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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됐지만, 지금에라도 만든다니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다." 울산시가 추진하는 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 건립을 두고 지역 문화·예술계에서 나오는 대체적인 반응이다. 그도 그럴것이 시지정 무형문화재 5호였던 전각장 정민조 선생이 울산의 열악한 상황을 견디다 못해 지난 2018년 "울산은 창작활동을 하기에 매우 열악한 곳"이라는 말을 남기고 지역을 떠난 후 나온 사후약방문 식 대책이기 때문이다. 정 선생은 현재 부산시 무형문화재 26호로 지정돼 부산에서 활동하고 있다. 정 선생은 우리나라 초대 국세를 제작한 한국 전각계의 거장인 석불 정기호 선생의 아들이자 전수자다. 부친에게서 30년간 전각을 배워 50년 넘게 목전각과 동전각을 계승하고 있다. 예술가를 지원할 창작공간을 마련해주지 않아 소중한 지역의 무형문화재가 '탈울산'을 하는 기막힌 현실이다. 그동안 예산을 이유로 문화·예술계의 요구를 번번이 외면해왔던 시가 늦어도 한참을 늦은 이제서야 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을 짓겠다고 나선 것이다.

지정·비지정 문화재 특성별 창작공간 마련…지원 정책수단 강구도
 울산시는 지난해 마련한 무형문화재 보전 및 진흥 시행계획을 통해 가칭 울산시 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 사업계획안을 처음으로 내놨다. 교육관은 총 72억9,000만원을 들여 연면적 1,652㎡ 규모로 지을 계획이다. 시는 우선 오는 11월 완료 예정인 전수교육관 건립 타당성조사 용역을 통해 입지와 운영방안을 마련하고 부지 확보에 나설 방침이다. 이어 내년까지 기본계획을 세우고 2024년 실시설계에 이어 2025년까지 건립을 끝낼 계획이다. 일단 사업이 순조로우면 2025년엔 울산의 무형문화재와 비지정 무형문화유산들이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 창작공간은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울산의 무형문화재는 1호 장도장, 2호 일산별신굿, 3호 모필장, 4호 옹기장, 6호 벼루장, 7호 울산쇠부리소리 등 6개다. 이밖에 비지정 무형문화유산으로 마두희, 단청장, 판각장, 침선장, 칠보장, 안택굿, 처용무, 울산영등할망 등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들 무형문화재들은 지정이나 비지정이나 그동안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열악한 여건 속에서 어렵게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울산 1호인 장도장 장추남 선생은 아흔이 넘은 노구를 이끌고 65년 넘게 전통의 맥을 지키고 있다. 선생의 공방에는 소음방지 시설이 없고, 이웃이 있어 망치질이 여간 조심스럽지가 않다. 담장을 넘은 망치소리 때문에 지금까지 지켜온 민족 유산이 욕을 먹을까 걱정돼서다. 다른 무형문화재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7호 쇠부리소리 보존회는 고가도로 밑에 펜스를 친 임시공간에서 연습하고 있다. 재작년 태풍 땐 공연 소품이 날아가 파손되는 일을 겪었다. 안전한 연습장이 마련돼 있지만, 주민들에게 소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비바람이 들이치는 이곳을 고집하고 있다.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정상적인 작품활동은커녕 명맥을 이어가는 것 마저도 벅찬 현실이다. 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 건립이 필요한 이유다. 그것도 매우 시급하다.

 정치인들이나 단체장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역사·문화도시 울산'을 외치지만, 무형문화재만 놓고 보면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었다. 현재 전국 17개 시·도 중 무형문환재 전수관이 없는 곳은 울산시가 유일하다. 부끄럽고 창피스런 일이다. 세계 최고의 선사시대 걸작인 반구대 암각화를 보유한 울산시민의 역사문화 자긍심에 먹칠을 한 용납할 수 없는 사안이다. 인구 36만에 불과한 세종시는 지정 무형문화재가 3개 뿐인데도 전수교육관을 갖고 있다. 무려 20개의 지정 무형문화재를 가진 광주시는 전수관이 2개나 된다. 대전시는 24개의 무형문화재에 4개의 전수관을 운영 중이다. 책임 있는 당국자들은 도대체 그동안 무엇을 했단 말인가. 앞서간 도시들의 모범정책 벤치마킹은 이런 걸 하라는 것인데, 답답할 노릇이다. 만시지탄이 따로 없지만, 이제라도 전수교육관을 짓겠다고 나섰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고맙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무튼 늦게나마 무형문화재 전수관을 건립하겠다고 했으니 제대로, 야무지게 만들어야 한다. 지정 문화재 6개가 갖고 있는 작품활동의 특성을 꼼꼼하게 따져 개별 전수실을 배치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여기에 비지정 문화재들도 장르별 포괄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창작공간을 제공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아울러 전수교육관이란 기본 인프라에 전수생들을 체계적으로 육성할 수 있는 정책 수단도 강구하기를 바란다. 늦었기에 더 잘할 수 있었다는 말을 할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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