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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수향 시인
심수향 시인

이 땅에서 노인으로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지 요즘 들어 더욱 생각해보게 된다. 조금은 서럽고 조금은 서운한 마음을 침묵하는 다수의 노인을 대신해서 드러내 보고자 한다. 

 하루는 친구들과 멀리 있는 공원에 소풍을 나갔다. 여기저기 구경하고 그늘을 찾아 앉으니 옆 자리에 앉은 아기가 가까이 와서 빤히 쳐다보기에 '오, 예쁘구나, 아가야 이리 온' 하고 한 번 안아주려 했더니 친구가 무슨 짓이냐고 요즘은 그러다 큰 봉변당할 수 있다고 기겁을 한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무안하기도 하여 먹던 과자를 몇 개 주려니 옆구리를 쿡 찌르며 그것도 안 된다고 한다. 나는 어리둥절해서 왜? 하고 물었더니 요즘 문화가 그렇단다. 특히 노인은 아기에게도 그 보호자에게도 기피대상 1호란다. 잘 잘못이 문제가 아니라 노인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그렇다는 것이다. 심지어 시부모조차도 손자를 쉬 만나게 하는 분위기가 아니니 알아두라는 일침을 받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요즘 치료 받는 곳에서 익힌 얼굴이 몇 있다. 대부분 가볍게 인사를 하고 교대를 하지만, 유독 한 아가씨에게만은 어색하게 외면을 한다. 두어 번 인사를 건넸으나 반응이 없어 그림자처럼 앉아 아가씨가 나갈 때까지 기다린다. 하루는 그걸 본 선생님이 의아해했다. 나는 답 대신 노인들이 지켜야 할 수칙이라며 SNS에 떠도는 것 중 몇 가지를 읊어주었다. '노인이 되면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라. 장성한 자식이나 젊은 사람에게 함부로 전화하지 말라. 젊은이를 빤히 쳐다보지 말라 등등'..이런 수칙이 있다 했더니 깜짝 놀란다. 

 '노인을 좋아하는 나라는 없다' 책이 나올 정도로 노인은 세상에서 쓸모없는 존재가 되었다. 그 정도가 아니고 고령사회로 접어드는 나라는 금방 무너질 듯이 보도 하는 뉴스를 접할 때는 보고 있기가 민망하다. 이 세상에서 생로병사, 생주이멸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데, 늙는 것이 죄악시 되는 이 시대를 늙은이는 젊은이 눈치를 보며 산다.

 노인이란 말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안타까운 면면이 보인다. 이 말 속에는 사용하는 사람들의 끊임없는 갈등과 고뇌가 엿보인다.

 어린이, 젊은이, 늙은이 이 세 단어가 조어된 경위나 시기는 비슷해 보이는데 그 사용에 있어서는 차이를 보인다. 어린이 젊은이는 지금도 활발하게 무리 없이 사용된다. 그런데 늙은이는 낮춤말처럼 인식되어 편하게 사용하기에 무리가 있어 보인다. 어린 사람을 어린이, 젊은 사람을 젊은이, 늙은 사람을 늙은이라 부르는데 어떤 어려움이 있어서 유독 늙은이만은 한자말 노인을 가져다 쓰는 걸까? 쉬 단정하기는 쉽지 않겠으나 뭔가 석연찮은 갈등이 있음직해 보여 씁쓸하다. 그리고 난데없이 어느 날부터 어르신이란 낱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불과 20여 년 전이다. 공경의 의미로만 받아들이고 싶다.

 노인이 되면 나쁜 것만 있는 건 아니다. 물론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다. 우선 단점은 오래 사용한 몸이 탈이 나 끊임없이 병으로 시달린다는 점. 장점이라면 젊을 때는 이해되지 않고 용서되지 않던 부분이 받아들여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노인은 지식은 줄어들지만 지혜는 늘어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것은 이론이고 사실은 노인으로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거울을 외면할 정도로 늙고 볼품없는 몸과 나날이 늘어가는 고통을 견디는 것도 예사는 아니다. 병원을 찾으면 의사선생님들은 노환으로 오는 병을 어쩌겠느냐 한다. 당연한 병이라니 최소한의 약으로 통증을 견딜 수밖에 도리가 없다. 믿을 데라곤 자식밖에 없어 하소연하면 병원가보라는 말이 전부라는 것이다. 바쁘고 힘든 자식들이 부모가 미워 그럴까만 부모는 상처를 많이 받게 마련이다. 하지만 돌아보면 다 내가 내 부모에게 하던 모습을 자식들이 배워서 하는 걸 누구를 탓하랴 한다.

 젊은이도 노인을 짊어져야 할 숙제로만 생각하지 말고, 노인도 쓸모없는 존재로 전락한 시대임을 인지하고 현 상황을 받아들여야 한다. 예전에야 아쉽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경험 많은 어른들에게 배울 수 있었으니 존경 받았겠지만, 지금은 그야말로 컴퓨터가 모든 것을 가르치는 AI 시대 아닌가. 세대 간의 갈등이 서로의 입장만 따지는데서 오는 것이니 더 양보하고 더 이해하고 화합하려 노력한다면 조금 더 조화로운 사회가 되지 않을까. 노인들의 바람이다.  심수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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