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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장세련
삽화 장세련

"싱거운 녀석하고는. 여봐라. 새 손님들이 오셨는데 짐들을 풀어놓도록 해라."

 새 두목은 부하들에게 장꾼들의 짐을 강제로 풀게 했다. 장꾼들은 이선달이 바닥에 맥없이 쓰러진 상황이라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곡물장수 김 씨와 옹기장수 노 씨를 빼고는 모두 보따리를 풀어 바닥에 늘어놓았다. 그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것은 비단 장수의 짐이었다. 다른 물건들은 값으로 치면 비단과 견줄 수 없었다. 비단 장수는 거의 울상이 되어 있었다. 털보가 실권을 잡고 있던 시절에는 비단 대신에 인삼 한 채 값에 맞먹는 엽전 몇 개 던져주는 걸로 산게 해결이 되었었다.

 "물건은 너희들이 알아서 바쳐라. 그 전에 저쪽에 가서 몹쓸 화상을 만나보고 와야 할 것이야. 욕심을 부리다 어떻게 되었는지 똑똑히 보고 오너라."

 새 두목이 가리키는 마당가에 거적으로 덮어 놓은 물건이 있었다. 산적 한 명이 다가가서 덮어 놓은 거적을 걷어 내었다. 거적을 걷어 낸 산적은 코를 틀어막고 그 자리에서 물러섰다.

 "뭣들 꾸물거리느냐. 어서 가서 구경하지 않고."

 장꾼들은 새 두목의 재촉에 한 사람씩 줄을 서서 거적 있는 곳으로 갔다. 그제야 쓰러졌던 이선달이 부스스 일어났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본새가 자신이 왜 쓰러졌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장꾼들은 거적 속에 들어 있는 것이 사람의 사체라는 사실을 알아채고 모두가 얼어붙었다. 장꾼들이 확인한 사체는 꼴이 말이 아니었다. 몸체만 사람이지 두개골이 함몰되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죽은 지 하루쯤 지나 보였는데 비린내가 진동했다. 사체를 확인한 장꾼들은 몸서리를 쳤다.

 뒤늦게 일어난 이선달은 사람들이 마당 한쪽 가로 몰려가자 자신도 엉덩이를 툭툭 털고 그리로 걸어갔다. 처참한 사체를 보자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지를 뻔했다.

 "다들 잘 보았겠지? 내 말을 함부로 무시하다가는 모두 저 꼴이 될 것이다. 알겠느냐?"

 "예에."

 장꾼들은 모두 기가 죽었다. 그때 장 노인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모두 의아한 눈길로 장 노인을 바라보았다."내가 한 말씀 드리겠소. 아직 이곳에서 사람을 죽인 일은 없었습니다. 이제 사람을 죽였으니 순흥부에서 가만 보고 있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이걸 예상이나 하셨는지요? 이날 이후로 장꾼들도 마구령을 넘어 다니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게 살자고 하는 일입니까? 모두 죽자고 하는 일입니까?"

 "오호라. 영감님이 나이는 그냥 공짜로 자신 게 아니구먼요. 그럴 것 같으면 오늘 가져온 물건은 모두 내려놓고 빈 몸으로 내려가도록 하시오. 내려가서 바로 순흥부를 찾아가시구려. 사람을 죽이는 도적이 나타났다고 고변을 하시구려."

 "마구령에 사람이 넘어 다니지 않으면 산 사람들은 뭘 먹고 사시게요? 이 물건으로 몇 달이나 버티실 것 같습니까? 지금까지 잘 지내왔는데 왜 갑자기 분위기를 흐리려 하십니까?"

 장 노인이 조목조목 따지고 들자 새 두목도 한참 생각에 잠기는 듯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장꾼들이 풀어 놓은 보따리를 뒤지기 시작했다. 켜켜이 묶은 건삼들도 일일이 하나하나 들어보고 확인을 했다. 비단 장수의 비단을 모두 펼치게 하더니 다시 접도록 했다. 마치 감춰놓은 특별한 물건이 있는가 조사하는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이선달의 보따리를 들춰보던 새 두목이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이 물건이 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흐흐."

 새 두목이 꺼낸 물건은 남자의 양물을 닮은 목각이었다. 청상과부들이 바늘로 허벅지를 찌르는 대신에 가지고 놀만 한 물건이었다. 박달나무로 깎은 물건인지 표면에 윤기가 자르르 흘렀다. 새 두목은 목각양물을 들어 자신의 사타구니에 대어보며 히히덕 거렸다.

 "어떠냐? 내 좆 맛을 좀 볼 테냐?"

 양물을 비단장수의 바지춤으로 들이밀었다. 비단 장수가 황급히 몸을 피했다. 다음에는 옆에 있던 옹기장수의 사타구니에 양물을 들이밀었다. 옹기장수도 황급히 자리를 피하려고 하는데 받쳐 놓은 옹기 지게가 기우뚱 했다. 새 두목이 얼른 넘어지는 옹기 지게를 잡았다. 대단히 빠른 동작이었다. 하마터면 옹기장수의 짐이 모두 박살이 날 뻔했다.  (월·수·금 게재됩니다) 김태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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