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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양남 주상절리군의 압권인 부채꼴 주상절리는 오늘도 세찬 파도를 맞으며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상원
경주 양남 주상절리군의 압권인 부채꼴 주상절리는 오늘도 세찬 파도를 맞으며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상원

동해안엔 750km의 걷기 여행길, ‘해파랑길’이 있다.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강원도 고성군 통일전망대까지 총 52개 코스로 해변길, 숲길, 마을길 등을 연결하고 있다. 이 길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실시한 ‘2021년 걷기 여행 실태조사’ 결과 걷기 여행자가 선택한 걷기 여행길 중에서 ‘제주올레’에 이어 2위로 뽑혔다. 

‘주상절리 파도소리길’은 경주 양남면의 읍천항과 하서항 사이에 위치한 1.7km의 길로, 울산 북구 정자동과 경주 양남면을 잇는 14.1km의 해파랑길 10코스의 일부이다. 이 길은 주상절리의 다양한 모습을 감상할 수 있어서 주상절리의 야외 박물관이라고 불릴 만큼 특별하다.

경주 읍천항 등대 야경. ⓒ이상원
경주 읍천항 등대 야경. ⓒ이상원

경주 양남의 주상절리군은 2009년 해안선에 세워진 군 초소의 철조망이 철거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이전까지는 주민들은 물론 문화재 당국도 그 진가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읍천항과 하서항 사이에 형성된 주상절리군이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드문 희소성과 지질학적 가치가 확인되면서 2012년 9월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였다. 

군 초소가 철거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연하장으로 보낼 일출사진을 찍기 위해 이곳에 간 적이 있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길이 정비되지 않아 주상절리를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그 후로 이곳이 늘 궁금하던 차에 태풍 카눈이 지나간 다음 날 새벽, 이곳으로 달려갔다. 읍천항에서 출발해 주상절리 전망대 앞에 삼각대에 카메라를 장착하고 해가 떠오르기를 기다렸다. 바다는 태풍의 여파로 요동치고 있었고, 바람도 세게 불었다. 어둠을 헤치고 태양이 찬란하게 떠올랐다. 천천히 사진을 찍으며 하서항까지 걸어 갔다가 다시 되돌아 왔다. 카메라 배낭을 매고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걷는 게 조금 힘이 들었으나 같은 길이었지만 갈 때와 올 때의 느낌이 달랐고, 갈 때 보지 못했던 것이 올 때 보이기도 했다. 온갖 모양의 주상절리가 세찬 파도에 맞서 제 모습을 지키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것 같아서 고마운 마음이 들었고, 응원하고 싶어졌다. 

해안의 환경을 고려하여 조성된 산책길은 편안하게 걷기에 좋았다. 특이한 주상절리 앞에 안내표지판도 세워져 있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출렁다리와 읍천항 등대도 멋진 풍경의 하나였다. 곳곳에서 만나게 되는 야생화를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으면 무슨 꽃인지 알려주니 꽃 이름을 아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였다. 중간 중간 사진을 찍으며 추억 만들 수 있게 전망대와 쉼터도 있었다. 하트(♡) 모양의 해변, 올망졸망 예쁘게 다듬어진 몽돌도 인상적이었다. 일정한 곳에서 낚시도 즐길 수 있다. 바다가 보이는 곳에 음료와 빵을 파는 카페도 여러 개 있었다. 

경주 양남 주상절리와 동해의 일출. ⓒ이상원
경주 양남 주상절리와 동해의 일출. ⓒ이상원

경주 양남 주상절리군(柱狀節理群)은 경주와 울산 해안 지역의 활발했던 화산 활동에 의해 형성된 바위 기둥 모양의 틈이다. 주상절리는 땅속의 마그마에서 분출된 1,000도 이상의 뜨거운 용암이 차가운 지표면과 공기와 접촉해 빠르게 식으면서 수축하게 되어 오각형 혹은 육각형 모양의 틈(節理)이 생기게 되고, 그 틈이 길게 기둥 모양(柱狀)으로 발달한 것이다. 주상절리는 지표면에 수직으로 발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는 천연기념물인 제주도 중문 해변에 있는 주상절리와 광주 무등산의 병풍 같은 입석대와 서석대가 있다. 

경주 양남, 기울어진 주상절리 1. ⓒ이상원
경주 양남, 기울어진 주상절리 1. ⓒ이상원

그러나 경주 양남의 주상절리는 수평 모양의 절리가 흔하며 기둥의 형태도 다양하다. 땅속과 지표면, 물길의 형태에 따라 용암이 흘러 <누워 있는 주상절리>, <기울어진 주상절리>, <위로 솟은 주상절리> 등 다양하고 희귀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또 한 곳에서 세 방향의 절리가 발달하여 서로 만나는 것도 다른 곳에서는 보기 드문 경우이다. 

경주 양남, 누워있는 주상절리 2. ⓒ이상원
경주 양남, 누워있는 주상절리 2. ⓒ이상원

이곳의 주상절리 중에서 압권은 단연 부채꼴 주상절리이다. 이 주상절리는 주상절리 전망대 앞에 있는데, 바닥에 펴놓은 여인의 주름치마와도 같고, 바다에 떠 있는 한 송이 꽃과도 비유되어 ‘동해의 꽃’으로도 불린다. 전 세계적으로 부채꼴 주상절리는 영국과 호주에도 한 곳씩 있지만 그 크기는 이곳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다고 한다. 이것이 세계적인 보물임을 말해준다. 

경주 양남, 위로 솟은 주상절리. ⓒ이상원
경주 양남, 위로 솟은 주상절리. ⓒ이상원

여기의 주상절리가 형성된 것이 지질시대 신생대 제3기 마이오세 때인 약 2천만 년 전으로 추정된다니…! 이는 기껏 100년을 사는 사람의 삶과 견주어 보면 도무지 가늠이 되지 않는 까마득한 옛날이다. 이러한 지질시대의 연령은 방사성 원소의 붕괴를 이용한 절대 연령 측정이라는 기법을 통해 알아낸다고 하니 과학 기술의 발달이 정말 대단하다. 이 주상절리들은 이 땅에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이주해와서 정착하기 시작한 훨씬 이전에 만들어졌으니 장구한 세월 동안 이 땅에서 살아온 인간의 흥망성쇠를 지켜 보았을 것이다. 또한 현재 우리의 생을 넘어서 아득한 후대까지 존재할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생각하면 바다에 있는 단순한 돌더미가 아니라 길이 보존해야 할 자연이 만든 최고의 예술품이라 여겨져 새삼 애착이 간다. 

첨단 과학 기술의 힘을 빌리더라도 주상절리 같은 돌조각 걸작을 인간이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설령 만든다고 해도 어떤 인공 구조물이 억겁의 세월 동안 파도와 폭풍우를 견뎌낼 수 있겠는가. 이렇게 기묘하고 신비로운 조각품이 바다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펼쳐져 있는 게 그저 놀랍다. 보면 볼수록 대자연의 경이로움에 감탄하게 된다. 

경주 양남, 물빛사랑교 야경. ⓒ이상원
경주 양남, 물빛사랑교 야경. ⓒ이상원

다른 날에는 오후 늦은 시간에 이곳을 찾아갔다. 먼저 하서1리의 하서해안공원과 물빛사랑교 사이의 '물빛사랑길'을 걸었다. 이곳에는 몽돌해변과 200년 이상 된 해송숲이 있어 여름 휴가철에는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이다. 그리고 하서항에서 출발해 '주상절리 파도소리길'을 따라 읍천항까지 갔다가 다시 되돌아왔다. 어둑해질 때 산책길 곳곳에 켜진 조명등이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었다. 읍천항 세 등대의 불빛은 밤바다를 외롭지 않게 했다. 파도소리를 들으며 노래 흥얼거리며 조명등을 따라 해안의 밤길을 걷는 재미도 쏠쏠했다.

사랑海, 율포진리항(하서항)!

율표진리항(하서항)의 사랑의 열쇠. ⓒ이상원
율표진리항(하서항)의 사랑의 열쇠. ⓒ이상원

경주시 양남면의 하서항은 하서4리 진리마을에 위치해 있어 '진리항'이라고도 불리며, 옛 지명인 율포와 현재 지명을 함께 사용하여 '율포진리항'이라고도 불린다. 마을 앞 방파제 입구에는 '사랑이 이루어지는 곳 사랑海 [율포진리항]'이라는 안내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다. 방파제에는 'LOVE'라고 조각된 화강석 벤치와 하트 모양의 포토존이 있다. 또한, 방파제 끝에는 신라의 충신인 박제상 부부의 애절한 사랑을 모티브로 한 빨간색 '사랑의 자물쇠'가 세워져 있다. 그 안쪽에는 작은 자물쇠들이 걸려 있다. 이는 연인들이 서로의 사랑을 굳게 지키고자 하는 맹세의 상징물이다. 살면서 어려움이 닥쳤을 때 박제상 부부의 사연이 담긴 그곳에서 함께 다짐했던 그 간절했던 첫마음을 잊지 않고 노력한다면 예쁜 사랑이 꽃피리라. 부디 아름다운 사랑이 많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이 항구가 박제상이 왜국(일본)으로 떠난 곳이니 그 이야기를 되짚어 본다. 신라 17대 내물왕은 세 아들인 눌지, 복호, 미사흔이 있었다. 402년 내물왕이 죽자 내물왕의 동생인 실성이 왕위에 올랐다. 실성왕은 왕이 된 직후 자신의 조카인 미사흔을 왜국(일본)에, 412년에는 또 다른 조카인 복호를 고구려에 볼모로 보냈다. 눌지는 자신의 삼촌인 실성왕이 죽자 왕위에 오르고, 동생인 복호와 미사흔을 구출하기로 하였다. 그 역할을 맡은 사람이 박제상이었다. 그는 고구려 장수왕을 설득해 눌지의 아우 복호를 데려왔다. 박제상은 복호 구출 후 집에도 들르지 않고 미사흔 구출을 위해 왜국으로 향했다. 왜국에 도착한 박제상은 신라를 배신하고 도망쳐 온 것이라고 거짓말을 했고,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서 마사흔을 먼저 탈출시켰다. 왜왕은 박제상의 기개를 높이 사서 왜국의 신하가 될 것을 회유했으나, 박제상은 “계림(신라)의 개 돼지가 될지언정 왜국의 신하는 될 수 없다.”고 하며 거부했다. 결국 목도로 유배되어 화형에 처해졌다고 전해진다. 

치술령 망부석에서 바라본 박제상이 떠난 바다. ⓒ이상원
치술령 망부석에서 바라본 박제상이 떠난 바다. ⓒ이상원

박제상의 아내는 남편의 죽음을 알게 되자, 남편이 떠난 바다가 보이는 치술령 근처에서 통곡하다가 망부석(望夫石)이 되었다고 한다. 이는 남편을 기다리던 아내의 슬픈 이야기를 상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8월 어느 날 오후, 망부석이 궁금해 땀을 흠뻑 흘리며 치술령(해발 766m)에 올랐다. 정상 바로 아래에 <치술령 망부석>이라 안내판이 세워진 큰 바위가 있었다. 그 바위에 서서 박제상이 떠난 동해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곳은 맑은 날엔 일본의 쓰시마까지 보이는 전망이 좋은 곳이었다. 그곳에서 남편이 떠난 바다를 바라보며 사무치는 그리움과 주체할 수 없는 슬픔으로 울부짖는 여인의 모습이 눈 앞에 그려졌다. 

나의 가족사 한 조각을 소환한다. 우리 아버지는 일제 강점기, 세계2차대전이 막바지일 때 20세의나이로 군인으로 강제동원 되어 전쟁터로 나갔다. 그날 이후 할머니는 아들이 살아서 돌아 오기를 기도하며 하루도 빠지지 않고 우물가에서 찬물에 머리 감고 목욕을 했다. 그 의식은 겨울에 얼음이 끙끙 언 날에도 변함없이 이어졌다. 일본의 패망으로 해방(1945.8.15)이 되어도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고, 온 가족은 반드시 살아 돌아올 거라고 믿으면서도 불안과 초조로 가슴은 타 들어가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흔들리는 남은 가족을 엄하게 다독였다. 해방이 된 다음 해 5월경 봄 누에를 키울 즈음, 어느 날 어둑해질 때 마루에 무거운 배낭을 내리는 소리와 함께 깊게 내쉬는 숨소리가 들렸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헤어졌지만 방안에 있던 어머니는 그 숨소리가 남편의 것임을 직감으로 알았다. 망부석이 되어 가고 있던 어머니의 애끓는 마음은 그 숨소리로 순식간에 녹아 내렸다. 아버지는 중국 상하이의 전쟁터에 가서 죽을 고비를 무수히 넘겼고, 해방이 되고도 온갖 난관과 부딪히며 가족이 기다리던 집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이상원 사진가 swl5836@naver.com
이상원 사진가 swl5836@naver.com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지금 모두 이 세상에 없지만 새삼 가족의 의미와 사랑을 되새기게 된다. 

가을이 다가오고 있다. 가을에도 경주는 여행하기 좋은 곳이다. 신라 관광지 외에 경주 시내를 벗어나 국도를 따라 가다 보면 아름다운 바닷가 풍경을 만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길고 다양한 코스의 해파랑길 중 1.7km의 ‘주상절리 파도소리길’은 오래도록 특별한 추억으로 남을만한 곳이다.  또한 그곳의 전망 좋은 카페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차 한잔을 마시면서 잠시 쉬면 힐링의 시간이 될 것이다. 그리고 바닷가에서 신선한 해산물을 맛보는 것은 경주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 아닐까 싶다..

때를 기다린다고 여행하기 좋은 시간은 오지 않는다. 여행은 가고 싶을 때 훌쩍 떠나야 한다.

용기를 내어 길을 나서는 순간 자유인이 된다. 이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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