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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양옥 시인
오양옥 시인

제 둘째가 초등학교 입학한 후 첫 시험을 치고 나서 제게 물었습니다. "엄마, 개나리가 여름에 피는 꽃 맞지?" "…"

당시, 딸에게 말은 하지 않았지만 여러 생각이 교차하며 복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요새야 하우스에서 생산해 내는 꽃과 작물이 많아서 그런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지만 20년 전 딸에게 받은 질문은 좀 당황스러웠습니다. 근데 그 딸이 지금도 묻습니다. 개나리가 봄꽃 맞나 아닌가.

올 11월은 기온이 25도를 훌쩍 넘는 날이 많아 언양 어느 곳엔 때아닌 벚꽃이 피었다 하니 벚나무도 정신을 잃을 만하다 싶었습니다. 얼마 전, 긴 가뭄에 단풍이 들기도 전 말라 색을 잃은 나뭇잎들이 반가워했을 비가 왔습니다. 비 온 후 기온이 떨어진다길래 제법 도톰한 잠바를 꺼내입고 아침 산책을 다녀왔습니다. 바람은 찹찹했지만 쨍한 하늘빛이 그야말로 푸른 물을 왈칵 쏟아낼 듯했고 지천으로 피어있는 억새는 햇살 아래 은빛 몸짓으로 지나가는 발걸음을 죄다 잡아 세우고 있었습니다. 말이 필요 없는 대한민국의 가을이구나 싶다가 갑자기 울적해졌습니다. 이 가을 얼마나 더 보고 즐길 수 있을까.

날이 좋아서인지 해가 바뀔 때가 되어가서인지 결혼 소식이 자주 들립니다. 코로나로 한산했던 식장도 축하객들로 넘쳐나니 이처럼 색 고운 계절에 결혼하는 선남선녀들 얼마나 좋을까요. 혼기가 된 딸이 있어서인지 식장에 가는 제 마음도 전과 다릅니다. 그러고 보니 경조사 관련하여 흔히 하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현직에 근무할 때와 퇴직 후 부조금의 차이가 배 이상 나더라는. 현실감 떨어지는 저는 애써 부인을 했지만, 너도나도 하는 소리를 꿰맞추면 영 터무니없는 말은 아닌 듯합니다. 축복 속에서 탄생하는 부부 생각만으로도 좋지만, 곧 가정을 꾸리고 살며 아이들이 넘어야 할 산들을 걱정하자니 결혼이 수지를 따지는 장사는 아님에도 현직에 있을 때 자녀들을 결혼시켜야 한다는 억지스러운 이야기가 이해도 됩니다. 사회 속에서 평생 얽혀 살아오며 만든 무수한 관계를 진정성이라는 기준으로 저울질할 수는 없지만, 우리를 둘러싼 숱한 관계들이 퇴직과 동시에 정리되어 듬성듬성한 빈 숱이 된다면 많이 서운할 것 같습니다. 

경쾌하게 바스러지는 낙엽 소리에 젖은 맘 추스르며 돌아오는 산책길을 나랏돈이, 국민의 혈세가 마치 제 돈인 양 취급하는 몰지각에 내로남불인 정치 현수막이 끝내 망쳐버렸습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파악도 되지 않는 사람이 무슨 정치를 한다는지, 시쳇말로 제대로 빡쳐버렸습니다. 햇살 받아 번쩍이며 서 있는 고층 빌딩들을 보며 화려하게 잘 가꿔진 공원을 보며 값비싼 식당을 가득 메운 사람들을 보며 짝 찾기 프로그램을 보며 설마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지. 빛 좋은 개살구라는 말이 현실인 대한민국이 앓고 있는 정도를 알고나 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국정감사가 끝났고 시도의회별로 행정세무감사도 거의 끝나가고 있습니다. 이미 국정감사의 수준은 온 나라가 알고 있어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로 안타깝지만 퉁 쳐야겠습니다. 가계의 빚도 늘어가고 지자체와 국가의 부채도 늘어갑니다. 눈 가리고 아옹입니다. 생각 없이 집행하고 무분별하게 쓰고나선 국가부도 운운하며 긴축재정 핑계로 필요한 예산은 삭감하고 세금은 더 거둬들여야 한다고 합니다. 그나마 우리 때는 나았습니다. 대학을 나오면 열심히 일만 하면 일자리는 많았고 돈을 모을 수 있었고 꿈을 향해 다가설 수도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 아이들은 어떤가요. 모든 것을 다 해도 일자리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일자리를 구해도 치솟는 물가가 떡하니 버티고 있습니다. 백년지대계가 비단 교육만의 문제는 아니겠죠. 말을 탔으니 경마 잡히고 싶겠지만 그것이 내 돈이 아니라 그토록 모시겠다던 국민의 돈이라는 점을 꼭 말해두고 싶습니다. 일련의 사건이나 사고가 터지면 유족보상금부터 따지고 코로나 때 주던 위로금은 안 받으면 바보였고 이왕 걸릴 코로나였다면 보상금 줄 때 걸렸으면 하고 바라는, 경우 잃은 우매한 국민으로 만드는 정치에 생각 없는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어가는 우리가 너무 불쌍합니다.

오랜만의 산책길 망쳐버린 마음은 어쨌거나 괜찮습니다. 다만 11월에 어울리지 않는 기온과 생급스러운 꽃소식, 미쳐버린 시절에 테트리스 게임 같은 세상을 살아내고 살아가야 할 후세대 걱정으로 한 몸살 심하게 앓을 것 같습니다. 처방이 시급합니다.오양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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