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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환 '울산(鬱散)' 2021, 잉크젯 프린트, 120x85cm
백인환 '울산(鬱散)' 2021, 잉크젯 프린트, 120x85cm
강유진 울산시립미술관 학예사
강유진 울산시립미술관 학예사

전혜린 작가의 수필집을 읽으며 '아스팔트 킨트(Asphalt Kind)'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다. 킨트(kind)는 어린이를 가리키는 독일어로, 흙이 아니라 차가운 아스팔트와 빌딩 숲에서 자란 도시 아이들을 말한다. 그 작가의 표현대로라면 나는 '모니터 킨트(Monitor Kind)'이다. 아스팔트 킨트가 모더니즘의 산물이라면, 모니터 킨트는 디지털 혁명을 통한 새로운 매체 시대의 산물일 것이다. 


 여기 또 다른 모니터 킨트인 백인환 작가는 일상적 풍경에서 극적인 장면을 발견해 기록하거나, 이상적인 자연의 이미지를 사진으로 작업해왔다. 최근에는 이미지를 이루는 데이터의 형태와 사진을 편집하기 위해 사용되는 디지털 도구 및 인터페이스로 사진 이미지를 만들고 있다. 이를 통해 작가는 사진을 이루는 물질적, 비물질적 요소로 화면 속 이미지와 일상의 조건을 성찰한다. 


 초기 작업인 <Garden Room〉에서 작가는 "이상적인 자연"의 모습을 포착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인위적인 오브제들을 사용한다. 떠돌아 다니는 자연의 이미지를 배경에 두고 인조 잔디, 조화, 모형 새 등의 플라스틱 오브제들을 배치하고 촬영하여 다시 납작한 이미지로 가둔다. 백인환은 자연에 대한 관념이 자연을 통해 형성된 것이 아니라 디지털 이미지를 통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일련의 작업 과정으로 반추해낸다. 


 근작 <울산(鬱散)〉 연작에서는 지명 울산이 아니라, '답답한 기분을 떨쳐 없애 버림'이라는 동음이의어를 통해 산업 도시 울산의 이면을 포착한다. 작가는 자연과 인공, 노동과 여가가 교차되는 울산의 풍경을 담아내 사진적 공간을 구성한다. 이로써 사진술과 디지털 이미지 프로세싱, 자연스러운 것과 인공적인 것 등을 사유할 수 있는 대상으로 포착해 형식화하는 것으로 사진 이미지가 작동하는 디지털 환경을 살피기도 한다. 


 작가의 여러 작업들은 앞선 두 작품의 방법론만큼이나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같은 인식의 체계와 미학적 바탕을 공유하고 있다. 디지털이라는 조건과 이미지 프로세싱 또한 인공적인 것이면서 동시에 우리가 매일 보는 일상적 풍경이기 때문이다. 


 백인환의 렌즈에 포착된 울산(鬱散)에는 높은 회색 굴뚝을 감아 담쟁이 넝쿨이 자라고 있는 사진 이미지가 있다. 파란 넝쿨이 엉킬대로 엉켜 굴뚝의 모습도 잘 보이지 않지만 자연스럽고 인공적인 이미지로 공간을 재영토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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