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
미안하다
  • 김감우
  • 2022.05.17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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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감우 시인

미안하다

조덕자
 
어쩌다 한 번씩
내게로 오는 소식들이 옛집으로 배달되고는 한다
몇 번의 계절이 지나갔는데도
아직도 이사했다는 말들이 세상 속으로 덜 걸어 다녔나보다
그러다 보니 더러는 몇 달이 지나서 내게 오기도 한다
보낸 사람 따뜻한 마음 아랑곳없이 옛집 우편함 속에 갇혀
어쩌면 내 손길 기다리다 지쳤는지도 모른다
마감이 한참 지난 원고 청탁서나
맑은 물 위에 뜬 언어들이 가득한 시집을 뒤늦게 받고 보면
보낸 사람 마음을 무시한 것 같아 나 또한 무참함에 발이 저린다
미안하다고
한 곳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떠나와서
내 삶 속에 묻혀 살다 보니 내가 살아온 곳 자주 돌아보지 못해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
가끔 뒤돌아보면 내가 살던 곳에는
아직도 뿌리내린 추억들이 남아 눈부신 초록 잎사귀를 흔들며 서 있다
 
△조덕자: 경남 하동 출생. 1997년 '심상' 등단. 시집 '가구의 꿈' '지중해 블루 같은'. 제1회 울산작가상 수상. 한국작가회의, 울산작가회의, 심상시인회 회원으로 활동 중.

김감우 시인
김감우 시인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 한 지 이 년째다. 그래서 이 시의 상황이 내 현재이다. 얼마 전 문우로 알고 지내던 지인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첫 시집을 보냈는데 반송되어왔다고. 얼마나 미안하던지…. 첫 시집을 내는 설렘과 착잡함을 너무나 잘 알기에 더욱 그러했다. 수신인인 나에게 마음이 먼저 여러 차례 다녀간 다음에야 책이 출발했을 것인데. 본인에게 되돌아온 책을 맞는 마음이 어땠을까. 미안하다,를 반복하는 구절구절에 공감한다. 

 그리고 묘하게도 나는 이 시의 마지막 행에서 크게 위로받는다. 추억들이 눈부신 초록 잎사귀를 흔들며 서 있다는 말이 든든한 뒷배처럼 나를 지켜준다. 과거가 살아서 걸어나오는 아침이다. 내가 살아온, 그리고 떠나온 집들을 떠올려 본다. 반구동 신혼집으로 가는 골목이 보이고 그 집에 함께 세 들어 살던 여섯 가구 새댁들이 보이고, 골목 가득하던 생선 장수 트럭도 보인다. 그가 외치던 고등어 갈치 빨강 고기 사이소~라는 말은 아직도 생생하여 크레파스 하나를 쥐면 단박에 그려낼 수도 있을 것 같은 아침. 

 태풍을 피해 인근 학교로 대피하던 날의 급박한 상황도 그대로다. 하늘에 커다란 구멍이라도 난 듯 쏟아붓던 빗줄기와 물이 허리까지 차올라 바닥을 가늠할 수 없었던 골목길이 보인다. 위태롭던 한 걸음 한 걸음이 지금도 내 발바닥에 그대로 살아있다. 시인 말대로라면 초록 잎사귀를 흔들며 서 있다. 문득 가보고 싶어진다. 
 시인과 촌장의 노래 '풍경'을 듣는다.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 오랜만에 학창 시절 나를 만나듯 반갑다. 제자리란 무엇일까? '그 시절의 나'는 그 집 그 골목이 제자리다. 이사로 떠나왔지만 소리가 생생히 살아있는 골목과 나의 종종걸음과 밤새워 뒤척이던 막막함과 불안들. 그 자리에 뿌리내리고 살아갔던 나의 매 순간을 긍정하는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일'이라 생각한다. 노래 속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에 해당하는 제자리, 시 속에 있는 바로 그 "가끔 뒤돌아 보"는 곳이다.  김감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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