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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영 수필가·한국시니어브리지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강신영 수필가·한국시니어브리지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오랫동안 스마트 폰에서 만보기 기능을 하는 앱을 지워버렸다. 작년 한 해만 해도 매월 50만보~60만보를 걸으며 수시로 애용하던 앱이다. 100만 명 이상이 참여하는 경쟁 프로그램에서 상위 2%~3% 정도에 들었었다. 

스마트 폰 배터리가 거의 소진 될 것 같으면 부지런히 보조 배터리로 충전시켜 만보기 기능을 살려서 걸음수를 체크했다. 문자 메시지나 전화는 안 받아도 만보기 기능은 꺼지면 기록이 안 남기 때문이다.

이젠 만보기를 안 봐도 내가 얼마나 걸었는지 짐작이 된다. 같은 코스를 반복해서 걸어 봤고 느낌상으로도 어느 정도 감이 온다. 굳이 만보기를 보며 걸음 수를 체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 앱은 초대 기능이 있어 소수의 지인들끼리 경쟁도 할 수 있다.

혼자도 목표를 세워 걸음수를 채웠지만, 경쟁자들이 치고 올라오면 더 경쟁적으로 더 걸어 항상 수위에 있었다. 

디지털 숫자에 목숨 걸고 걸었던 것이다. 경쟁자가 아니더라도 내 스스로 목표를 정해 놓은 것을 달성하기 위해 무리도 했다. 

그렇게 살아 보니 기계에 내가 조종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기계 덕분에 나를 채찍질해서 걸음수를 올린 효과는 있지만, 그러자니 무리도 따랐다. 기계 덕분에 편리함은 있다. 문명의 이기인 것이다. 그러나 이젠 기계에 더 이상 조종당하지 않고 내가 판단해서 걸음수를 조정하며 살기로 했다. 더 이상 기계에 놀아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지인 중에는 당뇨병이라며 수시로 혈당체크를 하는 사람이 있다. 디지털 수치로 나타난다. 뭘 먹었더니 혈당치가 얼마나 올라갔고 야채로 며칠 버텼더니 혈당치가 쑥 내려갔다는 식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혈당치도 좀 올라가는 것이 정상이고 그게 몸에 좋다고 한다. 그만큼 체크해 봤다면 굳이 바늘로 찔러 혈당치를 재지 않더라도 대충 수치를 알 것이다

내가 만보기 없이도 대충 몇 보를 걸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하철을 탈 때도 나는 느긋하게 승강장에 가서 기다린다. 어련히 알아서 열차가 올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열차 시간표를 사진 찍어 그 시간에 대려고 입구부터 뜀박질을 한다. 분 단위다.

그러다가 넘어지기라도 한다면 큰일이다. 간발의 차이로 앞차를 놓치더라도 다음 열차는 10분 정도면 또 온다. 약속 시간이 정해지면 조금 더 시간을 잡아서 서두르지 않아도 될 시간에 미리 움직이면 된다.

버스도 마찬가지다. 나는 굳이 시간표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정류장에 가서 그냥 기다리면 버스가 온다. 

시간표대로 움직이지 않더라도 정류장에 가면 버스가 오는 시간이 표시된다. 버스가 올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 초록불이 남은 시간을 숫자로 바뀌며 깜빡거리면 마음이 급해진다. 어지간하면 뛰지 않고 다음 신호를 기다리려고 한다.

요즘은 시간을 물어 보면 스마트 폰에 뜬 시간을 말하는 경향이 있다. 4시 47분이면 숫자로 말하지 않고 "다섯 시 다 되어 간다"로 말한다. 4시 20분부터 40분까지는 "4시 반 쯤"으로 말한다. 약속 시간에 너무 맞춰 가려다 보면 몇 분 안 남았을 때 마음이 다급해진다. 그래서 뛰게 되는 것이다. 30분 쯤 미리 도착한다고 생각하고 떠나면 시간을 볼 필요도 없다. 먼저 도착해서 느긋하게 주변을 돌아보는 여유도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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