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삽화 장세련.
삽화 장세련.

 

그런데 다행인 것은 털보가 제 욕심만 채우는 막무가내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물건을 빼앗아도 절반 이상은 절대로 손대지 않았다. 그래도 장꾼들의 숫자가 늘어나니 먹고 살만했다. 장꾼들은 예전에 못된 산적을 만나 물건을 몽땅 뺏기고 매를 맞고 쫓겨 왔던 때를 생각하면 털보의 등장을 오히려 다행으로 여겼다. 그렇게 마구령의 산적들과 장꾼들의 관계는 무리 없이 이어오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이선달이 나타나고부터는 변화가 일어났다. 털보를 제압한 이선달은 전보다 바치는 물건을 절반으로 확 줄였다. 털보는 하는 수 없이 산꾼들의 일부는 깊은 산으로 들어가 약초를 캐오게 했다. 산꾼들이 캐온 약초는 장꾼들이 금을 쳐주고 가져갔다. 한 번은 산꾼 한 명이 수십 년 묵은 육구만달 천종산삼을 캐왔다. 이선달이 순흥부의 권대감집에 팔았다. 자그마치 논 두 마지기 값에 해당하는 돈을 받아왔다. 이선달은 그 돈을 한 푼도 축내지 않고 고스란히 털보에게 건네주었다. 

 털보는 그 돈으로 면포를 사서 산사람들에게 새 옷을 한 벌씩 지어 입혔다. 산꾼들에게 골고루 혜택이 가도록 했는데 그것이 문제가 되었다. 산꾼들은 새 옷을 받아 입고 모두 좋아했다. 그런데 이상한 이야기가 돌았다. 논 두 마지기 값이면 산을 내려가 새살림을 차리지 왜 어리석은 짓을 했느냐는 것이었다.

 "나 같으면 산삼을 가지고 몰래 도망갔을 거야. 한양에 올라가 임자를 만나면 배는 더 받을 수도 있었을 걸."

 "그러게 말이야. 나 같으면 그 자리에서 혼자 먹어버리고 말거야."

 그런 이야기들이 털보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새 옷을 얻어 입고도 그런 이야기를 하는 자들이 얄미웠다. 그러나 못 들은 척 넘겼다. 오히려 바보 소리를 들은 산삼을 캐온 산꾼이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털보는 삼을 캐온 산꾼을 남대 주막거리로 내려보냈다. 거기서 열흘 동안 실컷 놀다 오라고 시켰다. 비용은 모두 산에서 대줄 터이니 걱정하지 말고 밤낮으로 즐기고 오라고 했다.

 마구령을 넘어 두 골짜기가 만나는 곳이 남대 주막거리였다. 개울을 좌우로 끼고 주막집이 대여섯 채가 있었다. 집집마다 불을 밝히고 밤늦게까지 장사를 했다. 주막집에서는 장꾼들에게 밥과 술 만 파는 것이 아니라 색시장사까지 했다. 그러다 보니 장꾼들뿐만 아니라 근동에서 논다는 한량들도 주막거리를 찾아와 흥청망청 돈을 뿌리고 갔다. 털보의 지시에 삼을 캔 산꾼은 발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주막거리로 내달았다. 

 산채에서는 먹고 자고 입는 일 외에도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하나 있었다. 모두가 사내들이다 보니 끓어오르는 성욕을 주체하지 못했다. 대부분 용두질로 욕구를 달래는 수밖에 없었다. 털보 자신도 여인네를 한 명 보쌈하다가 살림을 시킬까도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그게 산꾼들의 성욕을 자극할까 망설여졌다. 사내들만 있는 산채에 여자 하나가 분 냄새를 풍기고 다니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장담할 수 없었다.

 간혹 여염집 여인네가 산을 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면 산꾼들은 돈 많은 부자를 터는 것보다 더 즐거워했다. 그 일에도 산채의 규칙이 있었다. 제일 기본적인 것이 여인의 몸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다음이 귀한 물건을 빼앗지 않는 것이었다.

 "생각들을 해봐. 우리 집 여편네가 산을 넘다 몸을 다쳐왔는데 나서지 않을 사내놈이 어디에 있겠어. 귀한 패물도 마찬가지지."

 털보는 누누이 규칙을 강조했다. 그러다 보니 산꾼들도 털보의 지시를 따랐다. 많은 여인이 마구령을 넘다 능욕을 당했는데 전혀 소문이 나지 않았다. 여인들이 스스로 무덤을 파는 짓을 하지 않을 거라는 뻔한 계산속을 잘 이용한 것이다.

 여인 혼자서 마구령을 넘는 일은 좀처럼 없었다. 가족이 함께 넘거나 부부간에 같이 고개를 넘는 일이 많았다. 부부간에 같이 넘어갈 때에는 사내를 먼저 내려보낸 다음 여인을 욕보였다. 처음에는 겁에 질려 부들부들 떨고 있는 여인을 잘 달랜 뒤에 스스로 옷을 벗게 했다. 절대로 몸을 상하게 하지 않을 것이며 당신의 서방도 눈치채지 못하게 할 테니 적선하는 셈 치고 도와달라고 달래면 대부분의 여인은 스스로 옷을 벗었다.  (월·수·금 게재됩니다) 김태환 작가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