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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철 울산교육청 교육기자단
이영철 울산교육청 교육기자단

지금 우리의 교육은 배움의 즐거움에 비중을 두기보다 공부의 의무성 강조가 문제가 되고 있다. 아이들이 공부의 꿀맛을 스스로 느끼도록 해줘야 할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제일 맛 좋은 술이 당신의 입술"이라는 아재 개그가 있다. 그 말을 듣고 재미있어서 웃기도 했다. 입술에서 내뿜는 물질적 액체 맛이야 그다지 좋다고는 할 수 없겠으나 느껴지는 강렬한 정서적 맛이 제일 좋다는 것은 그것이 천하제일 맛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가슴 뜨거운 강렬한 밀착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맛이 제일 좋은 음식은 무엇인가 라고 묻는다면 동일한 답을 듣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맛에 대한 주관적 감각이 다르고 그것을 감별하는 일정 기준에 의해 판단할 수 없고 또한 맛의 민감 기인 영아기부터 미감 훈련을 어떻게 받았는가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60세 이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머니가 정성껏 끓인 된장찌개, 칼국수가 제일 맛이 좋다고 할 것이고 요즈음의 초, 중학생과 젊은 세대들은 아마도 피자, 햄버거, 치킨, 고가의 커피 혼합물 등이 맛이 좋다고 할 것이다. 그와 같은 음식의 맛이 제일 좋다고 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유년기에 많이 먹어서 맛에 대한 감각이 정착되어서 일 것이다. 그러나 제일 좋은 맛은 근원적으로 본다면 꿀맛이 가장 으뜸일 것이다. 그래서 맛이 좋은 것을 극찬해서 꿀맛 같다고 한다. 이성 간에 관계된 사랑의 극치도 꿀맛 같은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꿀맛은 제일 좋은 맛의 상징으로 남아있다. 

맛 좋은 꿀이 공부와 연결되어 꿀맛 같은 공부라고 노래한다면 아마도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문화민족의 나라가 되어 더욱 고 촉광으로 빛나는 동방의 등불이 될 것이다. 공부에 대한 미감 훈련은 유치원 시기에 꿀맛 같은 공부로 각인되도록 출발되어야 한다. 공부가 맛이 없어서 이를 기피하고 학습 태만을 갖게 되는 책임이 그들 자체에 전적으로 있기보다는 부모나 어른들에게 있다고 여겨진다. 그것은 학습자에게 배움의 즐거움이 자생하도록 하는데 비중을 두기보다 공부의 의무성을 강조하는 데에서 나타나는 현상이 아닐까 한다. 공부의 의무성을 강조하는 것은 좋은 성적을 강조하는 의미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하겠으나 좋은 성적은 공부의 의무성을 강조하는 결과에서 반드시 나타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부모는 자녀들을 교육할 의무는 있어도 아이들이 좋은 성적을 따낼 의무는 없다는 것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이스라엘의 유태인들은 유치원과 학교에서는 공부라는 것은 달고 맛있는 것이라고 유아와 아동들에게 각인시켜 주려는 노력을 한다. 유치원에서는 유아들이 입학하는 첫날에 선생님이 꿀을 먹여 유아들이 꿀의 단맛을 의미 있게 느끼도록 하여 유치원을 그 단맛의 이미지로 상징화시킨다. 초등학교에서는 신입생이 선생님과 만나는 첫날을 공부의 감미로움을 아동들에게 가르치는 날이라는 것을 새겨 주기 위해서 아동들을 책상에 앉혀 놓고 손가락에 꿀을 묻혀 헤브라이어 알파벳 스물두 자를 모두 쓰게 한다. 그리고는 이제부터 여러분들이 배우는 것은 모두 이 스물두 자가 출발점이 되며 더욱 이 그것은 꿀처럼 달고 맛있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뿐만 아니라 흰 설탕을 바른 과자나 헤브라이어 알파벳을 설탕으로 쓴 케이크를 만지도록 하고 케이크 접촉을 통해 손가락에 묻은 단물을 직접 빨도록 하여 배운다는 것은 꿀처럼 달다는 것을 의식을 통해 가르친다. 

이와 같이 꿀을 공부와 연결한 교육적 노력은 결국 세계적으로 저명한 교수, 노벨상 수상자, 저명인사를 배출하게 된 것이다. 현재 미국에 있는 유태인들은 미국 전체 인구의 약 3%에 불과하지만 전국 유명한 대학에서 봉직하는 교수의 30%가 유태인이고 노벨상 수상자 중 약 15%가 유태인이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익히 아는 사실이다. 간과하지 말고 의미 깊게 숙고해 볼 일이다. 자기의 내부적 요구에 의해 자신의 노력으로 자신의 독자적인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성공하는 방법을 꿀맛 같은 공부를 통해 터득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손목에 차고 다니는 시계는 일어나는 시간을 알기 위해서 있는 것이지 자는 시간을 알기 위한 것은 아니라는 유태인들의 격언은 일찍 일어나서 꿀맛 같은 공부를 즐겁게 하라는 유태민족의 교육적 유언이라 생각해본다. 교실 내외에서 면학 정진하고 있겠으나 학습자가 의무성을 느끼고 외부적 동인에 의해 학습에 마지못해 참여하기보다 공부의 꿀맛을 스스로 느끼면서 자명종이 울리기 전에 기상하여 배움의 즐거움을 한없이 가져 주었으면 한다. 이런 실천에는 부모와 교사, 교육공동체의 성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에 동의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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