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병훈 수필가
오병훈 수필가

올해는 7월 16일이 초복이었고 내일(26일)이 중복이다. 그리고 열흘 뒤인 8월 5일이면 말복이다. 1년 중 가장 무더운 때가 삼복이라 하였다. 이 시기는 고온다습하여 몸 관리를 잘 못하면 여러 가지 질병이 따르게 된다. 복(伏)은 사람 옆에 개가 엎드려 있는 형상이다. 사냥에 참가한 개도 너무 더운 날씨에서는 전의를 잃고 휴식을 취한 다는 뜻이리라.
 최남선의 '조선상식(朝鮮常識)'에 따르면 더운 기운을 꺾어버린다는 뜻으로 서기제복(暑氣制伏)이라 했다. 복날은 더위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부딪쳐서 제압한다는 뜻이다. 옛 사람들은 더위 속에서도 땀을 흘리며 일을 하는 동안 오히려 화기를 물리칠 수 있다고 보았다. 더위를 더위로 물리치는 이열치열이라는 말이 생겼다.

 복날 풍습은 중국의 옛 민속절에서 왔다. 진한(秦漢) 시대부터 복날을 기념하여 여러 가지 행사를 하고 시절 음식을 해 먹었다. 후한의 유희가 지은 '사서(史書)'에는 '가을인 금(金)의 서늘한 기운을 피해 여름인 화(火)의 기운이 조용히 엎드려 있다'는 뜻에 따라 복날이 되었다고 한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따르면 '진덕 공 2년 삼복에 개를 잡아 사대문앞에서 제사를 지냈다'고 적었다. 복날 개를 잡아 시절 음식으로 먹는 풍습은 옛 중국에서 유래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홍석모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도 '개를 잡아 파를 넣고 끓인 국을 개장 (狗醬)이라 한다. 죽순을 넣으면 더욱 맛이 좋다. 개장에 고춧가루를 넣고 밥을 말아 시절음식으로 먹는다'고 했다. 땀을 흘리며 먹으면 더위를 물리치고 허한 기운을 보강할 수 있다고 했다. 개고기를 북한에서는 단고기라 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보신탕이라는 말 대신 단고기라는 말을 쓰면서 혐오식품이라는 인식을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개고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쇠고기로 끓인 국이 육개장이고 닭고기를 쓰면 닭개장이 된다. 모두 조리하는 방법은 비슷하다.

 복 즈음에 먹는 시절 음식으로 붉은 팥으로 죽을 쑤어 삼복에 두루 먹었다. 팥을 갈아 채에 내리고 묽은 죽이 끓을 때 불린 쌀을 넣으면 된다. 전라도 지방에서는 팥죽에 쌀 대신 국수를 말아 먹기도 한다. 붉은 색으로 액을 물리치고 사귀를 막아 건강한 여름을 보내기 위한 방법이다. 또 피 조 기장 벼를 종묘에 올리고 제사를 지냈 다. 이러한 풍습은 '예기(禮記)'에 '중하에 농가에서 기장을 올리면 천자는 종묘에 제사를 지낸다. 밀이나 보리 같은 햇곡식으로 제를 지내고 천자가 친히 맛본다'고 했 다. 우리나라의 풍습도 여기서 비롯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삽화. ⓒ왕생이

 삼복 무렵에는 각 관청에서 관리들에게 얼음을 나누어 주었다. 나무로 만든 패를 주면 이것을 가지고 서빙고 동빙고로 가서 얼음을 받아 왔다. 또 밀가루 반죽을 얇게 밀어 가는 면발이 되도록 썰고 살짝 익힌 뒤 찬 어저귀 국물을 붓는다. 여기에 배추 고갱이 데친 것을 잘게 찢어 올리고 닭고기 고명을 얹어 먹는다. 오늘날의 냉국수와 비슷하다.
 미역국에 닭고기를 넣어 먹기도 한다. 재미있는 것은 떡볶이를 여름철에 먹었다는 사실이다. '동국세시기'에 따르면 '애호박과 돼지고기를 썰어 넣고 고추장에 볶다가 흰 떡을 넣거나 굴비 대가리를 섞어 볶기도 한다.' 모두 복중에 먹었던 시절 음식 이다. 그리고 참외와 수박은 더위를 씻어주는 좋은 식품이었다.

 중국의 경우 우리보다 수백 수천 배나 많은 구육(狗肉)을 소비한다. 그러나 베이징 올림픽 때 중국의 개고기 시비는 없었다. 강대국 앞에서는 정의를 내세우지 못하면서 작은 나라에는 올림픽 보이콧이라는 위협을 가하고 있다. 남의 문화를 간섭하는 것도 올림픽 정신에 어긋난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다. 
 프랑스의 경우 수달을 잡아 산채로 식탁에 펴놓고 라공탱이라는 요리를 해 먹는다. 보신탕 보다 혐오스럽지않다고 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유난히 개를 좋아하는 영국인이나 프랑스인에게는 강아지가 가축이 아니라 가족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전통적인 우리 입장에서는 개도 소나 닭처럼 가축이었다. 그래서 집안에 노인이 계시면 여름철 삼복더위를 이겨내도록 개를 잡아 보양을 시켜 드렸다. 이렇게 하면 한 해 여름을 거뜬히 날 수 있었다. 개고기는 장복할 수 있어서 동물성 단백질로 노인의 허약한 체질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 때문에 개고기는 식품이 아니라 약이었다. 개고기를 찬양하고 싶지는 않지만 전통음식도 우리 문화의 하나라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