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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수향 시인
심수향 시인

찬 이슬이 맺힌다는 한로, 이름도 예쁜 이 한로라는 절기가 내 관심 안으로 들어오게 된 것은 얼굴도 본 적 없는 한 마리 새 때문이다. 이 이야기가 정확하게 몇 년 전 인지는 기억에 없다. 완성되지 못한 시 속으로 새를 끌어들인 것이 5년쯤 전이니 얼추 그 무렵이 시작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덥고 습한 그해 여름 어느 새벽이었다. 난데없는 새 울음으로 잠에서 깨어났다. 불면증이 길어지면서 잠에 대해 유난히 예민해져 있던 때였다. 뒤척이다 새벽녘에 겨우 잠든 단잠을 날카로운 새 울음이 깨워버린 것이다. 무슨 새가 저리도 앙칼지게 우는가 하고 짜증냈던 그날 기억이 지금도 또렷하다. 

 하긴 아까운 새벽잠을 잃어버렸으니 새 소리가 꾀꼬리 같았어도 짜증스레 들렸을 것이다. 문제는 우연히 들었던 그날의 새 울음이 한번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새벽마다 계속된 것이다. 이후 나는 날마다 새와 전쟁하는 심정으로 새벽을 맞이해야 했다. 더욱이 새는 꼭두새벽에 울기 시작해서 좋이 서너 시간 가까이 울어댔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새가 울 무렵이 되면 자연스레 눈이 떠져서 한껏 열어젖혀 두었던 창문을 꼭꼭 여며 닫았다. 그리곤 신경을 곤두세우며 새벽잠을 청했으니 그것이야말로 새와의 전쟁이었다. 

 그런데, 이 전쟁은 불행하게도 가족들에게도 같은 아파트 지인들에게도 공감을 얻어내지 못했다. 그걸 왜 신경 쓰며 듣고 있느냐고 핀잔만 들었다. 서운함 가운데서도 나는 새에 대하여 관찰이랄까 관심이랄까 이런 것이 생겨나고 있었다. 그 결과 이 새는 처음 듣는 울음을 가졌고, 울음소리는 까마귀 비슷하고 여름철새 종류이고, 우리 아파트 뜰에서 새끼를 낳아 키우는 중이다. 비슷한 새 소리를 듣지 못 하였으니 아비 새는 여기 없다. 중새끼쯤으로 자라난 새끼들과 먼 강남으로 이동하기 위해 어미가 새끼들의 비행 훈련을 시키고 있는 것으로 추측한다. 그것은 울음이 가까이 들렸다 멀리 들렸다 정확한 간격을 두고 들린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새 소리가 저리 큰 새도 있을까 싶게 소프라노 중에서도 가장 높은 음역대의 콜로나투나소프라노 정도로 높고 앙칼지게 시작하여 끝날 무렵이면 피곤에 쩐 쉰 소리로 변해간다. 사람으로 치면 극성 엄마, 열혈 엄마 새다. 

 날씨가 서늘해지고 문을 닫으면서 그 새와 나의 새벽잠과는 큰 마찰이 없어졌다. 나의 예민했던 신경의 모서리도 서서히 마모되어 갔다. 그러면서 새에 대해 은근히 신경이 쓰이고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외출에서 돌아올 무렵 낯선 새가 보이면 혹시 그 새와 그 새의 새끼일지 모른다 싶어 눈여겨보기 시작하였다. 나의 메모에도 변화가 생겼다. 어미 새를 그녀라고 적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뒤뜰 삼엽 단풍나무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회화나무 쪽으로 작은 새 몇 마리가 나래 짓 연습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어미는 어디 높은 곳에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어린 새들의 어설픈 나래 짓을 한참이나 지켜보았다. 어쩌면 저 새들일지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같은 여자로서 그녀의 육아법을 되짚어보았다. 참 대단한 엄마인 그녀는 늦잠 한번 자는 법 없는 바지런한 여자였고, 아파트라는 트랙을 돌면서 애들만 돌게 하지 않았다. 언제나 함께 움직이면서 하나하나 동작을 지적하며 고함을 질러대는 참 적극적이고 존경스런 엄마였다. 나는 저렇게 열중하며 아이들을 키워내지 못하였다. 같은 어미로서 극성스러울 정도의 적극적 자세가 부러웠던 나는 가끔 들리는 그녀의 훈령 소리를 숙연한 마음으로 듣곤 했다.

 어미 새를 새벽잠의 적으로 간주하고 미워하다 내가 방해받지 않으니 그제야 다른 눈으로 새를 보는 나를 돌아보면서 나란 사람이 참 간사스러운 동물이구나 싶었다. 엄밀히 말하면 악착스러운 그녀의 훈육 소리는 나의 새벽잠에는 최악이었다. 하지만 그 새끼들에겐 생존의 준칙 아니던가. 그러구러 새 울음이 들리는 날도 들리지 않는 날도 있으면서 많은 날들이 흘러갔다.

 아침에 날씨 정보를 듣다 비로소 알아차렸다. 그녀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것이 한참 되었다는 것을. 그때서야 '아, 갔겠구나. 먼 강남이라는 곳으로 가고 있겠구나' 혼자 중얼거렸다. 피를 토하듯 소리 지르며 한 놈도 놓치지 않겠다고 그 많은 날들을 훈련시키며 잠을 아끼던 어미 새, 그녀는 계획대로 잘 가고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한로라는 절기를 온몸으로 받아들인 한 해가 있었다. 

 그 후부터 나는 낯선 새 울음이 들리면 귀를 열고 눈으로 그들의 비행을 좇는 사람이 되었다. 한로 무렵이면 찬 이슬 한 방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저 차디찬 한 방울 이슬이 우리와 다른 생명들에겐 어떤 무게로 그들 삶에 영향을 주는지 생각하는 버릇도 함께 가지게 되었다. 심수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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