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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영 본보 독자권익위원·울산불교문인협회 회장
정은영 본보 독자권익위원·울산불교문인협회 회장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 제비 넘나드는 성황당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1954년 박시춘 작곡 백설희가 부른 '봄날은 간다' 노래 중 일부다. 이 노래는 조용필 등 숱한 인기가수들이 봄이 오면 부르는 봄날 애창곡이다. 지금 이 노래를 불렀던 그 시절을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 단지 추측하면 보릿고개를 넘나들던 초근목피의 시절이 아니었을까. 아마 한국전쟁이 끝나고 뒤숭숭한 시절 정치와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서 질서가 없는, 무질서였을 것 같다고 짐작할 뿐이다. 

 2023년 봄날도 이미 가고 있다. 이미 봄은 가버렸는지도 모른다. 지난해 선출직으로 임기를 시작한 정치인들도 벌써 하는 사이에 한해가 후딱 가버렸다. 선출직들은 선거 때 약속한 공약들을 얼마나 지켰는지 이맘때쯤에는 한 번 돌아봐야 한다. 그리고 잘하고 있다는 생각에만 몰두할 게 아니라 어떤 부문에서 유권자들이 불편해하고 있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자칫 여느 날 가버린 봄날처럼 후딱 놀란 상태에서 차기 선거를 맞이할 수가 있다. 지방선거를 사계절로 나누면 이미 봄은 가버렸다. 여름과 가을, 그리고 겨울이 남아있다. 그러나 겨울은 선거를 치러야 하는 계절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여름과 가을, 두 계절이 남아있을 뿐이다. 

 각설하고, 얼마전에 이미 초여름 날씨를 맛봤다. 한낮 기온이 섭씨 27도에 달했다. 대구는 30도라고 하니 세월 가는 줄도 모르는 사이에 초여름이 먼저 와버린 것이다. 시내 거리를 활보하는 여성들의 옷차림은 벌써 한여름을 방불케 하고 있다. 세월은 이렇게 빨리 간다. 겨울 외투를 세탁소에 맡기려고 하는데 벌써 여름이라니, 정치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촌음을 아껴 써야 하는데 정작 그럴까 걱정이다. 세력싸움만 하다 임기가 끝나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크다. 

 시간은 잠시도 멈춤이 없다. 세상이 쑥대밭처럼 시끄러워도, 즐거워도 시간은 멈추지 않는 것이다. 모든 분야에서 과거를 뛰어넘어 첨단으로 나아가면서 우리는 원하지 않는데도 알아야 하는 것들이 무수히 많다. 그 덕분에 국민은 엄청나게 똑똑해졌다. 몰라도 살아가는 데 큰 불편이 없는 정치판 이야기를 비롯해 시시각각 뉴스가 휴대전화로도 볼 수 있다. 며칠 전에는 어느 코미디언이 외국에서 사망했다는 기사가 속보로 떴다. 

 각 매체는 경쟁하듯 시시각각 지구촌 곳곳의 뉴스를 이웃 동네 이야기처럼 알려주고 있다. 그래서 과거에는 모르고 지나갔을 이야기들도 알게 되고 그것으로 괜히 불안해지기도 한다. 한마디로 알아서 병이 되는 세상이다. 

 모 방송 인기프로그램 중에 자연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50대 이후 중년층의 미래 꿈이라고 한다. 전기도 없고 도로도 없는 곳에서 움막 같은 집을 지어놓고 사는데도 평안하기 짝이 없다는 이야기가 던져주는 메시지는 제법 무게감이 있다. 더우면 에어컨이 있고 추우면 히터를 켜는 도회지의 삶이 더 좋다고 해야 하는데 이런 문화적 충족을 모두 포기하고 산속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렇게 살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것은 현대를 사는 우리가 깊이 고민해야 할 부문이다.

 근래 들어 국내정세뿐만 아니라 세상은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디로든 달아나고 싶다. 정치인들은 이런 국민의 마음을 헤아렸으면 하는데 현실은 도리어 불을 지피는 것 같다. 사는 것이 이래도 걱정 저래도 걱정이다. 국민을 편안히 살게 하는 방법은 분명 있을 것이다. 진정으로 국민을 위해 지도자들은 권위의식부터 스스로 내려놓아야 한다. 방하착(放下著)이다. 

 방하착, 부처님 경전을 공부하다 보면 이 말에 방점이 찍힌다. 우리는 모두 지금 내려놓지 못해 불안한 삶을 산다. 손에 쥐고 서서 안절부절못하는 모습들이다. 강을 건넜으면 나룻배는 버려야 하는데 말이다. 정치권은 정치권대로, 경제인들은 경제인들대로, 그리고 노동자들은 노동자들대로 그들만의 이익을 손에 쥐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는 봄날 세상이 시끄럽다. 

 요즘 정치인들은 국민이 무당층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애써 무시하는 것 같다. 국민이 뉴스 보기를 무서워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을 것이다. 하루 이틀 뉴스에서 멀어지다 보니 자연스레 정치에 대한 관심도도 떨어져 버린 것이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무당층이 30%나 된다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현실이 이런데도 정치권에서는 잊을만하면 국민 생각과 거꾸로 가는 소리만 해대고 있다. 이들은 내년 4월 10일 총선을 기억해야 한다. 어느 후보든 지난 4년의 결과에 따라 유권자들의 표심을 받을 수 있다. 

 날이 점점 더워지고 있다. 올해 봄날은 이미 지나갔다. 눈 속에 복수초 필 때가 봄날인 줄 알았는데 어느새 꽃은 지고 말았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다. 이제 곧 여름이다. 여름이 지나면 가을이다. 4년 전처럼 슬그머니 나타나는 정치꾼들을 봐야 하는데 그들이 반갑지가 않다. 정은영 본보 독자권익위원·울산불교문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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