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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미정 동화작가
최미정 동화작가

봄 햇볕이 따뜻하다. 

 매년 돌아오는 봄이지만 마음이 설레는 것은 나이를 먹은 탓이다. 나이가 드니 길가에 핀 꽃 한 송이, 풀 한 포기도 소중하다. 그래서 지금이 좋고 오늘의 삶에 욕심이 생긴다. 욕심이 생기는 만큼 만족스럽지 못한 일들도 많아서 어떻게 해야 불만족스러운 삶과 이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된다.

 한 해를 넘길수록 아픈 곳도 넘쳐나는데 그래서 시작한 것이 만 보 걷기다. 한 걸음씩 걷다 보면 내 몸에 엉킨 실타래가 가지런히 정리되는 느낌이 든다. 건강을 생각해서 조금 더 일찍 내 몸 돌보기를 시작하지 않았을까? 뒤늦은 후회를 한다. '그때 그 사람한테 조금만 더 다정할 걸, 그때 남겨 두고 오는 게 아닌데. 조금만 더 열심히 할 걸 시간만 축내고 말았어.' 같은 불만족스러운 후회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럼 지금이라도 불만족스러운 삶을 살지 말아야지 해도 그것도 쉽지 않다.

 오후 잠깐 짬을 내어 아이들 독서지도를 한다. 까만 눈동자의 아이들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미소 짓게 되는데 아이들의 순한 마음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쓰는 사람으로 아이들과의 교감은 특별하다. 처음 교실에 들어갔을 때 아이들은 뾰로통한 얼굴을 하고 나를 빤히 쳐다봤다. 불만족스러운 삶을 사는 건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5학년, 한창 사춘기에 접어든 남자아이였다. 내가 원하는 수업을 위해서는 그 아이와 친해져야겠다 싶었다. 분위기 전환을 위해 재미있는 소재로 짧은 글짓기를 시켰다. 마법사, 외계인 같은 내용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기발한 내용들이 쏟아졌다. 그런데 학교, 학원에서는 얼굴이 굳어지면서 쓸 내용을 찾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책을 읽으려고 독서 수업에 참여한 아이가 책을 통해 무엇을 얻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아이들 책을 쓰는 사람으로 아이의 생각이 궁금했다. 그런데 아이는 대뜸 책을 내려놓고 “수학은 배울 필요가 있지만 책 읽는 수업은 필요 없는 수업 같아요."라는 충격적인 대답을 들었다. 지금까지 아이는 선생님이 선택해 주는 책을 생각 없이 읽고 있었던 거다. 

 아이를 보면서 느꼈다. 불만족스러운 삶과 이별하려면 당당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이는 스스로 원하는 책을 찾지 못했고, 삶의 주체가 자기 자신임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원해서 하는 일이 아닌데 어떻게 만족스러울 수 있을까? 아이에게 말해 주었다. 어떤 문제를 만났을 때, 부모님과도 선생님과도 친구와도 그 문제에 대해 소통이 어려울 때 어떤 책에는 그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방향을 알려준다고 아직 좋은 책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조금만 더 노력해 보라고 말이다. 그리고 이제는 네가 원하는 책을 읽고 네가 원하는 공부를 하라고 일러 주었다. 아이의 굳었던 얼굴이 펴지면서 짧은 글짓기를 완성했다. 아이가 수줍은 얼굴로 노트를 내밀었는데 '이제는 학원이 싫지 않아요.'라고 짧게 쓰여 있었다. 아이가 마음의 문을 열었으니 그것으로 만족스럽다. 아이들이 시키는 공부가 아니라 찾아서 하는 공부를 한다면 세상이 좀 더 밝아지지 않을까.

 불만족스러운 삶과 이별하는 좋은 방법은 한 걸음씩 걷는 만보걷기에서 시작되는 것을 믿는다. 세상에 당당해지는 것, 내가 원하는 것을 알리는 것, 그래서 하나씩 나의 가치를 쌓아가는 것. 그러려면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할 것이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은 아침에 일어나 한 걸음 앞으로 내딛는 발걸음이다.  최미정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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