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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 수필가·요양보호사
김현주 수필가·요양보호사

"너와 함께한 시간 모두 눈부셨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

 나에게도 모든 시간이 좋은 날들이다

 지난 6월 중순, 경주에 다녀왔다. 유월에 햇살은 눈부시고, 싱그러운 연초록은 더욱 빛났다. 연인을 만나러 가는 길처럼 마음이 두근거렸다. 

 경주에 대한 기억은 언제나 좋다. 어느 해 겨울, 박목월 시인의 생가가 있는 건천읍 모량리에 갔다. KBS 포항 방송국에서 생가 복원을 앞두고 취재를 나왔다가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박목월 시인의 '나그네' 시를 낭송하기도 하고, 복원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도 답하기도 했다. 2018년은 조동화 시인의 '나 하나 꽃 피어' 시비 제막식 행사에도 다녀오고, 비 내리는 그날 보문호수 둘레길을 걸었던 기억도 새롭다.

 자주 가는 경주이지만, 동리목월문학관에서 열린 전국 백일장 심사위원으로 참석하는 기분은 남달랐다.

 학부모의 손을 잡고 온 초등학생들의 모습도 즐거워 보이고, 그늘에 앉아 글감을 생각하며 시 창작 삼매경에 빠진 참가자들의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였다.

 심사위원장으로 오신 허영자 시인과 함께 한 시간은 참으로 행복했다.

 86세라는 나이가 무색하리만치 곱고 단아하신 모습과 문학에 대한 열정에 감동했다. 문학관 주변을 거닐며 나무와 꽃을 보며 담소도 나누고, 점심시간 이후에는 찻집에 들러 시인으로서의 자세, 시에 대한 생각도 들을 수 있어 너무 소중한 시간이었다. 

 오후부터 심사가 시작되고, 중등부 심사를 맡은 나는 학생들의 창작 수준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책을 많이 읽고 문학에 관심을 둔 학생들이 백일장에 참여했다는 생각에 흐뭇해졌다.

 시상식에서는 상을 받지 못해 펑펑 우는 초등학생을 허영자 시인과 심사위원들이 위로와 격려를 해 주며 사진도 찍고, 모두 박수치며, 기분 좋은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행사를 마치고 주차장으로 향하는데, 상을 받은 초등학생이 친구와 장난을 치며 웃고 있어 "아까 상 받은 학생이네. 축하해요" 했더니 옆에 있던 친구가 한마디 한다. "저는 상 못 받았어요. 그래도 괜찮아요. 집에 가서 상 받으면 되요. 밥상!" 하하하 깔깔깔 웃음이 끊이지 않고, 두 학생은 초록이 무성한 길을 신나게 뛰어갔다.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친구라 너무 예쁘고 친구만 상 받은 것을 시샘하지 않고 다음에 또 온다고 말하니, 어른보다 낫다는 생각을 했다. 싱그러운 유월을 보내고 기분 좋은 마음으로 7월을 맞이했다.

 7월부터는 새로운 강의를 맡게 되었는데, 칠곡 할매 시인을 벤치마킹한 프로그램으로 북구 농소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홈골, 할매 할배 시인 만들기'  프로그램이다. 현재 노인복지센터에서 근무하며 어르신들과 함께 생활을 하고 있기에 어르신들과의 시간은 낯설지 않고, 오히려 편안한 마음이 들고 시에 대한 강의라 행복하고 열정이 넘쳤다.

 첫 수업으로는 시란 무엇인가? 라는 주제로 시작하였다.

 시에 대한 깊이 있는 문학적 접근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적으로 듣기도 하고 노래로 불리고 있는 짧은 시를 통해 친근하고 쉽게 접근 할수 있도록 구성했다.

 어느 시인은 어머니 말씀을 받아 적으니 시가 되었다고 했다. 어떤 시인은 어머니와 함께 시집을 내기도 했다.

 어머니가 일상에서 하시는 말들은 모두 시가 되는 것이다.

 밭일을 하시다가 들에 핀 꽃을 보고 예쁘다고 하는 말, 자식들에게 당부하는 말, 넋두리처럼 인생에 희노애락을 표현하는 말들이 시인들은 시가 된다고 하는 것이다.

 사물을 오래 보고, 깊이 보고, 오랜 시간 함께 하다 보면 사물이 말을 걸어오는 것처럼 느낄 때 그 감성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 시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르신들은 삶 자체가 시가 되는 것이고, 어르신들의 그 오랜 세월, 살아온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시인이 따로 없다는 말이 나온다.

 강의를 시작하려는데, 어르신이 한 분이 병원 다녀오는 길인데, 약을 먹어서 혹시 강의 도중에 나갈 수도 있으니 이해해 달라고 하셨다.

 강의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킨 어르신이 다음 강의 때도 오겠다고 하셨다.

 시와 현대시조를 함께 낭독하며 웃으며 한 수업이, 즐겁게 느껴진 듯하여 내심 행복한 첫 수업을 마쳤다.

 우리가 사는 일상이 시가 된다. 비 오는 날, 흐린 날, 맑은 날. 바람 부는 날도 글감이 되고, 특히 울산에는 풍경이 아름다운 곳이 많다. 

 푸른 동해바다, 영남 알프스라 불리는 산들이 있고 공업도시에서 문화 도시로 탈바꿈한 흔적들이 돋보이는 곳들이 많다. 모든 삶이 예술이 되기를 바라본다. 인생은 아름다운 한 편의 시다. 김현주 작가·울산요양보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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