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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혜진 아이티공간 기술연구소장·산업문화갤러리 It's room 관장
윤혜진 잇츠룸 관장·아이티공간 부사장·유예지 대표

'유럽의 문제아'였던 그리스. 

 그러나 불과 10여 년 만에, 국가부도위기에서 투자적격으로 국가신용등급을 회복했다.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빠른 부채감소율이다. 거기다 외국인들의 직접투자증가율까지 50% 이상 끌어올리는 최고치도 찍었다. 언제나 그래왔듯, 이런 급물결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기 마련. 

 그는 바로,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총리. 그리스 중도우파 성향의 신민주당 소속인 그는 3년 전 급진좌파 정당인 시리자를 완전히 굴복시켰다. 그리고 곧장 그만의 강력한 추진력으로 시장친화적 친기업정책을 주도했고, 그 결과는 '그야말로 그리스'다웠다. 당연히 국민들의 압도적 지지로, 신민주당은 지난 6월 총선에서도 압승을 거뒀다. 

 역시 '사람이 답'이였다. '코로나'니 뭐니, '세계경제'가 어찌저찌 해도, 이 모든 걸 보듬어 안고 답을 내는 것은 결국 '사람, 인간'이란 걸, 그리스는 확실히 증명해냈다. '아테네의 교양(paideia)을 지닌 사람, 헬레네인'. 이전부터 주변 국가들은 그리스인들을 이렇게 불렀다. '교양'은 그들에게 있어, 문명과 야만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헬레네인'은 자유(eleutheria)와 민주주의(democratia)를 수호하는 그리스 시민이었다.

 자유와 질서의 균형미를 승화시킨 인본주의적 이념은 '신을 모든 생활에 중심에 둔 이집트'와 차별화되었다. 그리스는 이집트처럼 신격화된 전지전능한 신과 왕을 자기들의 상위에 절대 두지 않았다. 그래서 그리스의 여러 도시 국가들은 평등하게 공존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인간에 의한' 도시 구성은 '인간을 위한' 예술과 건축들을 창조해 냈다. 그리스 초기에는 이집트의 영향으로 특유의 규칙성 있는 형태조화미를 유지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 규칙에서 한발 더 나아가 그 지역만의 인간적 개성미를 발산시키며, 이성적 철학을 기반으로 한 자연과학까지 발전시켰다. 여기서 이집트와 그리스의 가장 큰 대조점은 진리로서의 철학적 수학을 탐구해가는 '인간' 이었다. 거기다 인간의 감정과 다양성을 그들이 남길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통해 열정적으로 시도했다. 그렇게 인간에 의한 개성과 사상이 확산되면서 그리스인들은 신에 대해 다시 정의하게 되었다. 절대적 '신'은 그야말로 인간의 모습을 한 위엄있는 존재이기도 했지만, 인간적 약점을 지닌 존재로 전락시켜갔다. 그러면서 그리스인들은 더욱더 '신에게 의지하지 않는' 완벽한 인간상을 갈망하며 추구해 갔다. 

 이러한 인간으로서의 거듭된 시행착오는 인간을 '만물의 척도'로 하는 근간을 마련했다. 이것은 곧 개방적 민주주의 기틀을 다지게 했고, 그리스의 각 도시 국가들은 지속적 발전과 번영으로 대외무역에 주력할 수 있었다. 그렇게 지중해 에트루리아와 페르시아 그리고 이집트와의 무역이 빈번해지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상호 간의 문화교류도 왕성히 이어나갈 수 있었다. 결국, 그들에게 있어 '인간'은 자연(또는 신)이 만든 가장 뛰어난 창조물로, '인간'이야말로 지성(知性)의 가장 중요하고 정확한 척도라고 규정짓게 되었다. 내세적 다신교를 바탕으로 인간이 '완벽한 신'으로 거듭난다는 이집트. 그에 반해 만물의 척도로서 '완벽한 인간상'을 만들고자 했던 그리스는 차별화된 세계관을 추구한 듯하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완전함을 이상향'으로 하는 이집트와 그리스의 지론은 결국, 평행선에 있었다고 볼 수도 있다. 이 '완전하고 완벽'한 절대적 진리 추구는 이성적 사고로도 귀결되었고, 그를 기반한 수학적 사고는 이집트와 그리스 도시들을 구성하는 최고의 기준이 되었다.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유명한 표어 '너 자신을 알라'는 사실, 이집트 신전에 이미 새겨져 있었다. 소크라테스가 이 말을 어느 정도 모방한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그와 더불어 플라톤의 4덕(정의, 지혜, 절제, 용기) 역시 고대이집트 10가지 미덕에 이미 확립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리스 신화 속 신(神)들은 타 종교에 비해 상당히 인간적이었다. 외형적으로도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매혹적 신체비(身體比)는 물론이고, 자신들의 모든 것을 내던진 처절한 사랑과 질투로 극도로 미워하고 배신하는 운명의 '카타르시스(그리스어·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詩學)>제6장:비극의 정의(定義)에 등장 용어. 정화(淨化)·배설(排泄)을 뜻함)'를 반복했다.

 무한능력의 신(神)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외모와 성격은 너무나 지극히 인간적이다. 그래서 그들 나름의 사연 있는 역정과 노함은 언제나 극적인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 그리고 이 극적 영감을 기반으로 한 판타지적 소재들은 지금의 무수한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을 탄생시키고 있다. 이들의 브랜드파워는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할 정도의 어마어마한 양적·질적 존재로 현 인류의 일상을 장악해가고 있다. 이러한 '완벽추구 인간'은 철학으로 이어져 로마법의 제도적 유산으로 해서 지금의 민주정치로 이어졌다. 

 그리스의 그간 모든 정치·경제 흐름은 우리에게 참 많은 걸 시사한다. 그리스가 과거 그 지경까지 곤두박칠 친 것은 지금의 우리 실정과 그리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똑같은 정치부패와 경제고통 속에서도 그리스는 살아났고, 대한민국은 여전히 국민들만 줄줄이 죽어나가고 있다. 지금의 상황은 10여 년 전 파탄의 지경을 치닫던 그리스의 사정과 신기하게도 정말 딱 들어맞는다. 지금의 그리스를 살려낸 건 '사람이고, 그들의 역사'였다. 우리 역시 '사람의 역사'로 여기까지 눈물겹게 달려온 민족이며 국가다. 그러나 내년 총선을 앞두고 한치의 바뀜도 없이 이미 머리를 쳐든 대한민국의 여전한 정치권 포퓰리즘(populism) 경쟁. 딱 이 시점에 그리스는 그야말로 우리에게 많은 걸 알려주고 있는 듯하다. 윤혜진 잇츠룸 관장·아이티공간 부사장·유예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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