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빛 속으로
가을빛 속으로
  • 정정화
  • 2022.11.07 15:34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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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광장] 정정화 소설가
정정화 소설가
정정화 소설가

단풍이 들고 한 잎 두 잎 낙엽이 지는 계절에 오래 몸담은 독서회에서 야외 토론이 있었다. 회원들은 도서관 나무 아래서 만나 차량 두 대에 나눠서 타고 출발했다. 차가 속력을 내자 어릴 때 소풍 갈 때처럼 설레기 시작했다. 때 이른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어 가을 분위기를 한층 고취시켰다.

 목적지인 통일전 주차장에 도착했다. 통일전은 삼국통일의 정신을 계승하고 다가올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국민의 전당이다. 경내에는 태종무열왕, 문무대왕, 김유신 장군의 영정이 모셔져 있으며, 통일의 격전을 생생히 보여주는 기록화가 긴 회랑을 따라 전시되고 있다. 통일전은 호국영령의 뜻을 기리자는 뜻으로 건립됐다.

 통일전 입구를 들어서니 은행나무는 황금빛으로, 벚나무는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고, 느티나무를 비롯한 여러 나무들도 저마다의 색깔을 자랑했다. 계절을 가리지 않는 소나무는 구부러진 가지 끝에 짙푸른 솔잎을 매달고 있어 기품이 느껴졌다. 연못에는 찬바람에도 간간이 수련이 꽃을 피우고 있었고, 연잎들은 붉은색을 띠며 단풍이 들어갔다. 오랜만에 자연에서 자유로운 영혼이 된 회원들은 장소를 바꿔가며 익살스러운 포즈를 취하면서 사진을 찍었다. 산간오지에 눈이 내렸다는 보도를 무색게 할 만큼 가을 햇살이 유난히 따듯했다. 어린이집에서 견학을 나왔는지 네다섯 살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빨간 티셔츠를 입고 삼삼오오 손을 잡은 모습이 흡사 꽃송이가 움직이는 듯했다.

 연못을 한 바퀴 돌고 휴게 공간으로 가는 중에 화들짝 바람이 불었다. 낙엽비가 사르락 내리기 시작했다. 빨간 나비가 바람을 타고 눈앞에 아른거렸다. 나는 빨간 나비를 잡으려고 두 손을 내밀고 뛰었다. 떨어지는 낙엽을 손으로 잡으면 행운이 온다고 했던가. 한참을 달린 끝에 자그마한 느티나무 이파리를 한 잎 잡았다. 인증샷을 찍은 후 우리는 토론을 위해 휴게 공간으로 이동했다.

 휴게 공간에 매트를 깔고 앉았다. 도서관에서 준비해준 간식과 부지런한 총무가 내려온, 쌉싸래하고 고소한 커피를 마시면서 토론을 시작했다. 내가 추천한 책이라 추천 이유를 밝히고 회원들의 토론이 시작됐다. 야외 토론이라 그런지 실내에서 할 때보다 토론이 활발했다. 평소보다 30분 일찍 출발했지만 이동하는 시간을 빼고 나니 토론할 시간은 한 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토론을 마치고 일어서는데 근처의 감나무에 홍시는 단풍보다 더 붉은색을 띠고 있었다. 찰칵, 눈 밝은 회원의 카메라에 포착됐다.

 인근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간단하게 막걸리로 건배를 하고 먹으니 분위기가 한층 더 화기애애했다. 부른 배를 두드리며 우리는 서출지로 향했다. 서출지는 여름에 가족과 배롱나무꽃이 한창일 때 왔던 곳이라 더 반가웠다. 배롱나무는 꽃이 지고 잎만 남은 채로 붉게 물들어갔다. 이번에 독서회 책이 죽음의 문제를 다루고 있어선지 자연의 피고 짐이 더 절절하게 와 닿았다.

 삼국유사는 서출지(書出池)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신라 제21대 소지왕 즉위 10년(488년) 어느 날 천천정에 행차했을 때 까마귀와 쥐가 울었다. 쥐가 사람의 말로 이르기를 “이 까마귀가 가는 곳을 따라가 보시오"라고 했다. 왕이 기사를 시켜 까마귀가 날아가는 곳을 따라가게 했다. 남쪽 피촌에 이르러 멧돼지 두 마리가 싸우고 있었다. 기사는 돼지 싸움에 한눈을 팔다가 까마귀 간 곳을 잃었다. 근처를 배회하고 있는데 노인이 못 속에서 나타나 편지 한 통을 바쳤다. 편지의 겉봉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이 편지를 열어보면 두 사람이 죽을 것이요, 열어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을 것이다.' 왕이 말했다. “두 사람이 죽느니 한 사람이 죽는 편이 낫겠다. 편지를 열지 않겠다." 그러자 일광이 말하기를 “두 사람은 보통 사람을 가리키고 한 사람은 왕을 말하는 겁니다." 왕이 편지를 열었다. 편지는 '거문고 집을 쏘시오.(射琴匣)' 딱 한마디를 적었다. 왕이 궁에 들어가 활로 거문고갑을 쏘았다. 그 안에는 대전에서 분수하는 중이 궁주와 몰래 간통을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을 처형했다. 그 뒤로 연못에서 글이 나왔다 해 '서출지'라 했다고 한다. 연못가 한 귀퉁이에는 소박하고 아름다운 정자인, 이요당이 자리해 운치를 더했다.

 누군가의 선창으로 회원들의 노래와 시 낭송이 이어졌다.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비롯한 가을에 어울리는 노래와, '놀고 있는 햇볕이 아깝다' 외 몇 편의 시를 들으며 가을 속으로 풍덩 빠져들었다. 연못 속의 물오리도 신이 났는지 꽥꽥거리며 박자 맞춰 물장구를 치고, 바람 따라 낙엽이 내려앉았다. 포구나무라고도 불리는 늙은 팽나무는 오랜 세월의 흔적인 둥근 혹을 매달고, 다정하게 의지하며 서로를 감쌌다.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돌며 노래하는 사람들. 물들어가는 단풍처럼 회원들도 가을빛으로 익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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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말O 2022-11-11 13:23:25
가을빛이 그대로 전해집니다
안방에서 듣는 가을 노래
창밖의 가을빛에 눈길을 멈추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