다.

'영남알프스의 모든 산을 등반하였더라도 재약산(수미봉)을 등반해보지 않았다면 영남알프스를 논하지 마라' 할 정도로 재약산 수미봉은 표충사를 중심에 두고 기암괴석과 폭포, 수십 미터의 낭떠러지, 협곡, 바위 능선들이 정말 아름답다. 봄이면 진달래와 철쭉, 제비꽃으로 만산홍(滿山紅)을 이루고, 가을이면 수십만 평의 억새평원이 물결치듯 출렁이며, 그 억새 물결을 타고 마치 사명대사의 혼(魂)이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지형적으로 볼 때 산의 서쪽과 북쪽은 급경사를 이루지만 동쪽 사면은 비교적 완만한 경사를 이룬다. 또한 산의 서쪽으로는 표충사와 대원암, 내원암, 진불암, 한계암, 서상암 등의 암자와 옥류동천이 일구어놓은 층층폭포, 사자폭포, 흑룡폭포, 구룡폭포와 금강동천이 품은 금강폭포, 옥류폭포, 일광폭포 등이 절경을 이루어 이 일대를 삼남의 금강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경관을 바라보면 누구나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 재약산(수미봉)으로 가는 2가지 코스
# 울산방면 (주암마을서 계곡 물길을 따라 산행) 

주암마을에서 재약산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는 대체로 완만한 편이다. 먼저 등산로 양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나를 압도한다. 재약산 안부에서 이어져 내려오는 주계 능선이 걸출하고 심종태 바위가 있는 재약능선도 아름다움 그 자체다. 또한 주암계곡은 사시사철 사람의 발길이 끓어지지 않는 곳이다. 봄에는 이름 모를 아름다운 야생화가 즐비하게 피어있고, 여름에는 물놀이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며, 가을철이면 단풍 10리, 물길 10리, 사람 10리라 할 정도로 사색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줄지어 걸어가고, 겨울철에는 저마다의 감흥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재약산에서 바라본 문수봉과 관음봉. 저기 멀리 운무속에 영축산이 보인다.
재약산에서 바라본 문수봉과 관음봉. 저기 멀리 운무속에 영축산이 보인다.

# 주암계곡에 있는 심종태바위
옛날 배내골에 심종태라는 효자가 살고 있었다. 효성이 지극한 심종태는 부모님의 제삿날에 쓸 송아지를 키우다가 어느 날 잃어버렸다. 심 효자와 그의 부인은 송아지를 찾기 위해 재약산 사자평 주위를 며칠간 헤맨 뒤 밤이 되어 잠잘 곳을 찾다가 수십 명이 들어갈 수 있는 바위 밑에 들어가 자고 있었는데 도적 떼들이 그들의 소굴로 돌아온 것이다. 깜짝 놀란 심종태가 여기서 자는 이유를 말하자 도적 떼들은 그 송아지를 자기네들이 잡아먹었다고 말하고, 소 두 마리 값을 주면서 그의 효성을 극찬하였다고 한다. 심종태는 소 두 마리를 사서 한 마리는 잡아서 부모님의 제사에 쓰고, 한 마리는 길러서 수십 마리로 늘려서 나중에는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심종태가 잤던 바위를 가리켜 심종태 바위라고 부르고 있다. 
 
# 표충사방면(표충사에서 옥류동천을 따라 산행)  
표충사를 중심으로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등산로는 오른쪽 계곡을 옥류동천이라 하고 왼쪽을 금강동천이라 부르는데, 재약산을 오르는 등산객은 주로 옥류동천 계곡을 많이 이용한다. 옥류동천(玉流洞天)이란 '계곡으로 흐르는 물이 맑아 마치 소반 위로 구슬이 굴러서 흐르는 것과 같다' 하여 붙어진 이름이다. 계곡 물길을 따라 걸으면 흐르는 물줄기가 마치 살아서 꿈틀거리는 모습을 하고 있다. 영남알프스 최고의 위용을 자랑하는 흑룡폭포는 높이가 40m에 이르며, 층층폭포는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층층이 돌에 부딪히면서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는 것으로 간혹 햇볕이 반사되면 오색 무지개를 연출하기도 하고, 바람이 불 때마다 휘날리며 떨어지는 낙수는 여러 형태의 색깔로 변하는데, 그 모습에 반하고 물보라에 온통 마음이 젖을 정도다. 자연이 저절로 만들어내는 이 아름다운 모습에 감탄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그 경관이 아름답다. 
 
# 큰 사발 엎어놓은 듯한 재약산(수미봉)
재약산을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큰 사발을 엎어놓은 것과 흡사하다. 산의 동쪽 사면은 비교적 완만한 경사를 이루어 광활한 억새평원을 이루고 있다. 수미산은 불교에서 말하는 세상의 중심에서 가장 높게 솟은 산을 뜻하는데, 이곳 재약산(수미봉)도 이러한 뜻에서 이름 붙여졌으며, 또 수미봉을 재약산이라고도 하는데, 예로부터 이곳에는 약초가 많이 자생하고 있었다고 한다. 신라 때는 화랑도의 수련장이기도 했으며,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의 승병 훈련 장소이기도 했다. 또 산 동남쪽 사면(720~760m)에 있는 재약산 산들 늪 습지지구로 지정되어 있으며, 국내에서 고산 습지로서 가장 큰 습지로 습지 한가운데로 실개천이 관통하는 것이 특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곳에는 환경부 멸종위기야생동물과 멧새, 붉은머리오목눈이, 아무르 줄 장지뱀과 복주머니난, 큰방울새난, 천마 등 희귀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 정상에서 펼쳐지는 일망무제 풍광
정상에서의 조망은 한 마디로 일망무제(一望無際)다. 북쪽으로는 지척에 있는 천황산(사자봉)이 그 위용을 드러내고, 동쪽으로는 신불산을 비롯한 영축산, 죽바우등, 시살등, 오룡산이 한일(一)자처럼 길게 이어지고, 남쪽으로는 향로산과 재약봉, 코끼리봉이 표충사를 기점으로 부챗살처럼 펼쳐진다. 또 발아래는 문수봉에서 관음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오고, 사자평과 고사리분교 옛터, 산들 늪 고산 습지가 한 폭의 그림처럼 느껴진다. 또한, 서쪽 산기슭에는 유명한 대사찰인 표충사를 비롯해 부근에 내원암, 서상암, 진불암 등의 암자가 있다. 

정상석
정상석

# 재약산과 천황산 정상부의 각기 다른 모습
재약산(수미봉)과 천황산(사자봉) 정상부의 모습은 그 형태와 느낌에서 약간의 상반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사자봉은 정상석을 비롯하여 1개의 케론(cairn)과 정상석을 기준으로 여러 사람이 모일 수 있는 완만한 형태의 봉우리다. 주변에는 작은 돌들이 흩어져 있고, 마치 백수의 왕 사자처럼 여유로움과 넉넉함이 넘치는 남성적인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재약산(수미봉)은 마치 향료처럼 뾰쪽한 바위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어 여러 사람이 동시에 올라설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2~3명이 발을 디딜 수도 없을 정도로 협소하며, 수줍음과 소심함, 가냘픈 여성적인 봉(峯)이라 할 수 있다. 

 가지고 온 차가 없거나 시간이 허락한다면 자유롭게 하산 길을 택할 수 있다. 재약산에서 천황재를 거쳐 천황산(사자봉)을 지나 얼음골 방향으로나 배내고개 방향, 원점회귀를 할 수 있는 주암계곡방향, 천황재에서 서상암과 한계암이 있는 금강동천계곡 방향, 재약산 정상에서 남쪽으로 약 20여분 내려오면 문수봉과 관음봉 방향등 여러 다양한 방면으로도 하산할 수 있다. 만약 표충사 방향으로 하산한다면 표충사에 경내를 한 바퀴 돌아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 표충사(表忠寺)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의 말사다. 신라 진덕여왕 때인 654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한 절로 본래 이름은 죽림사다. 신라 흥덕왕(826~836년) 무렵에는 이곳에서 영정 약수로 왕자의 병을 치료한 연유로 영은사라 불리게 됐고, 조선 시대 때 18대 현종이 표충사(表忠寺)라는 사액을 내리면서 사찰 이름이 표충사로 불리게 됐다. 표충사 경내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향로인 청동함은향완(국보)을 비롯해서 석가여래 진신사리를 모신 3층탑, 송운대사의 유품 300여 점이 전시된 유물전시관,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운 3대 사(서산, 사명, 기허)의 영정을 모신 표충서원 등을 둘러볼 수 있다.
 

진희영 산악인
진희영 산악인

 세월은 물처럼 덧없이 흘러간다. 우리는 산을 볼 때는 멀리 보라 하고, 계곡에 들면 앞을 보라하고, 가파른 능선길은 천천히 걸으며 거친 숨소리를 즐길 줄 알아야 한다. 한 해의 마지막 달인 12월도 얼마 남지 않았다. 작은 바람에도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며 일렁이는 억새들, 아직 옷을 다 벗지 못한 갈참나무의 잎새를 바라보며, 인간에 있어서 진정한 보석은 푸르른 젊음이 있다는 것임을 오늘 산행을 통하여 깨닫게 된다. 나의 산행은 언제나 그랬다. 한때는 산을 닮고자 노력했고, 산이 거기 있으니 간다는 지극히 당연한 논리 속에 올 한 해도 저물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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