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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 수필가·요양보호사
김현주 수필가·요양보호사

늦더위가 지루하다가도, 시원한 빗줄기가 퍼붓는 날에 맞물려 농부가 꼬는 새끼줄처럼 조금씩 길어지는 밤, 낮이 확연히 다른 기온 차가 느껴진다. 이미 가을이 스며든 지 오래고, 추석 명절도 보냈다.

 성묘를 한 날에 모인 친척들은 지금의 50~60대가 마지막 성묘 세대라 말하며 정성을 다해 조상 묘를 다듬었다. 깨끗하게 단장한 묘 앞에 앉아서 구슬땀을 식히며 형제들은 부모와의 지난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금의 젊은 세대와 현시대 상황에는 대부분 납골당에 모시기 때문에, 성묘하는 풍경은 사라질 것이다.

 조상에 대한 예를 갖추는 모든, 의식들이 변화가 따르기 마련이다.

 이 모든 것은 부모가 자녀들의 곁을 떠나고 난 후에 일어나는 일들이다. 있을 때 잘해라, 살아생전 효를 다해라 부모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 자녀들이 자기 길을 찾아 타지에서 삶을 이어가는 동안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가 버리는 것이다.

 부모는 소홀해진 자녀들의 관심 밖에서 우울감과 고독과 더불어 육체는 점점 쇠퇴해지고, 바다에 낀 아주 짙은 안개처럼 머릿속에 짙은 안개가 끼는 치매가 찾아오는 것이다. 자신을 잃어가는 것을 생각하면 어쩌면 암보다도 더 무서운 것인지도 모른다. 집을 무작정 나와 배회하다가 길을 잃어버린다. 목적지 없이 특별한 이유도 없이 떠도는 시간이 길어지는 심각한 상황이 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긴급 문자에는 어르신들의 실종을 알려는 문자가 도착한다.

 치매를 앓는 어르신을 가족이 돌봄을 할 수 있는 경우라도 치매 환자의 특성을 잘 알고 대처하는 방법을 공부해야 한다. 또한 내 부모라 할지라도 치매 환자를 돌봄 하려면 무한의 인내심과 평정심을 요구한다. 배회가 시작된다면 산책을 통해 배회 증상을 완화하는 등 현실적이고 규칙적인 습관을 들이는 정성이 필요하다. 산책을 통한 외부 활동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이다. 하지만 매일 반복적이고 규칙적인 시간을 분배해야 하는 것은, 바쁘고 복잡한 일상을 살아가는 현실에서는 불가능하기에, 몇 년을 몇 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치매 등급을 받아 요양시설로 입소를 결정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장기요양 서비스 수급자의 복지를 책임지고 있는 요양보호사들이 치매 어르신 돌봄을 전담하고 있다.

 치매의 여러 형태 중에서 계속 말을 반복하는 증상도 있다. 본인이 했던 말을 기억하지 못하고 하루에도 수도 없이 무한 반복하는 것이다.

 홍 어르신은 "선생님 요 어디요? 뭐 하는 곳이요? 나는 아무것도 모리요. 집 놔 놓고 와 요 와 있을꼬? 밥도 주요? 잠도 재워줘요?"

 "어르신, 여기는 어르신들이 모여서 재미나게 사는 곳이고, 밥도 드리고, 잠도 주무시는 방이 있어요" 대답하면 "나라에서 해 주는 거요? 아이고 좋아라 참 좋네. 밥도 주고 잠도 재워주고 공짜로 다 해 주네. 이래 좋은데가 어디있노" 하신다. 그러다가 밤이 되면 집에 가야 한다며 배회하신다.

 수시로 요양원에서는 어르신들께 콩 고르기를 함께 한다. 모여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쥐눈이콩, 노란 콩, 하얀 콩, 팥 등을 섞어 놓고 색깔별로 골라내는 작업을 하다 보면 옛날 농사짓던 생각도 나고, 인지도 좋아지고 배회도 줄어들고 집중하는 시간이 되는 것이다.

 10월이 되니 풀벌레 소리가 다정하게 들린다. 가을이 되면 고향 생각이 나는 것은 어쩌면 각박한 도시 생활을 잠시 잊게 하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추석 때 고향을 다녀온 여운이랄까? 부모님 다 먼 길 떠나시고 안 계신 가족들은 계절이 주는 감성 따라 부모님 생각이 더 간절한 시간인지도 모른다.

 학창 시절은 시골이 싫어 빨리 도시로 나가고 싶어 타지로 학교를 다니기도 하고 자취 생활을 하기도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점점 잊고 지낸 고향 시골길 그 풍경이 떠오는 것이다. 부드러운 풀벌레 소리, 저 멀리 개 짖는 소리, 둥근 달이 마당을 휜 하게 비추는 밤이면 그 고요하고 정겨운 순간들이 마음 저 깊은 곳에서 뭉클한 감성을 끌어 올린다.

 요양원에서도 계절이 바뀌면 면회 오는 발길이 바빠진다. 하지만 오랜 시간 자녀들이 찾아오지 않는 어르신들이 계신다. 점점 연로해 가는 모습의 부모를 보는 것이 불편한 마음일 것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하는 부모의 모습을 지켜봐 주고 마음을 다해 기도하는 것도 자식의 가장 기본적인 도리일 것이다. 물론 바쁜 일상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것마저도 핑계일지도 모른다. 부모님이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 집에서 돌봄을 할 수 없다면 면회만큼은 정기적으로 잊지 않고 하는 것이, 마지막 자식의 도리일 것이다. 

 잊혀지고 있는 모든 기억의 회로 속에 부모와 자식의 모습을 서로 각인시키는 것이, 행복일 것이다. 살아온 날 보다 떠나는 날이 가까이, 아주 가까이 남은 것을 인지하고 부모님 면회를 절대 소홀히 하지 않기를 현장에서 직접 어르신 돌봄을 하는 요양보호사로서 당부드리고 싶은 말이다.

 알아보지 못하더라도 따뜻한 체온과 눈빛으로 전하는 마음이 있을 것이고, 지난 시간 행복했던 순간들을 이야기해 드리고 고마웠다고,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는 것이 옳다. 아픈 감정이 남아 있는 시간마저도 훌훌 떨어 버리는 시간이 바로 이승에서 남아 있는 시간이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 마음속 피어나는 애틋한 마음을 마지막까지 고이 접어 기억의 서랍 속에 차곡차곡 넣으시기를 바란다. 먼 훗날 부모님이 먼 길을 떠나시고 나면 한 장씩 꺼내 볼 그날을 위해 부모님과의 시간을 한땀 한땀 정성을 다해 만들어 나가기를 스며드는 가을, 청명한 하늘 보며 바래본다. 김현주 울산문인·요양보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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