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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필주 울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정필주 울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얼짱 각도 45도' '각종 필터링' '현란한 사진 보정기능'

요즘 SNS에 사람들이 사진을 올릴 때 흔히 쓰는 단어들이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풍경, 음식, 사물 등 우리 주변의 모든 일들은 손쉽게 와이어드의 세계로 탑재된다. 사람의 얼굴을 찍을 때도 '쌩얼' 모습의 사진을 그대로 웹상에 올리는 것은 오히려 낯선 일이 되다시피 했다. 나의 유일성과 개성을 드러내는 징표인 '얼굴'에 가해지는 다채로운 변신의 기술들은 얼핏 보면 한계 없이 자유로운 '나'의 확장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회심리학에서 말하는 '원초적인 나(I)'와 '사회적인 나(me)'라는 개념은 이러한 개인들의 분열적이고 다중적인 자아개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실제로 '변화무쌍한 개인 얼굴의 변주와 그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사회구조'라는 개념을 시각화하는 예술작품들이 있는데, 올해 5월 울산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어느 정도 예술공동체: 부기우기 미술관' 전시회에 출품됐던 김지영 작가의 작업 '언캐니 파사드 Uncanny Facade'가 그중 하나다.

김지영 '언캐니 파사드 Uncanny Facade'  2021년, 디지털 피그먼트 프린트, 300x540 ㎝
김지영 '언캐니 파사드 Uncanny Facade' 2021년, 디지털 피그먼트 프린트, 300x540 ㎝

이 작품은 60x60㎝ 크기의 여성 프로필 사진 총 45개를 한 화면에 모은 것이다. 마치 45자매를 둔 한 가정의 인물도라 여겨질 만큼 45명은 모두 닮은 꼴이다. 실은 작가가 자신의 얼굴을 찍고,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서 44가지의 다양한 변주를 한 것이다. 이 작업을 하면서 작가는 "디지털의 등장으로 사진의 숙명은 낡아버렸고, 사실성은 훼손됐다. 그렇다면 차라리 나는 허구로부터 시작된 사진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찾고 싶었다"고 말하고 있다. 작가도 밝히고 있다시피 여기서 '누가 최초(본래)의 얼굴인가?'를 가리는 것은 무의미하다. 

이 작품은 상황과 장소, 그리고 상대에 따라 다양한 얼굴을 하고 살아가고 있는 사회적 동물로서의 우리들의 모습이 실상, 허구의 경계로부터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음을 말하고 있는 듯하다. 매일 화장이나 얼굴 표정을 달리하는 것은, 각종 필터를 사용하여 SNS 공간에 업로드되는 수많은 '나'의 모습들은, 가볍게 표현해 보자면 '본판'의 공인된 에디션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미지들은 허구임을 선언한 채, 그 존재를 드러낸 작품, '언캐니 파사드' 속 인물들보다도 훨씬 괴이하고 요상할 수도 있다. 더군다나, 가장 많은 '좋아요'를 받는 '나의 버전'을 쫓다 보면, 어느새 다른 이들과 눈을 맞추고 있는 수많은 '또 다른 나'들이 나로부터 등을 일제히 돌린 것 같은 느낌에 빠지기도 한다.

최근 SNS에 올라오는 수많은 사진들은 다채로운 '나'를 드러내며 '원초적인 나'를 무한히 확장시키고자 하는 이들의 자유로운 향연인 듯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 안락한 자유의 세상이 실은 인종, 계층, 계급, 젠더 등 전(前) 디지털 사회가 지니고 있던 각종 질서와 카테고리가 뽐내는 권력구조에서 아직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한 것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원초적인 나'의 발랄한 발걸음은 실은 '좋아요 사회'의 피라미드를 신화 속 시지프스 마냥 끊임없이 오르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리라. 무한한 변신의 자유로움을 보장하는 발걸음에 고속엔진을 장착하는 것은 공짜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섬뜩한 통찰은 시각예술이 약속하는 지적 즐거움 중 하나이며, 또 하나의 자유를 위한 작은 시작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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