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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숙 울산북구건강가정 다문화가족지원센터장
이영숙 울산북구건강가정 다문화가족지원센터장

울산 북구 건강가정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동대5길 31(호계동)로 이사 온 지 어언 3년이 지났다. 외형만 봐도 옮기기 전과는 확연히 다르다. 세 들어 살 필요도 없다. 독립된 3층 건물을 센터에서 다 사용한다. 누가 봐도 예쁘고 깔끔한 게 보기에도 호감이 간다. 
 집이 좋으니 애정이 가는 건 당연지사다. 그런데 며칠 전 방문객이 들어서면서 무심코 던지는 말이 내 맘을 흔들어 놓았다. "센터가 참 아름답네요. 아마도 전국에서 몇 번째로 좋은 센터인 것 같은데요?" "지자체에서 더 열심히 하라고 마련해 주셨는데 우리 가족들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엄청 좋아한답니다." 자부심과 고마움을 장착한 내 마음이 전달되었을 때였다. 방문객은 이상하다는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흘깃거리며 센터 내부를 훑어보는 것이 '이런 시설이 이렇게 좋을 필요가 있나?' 하는 표정 같았다. 기분이 묘했다. 방문객이 던진 말의 내용은 별 게 아닐 수 있으나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 다문화센터가 열악한 환경이 아니고 깔끔하고 외관도 훌륭한 것이 의아하다는 듯했다.

 다문화센터는 시설이 좋으면 안 되는 걸까? 소외되고 미약한 사람들은 늘 열악한 환경 속에서 서로 얼굴을 부비며 초라하게 살아야 하는 걸까. 이런 면도 이주민을 받아야 하는 쪽에서는 일종의 갑질이라는 생각에 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자신들의 것을 빼앗기기라도 한듯한 표정에 관리자로서 만감이 교차했다. 가끔은 후원자들이 찾아와서는 다른 복지시설도 많은데 왜 다문화센터에 후원해야 하는지를 모르겠다며 푸념을 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당장 그만두라는 말이 목을 간질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복지관이랑 다른 복지시설들은 집기까지 완벽하게 갖춰놓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왜 다문화센터는 그러면 안 되는 건지 따져 묻고 싶었다. 위탁운영이라고 하면 사업을 위탁받은 것일 뿐이다. 무엇보다도 주어진 사업을 지침에 맞게 잘 운영하라는 것이 지자체에서 맞갖은 건물을 배려한 이유일 것이다. 물론 건물이 좋지 않다고 시설 운영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왕이면 모든 여건을 잘 갖춘 환경에서 프로그램 운영에만 몰두할 수 있다면 그 또한 위탁업체와 지자체에서 원하는 바가 아닐까 싶다.

 2016년 필자가 이곳으로 발령받아 왔을 때 어느 이민자가 조용히 한마디 던졌다. "우리 센터는 왜 이렇게 작아요? 다른 센터에 비해 너무 초라해서 친구들에게 놀러 오라는 소리도 못 하겠어요. 우리도 좋은 곳으로 이사 가면 안 돼요?" 철부지 자식이 부모에게 떼라도 쓰는듯 내 손을 잡고 했던 말이다. 현재의 건물로 이전하기 전 낡은 건물 2층을 빌려 쓰던 때였다. 이제는 잊을 법한 기억인데도 내 머리에는 화인처럼 선명하게 남아 있다. 센터장이 맘만 먹으면 센터가 쉽게 옮겨갈 수 있을 거라고 여기는 것 같았다. 우리도 자라면서 그런 기분을 한 번쯤은 느끼지 않았던가. 사는 집이 번듯하지 않으면 친구들을 데려오기 싫었고, 초라한 밥상 앞에 친구랑 같이 앉는다는 것이 창피스럽게 여겨졌던 기억들. 타국에서 비록 좁은 집에 살았을망정 자신들이 모이는 센터만이라도 번듯했으면 하는 마음이 방문객의 생각 없이 내뱉은 말에 짓이겨지는 기분이었다.

 사실 우리 센터도 여기에 오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몇 번이나 옮겨 다니다가 지자체의 도움으로 행운을 얻을 수 있었다. 모든 이민자가 함께 노력한 덕분이다. 정착을 위한 프로그램에 다들 즐겁게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이 많은 이들을 감동시킨 것이다. 그랬기에 센터가 현재의 건물로 이사할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설레는 마음에 잠을 설치기도 했다. 처음 내 집을 마련했을 때만큼이나 뿌듯했다.
 2018년 12월 마지막 날, 살을 에는 듯한 추위 속에서도 우리는 두 손 호호 불어가면서 짐을 싸고 옮겼다. 조금도 힘들 지가 않았다. 돌이켜 보아도 가슴이 찡해 오는 건 감사한 마음뿐이다. 가족들도 나 몰라라 않고 따끈한 호떡이랑 떡볶이, 어묵 등 간식까지 들고 와서는 정리까지 도와주며 함께 해 주었다.
 오늘도 그날처럼 매서운 바람이 분다. 주변의 시선이 차가울 때도 있다. 하지만 더는 떨지 않는다. 센터 이용자들의 마음에 추위는 없고 뜨거운 열기만 있으므로. 대신 센터의 숙제도 명백해졌다. 가족들 서로가 버팀목으로 자리하고 있는 만큼 이 공간 안에서 맘껏 뒹굴며 파란 꿈을 키울 수 있게 배려하는 일. 그렇게 자란 꿈이 꽃으로 피어나도록 도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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