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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성숙

서태일

젊은초록이 하늘거리며 
비에 젖은 모습은 
한동안 볼 수 없으리

이끼 낀 화강암에 앉아
푸른 단풍과 나무와 
가을에 대해 나누던 이야기도
한동안 할 수 없으리

지금 비는 내리고
나무와 나 그 자리에 함께 있어도
우리의 그때 시간은 아니야

영원하지 못한 멈춤이 아쉬울 뿐
시간만 성숙해 진다

△서태일 시인: 월간문학공간 신인상 시 등단, 울산문인협회,울산남구문학회,처용수필동인회 회원. 전 울산대학교 공과대 교수.

 

서금자 시인
서금자 시인

시간의 성숙, 스무 살 그때를 생각하게 하는 말이다. 젊음을 풀어놓고 휘청거렸던 날들을 돌아보게 하는 언어다. 
 '젊은초록이 하늘거리며/비에 젖은 모습은/한동안 볼 수 없으리'
 '젊은초록', 새싹에 햇살 묻힌 상큼한 시어다. 물오르던 날들을 아련하게 살려내기도, 잎이 떨어지는 순간을 연상하며 아쉬움을 묻혀 내기도 한다. 서 시인은 이렇게 소년의 감성을 지녔다.
 
 이끼 낀 화강암에 앉아/푸른 단풍과 나무와/가을에 대해 나누던 이야기도/한동안 할 수 없으리/라고 한 가닥 아쉬움을 읽게 하지만 혹한의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다는 것, 세월은 그저 가는 게 아니고 새봄을 또 약속하는 걸 암시해 주고 있어 낙엽 한 장에도 자연귀소의 결단력이 담겨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어 '지금 비는 내리고/나무와 나 그 자리에 함께 있어도/우리의 그때 시간은 아니야' 로 읊으며 돌아올 수 없는 아쉬움 한 켠에 다시 봄을 기다리는 마음을 민망하게 숨겨두고도 있다
 
 영원하지 못한 멈춤이 아쉬울 뿐/시간만 성숙해 진다' 로 시를 마무리 하고 있다. '시간만 성숙해 진다' 이 시구가 이 시의 압권이다,  이 시구 속에 숨겨둔 이야기들이 말을 거는 듯하다. 
 울고 웃던 날들, 희로애락의 날들을 다시 초록으로 살려보고 싶다고
 우리 진정 늙어가는 게 아니고 익어가는 거라고
 '젊은초록', 새싹에 햇살 묻힌 상큼한 시어 쯤 아직은 품을 수 있다고. 서금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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