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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장세련
삽화 장세련

"아이구 아퍼. 좀 천천히 해. 몇 달 굶은 사람 같아."

 색시가 뭐라고 하거나 말거나 산꾼은 부지런히 방아질을 해대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파정을 하자 너무 허무한 생각이 들어 양물을 빼낼 생각도 하지 않고 그대로 엎드려 있었다.

 "아니 뭐해? 벌써 끝났어? 끝났으면 내려와."

 색시는 숫제 반말이었다. 산꾼은 개의치 않고 바지를 추스른 뒤 밥과 술을 시켰다. 밥상이 들어오자 색시는 자리를 뜨려 했다. 산꾼은 일어나는 색시의 손목을 잡아 앉혔다.

 "가긴 어딜 가? 넌 나하고만 놀아야 해."

 "뒷물은 하고 와야 할 거 아냐."

 산꾼은 하는 수 없이 색시의 손목을 놓아주었다. 밥상에는 별다른 반찬은 없었지만, 고개를 넘어온 간고등어 한 마리가 올라와 있었다. 산에서는 좀처럼 맛보지 못했던 귀한 음식이라 다른 건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살을 다 발라 먹은 다음 뼈까지 아작아작 씹었다. 밥그릇을 다 비우고 술까지 한잔 걸치자 정신이 좀 돌아오는 것 같았다.

 그렇게 산꾼은 골방에 처박혀 열흘을 보냈다. 방에서 나오는 것은 아침에 볼일을 볼 때와 세수하러 나올 때뿐이었다. 혼자 생각에 열흘이면 주막거리의 여인들을 모두 한 번씩 안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처음 상대하던 늙고 제일 못생긴 색시가 매번 곁에 짝 달라붙어 있었다. 주모에게 색시를 바꿔 달라고 했는데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색시들은 자존심이 없나. 다음에 다시 오면 모를까 누가 방망이 동서를 하겠다고 들어온대."

 약속한 열흘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산꾼은 코에 냄새가 날 지경으로 여인의 품에 푹 빠졌다 나왔다. 열흘째 되는 날에 털보가 부하 대여섯 명을 데리고 주막에 나타났다. 산꾼은 털보를 보자 이마가 땅에 닿도록 큰절을 올렸다. 털보는 흐뭇한 시선으로 산꾼을 내려다보았다. 천종산삼을 캐다가 산꾼들에게 새 옷을 한 벌씩 지어 입게 했으면 대단히 큰일을 한 것이었다.

 "어때? 재미는 좀 보았나?"

 "네. 그게…."

 산꾼은 멋쩍게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주모, 계산은 해야지."

 주모가 쪼르르 달려와 털보 앞에 두 손을 모으고 섰다.

 "여기 있네."

 털보가 주모에게 내민 것은 너구리 가죽 한 장이었다. 값으로 치면 쌀 한 말 값이었다. 열흘 동안 먹고 마시고 싸댄 것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했다. 너구리 가죽을 가져오려면 네댓 장은 가져와야 맞는 계산이었다. 주모가 너구리 가죽은 쳐다보지도 않고 어이없는 표정으로 털보를 바라보았다.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 말게. 그동안 내가 주모에게 해준 게 있지 않나."

 "해준 거라니요?"

 "그걸 꼭 말로 해야 하겠나. 내가 재를 넘는 장꾼들을 잘 보살펴 주었으니 이 장사도 탈 없이 해먹은 게 아니었나?"

 주모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어느 해엔가 산 사람들이 너무 극성을 부리는 바람에 한동안 장꾼들의 발길이 뚝 끊긴 적도 있었다. 그러자 주막거리도 활기를 잃고 파리만 날리던 시절이 있었다. 그걸 생각하면 산적 한 놈 열흘 동안 대접한 것쯤이야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다. 그런데 왜 자기 혼자 그 부담을 옴팍 뒤집어써야 하는지,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주모가 그런 뜻을 밝히자 털보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걱정하지 말게. 다음 달엔 다른 집에 보낼 테니 그런 줄 알게. 하하하."

 털보와 일행들은 탁주 한 사발씩을 얻어먹고 주막거리를 떠나 산채로 돌아갔다.   

 하여튼 털보가 나타나 두목행세를 하고부터는 산 사람들에게 제법 좋은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그런 호시절을 생각하면 지금 털보를 눌러 앉히고 새파란  젊은 놈이 설치는 것이 무척이나 불편했다. (월·수·금 게재됩니다) 김태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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