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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진 아동문학가
이수진 아동문학가

"그건 선생님이 잘못하신 것 같네요."라는 ㅇ의 지적을 받으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너무 예민한 거 아닌가요?" 오히려 상대에게 날을 세웠다. 나름의 방어기재다. 절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며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뒷받침해 줄 근거를 찾아 중언부언했다.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알고 있다. '인정하기 싫지만, ㅇ의 말이 맞다. 그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러면서 아주 천천히 아주 조금씩 생각을 틀게 된다. 그 과정이 사실 쉽지 않다. 가끔은 안 되기도 한다. 그건 나의 오랜 가치관이나 습관의 한 부분을 부정해야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지은이 빅터 D.O. 산토스/그림 안나 포를라티) 그림책은 아마도 민망함과 부끄러움을 피해 숨어든 도서관에서 만날 운명이었는지 모르겠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을 알려줄 것만 같은 제목에 이끌려 책을 편다. 그림책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은 강렬하고 독특한 표지에서부터 시선을 사로잡는다. 인간의 신체 부분을 클로즈업해 네 컷으로 나눈 그림이, 보는 사람의 호기심을 이끌어낸다. 더불어 강렬한 표지는 '이것'과 '인간'에 대한 비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읽기 전, 표지와 제목만을 눈여겨보아도 반짝이는 힌트를 갖고 출발점에 설 수 있다. 

 그림 작가 안나 포를라티는 광범위하고 추상적일 수 있는 소재를 아름다운 비유를 통해 깊이 있게 감상할 수 있도록 구현해냈다. 사원을 감싸 안은 거대한 나무, 그와 대비되는 작은 인간의 모습을 담은 그림과 갓난아기부터 백발의 노인까지 한 사람의 인생과 함께하는 '이것'의 궤도를 담은 그림 등 한 장 한 장의 감각적이고 풍부한 그림을 살피며 그림책이 주는 매력을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책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표지.
책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표지.

 

 하지만 생각보다 쉽게 정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책을 펼칠 때마다 스무고개 같은 질문이 쏟아진다. 아름다운 비유가 담긴 그림으로 '이것'의 정체에 대한 힌트를 하나씩 말해주지만 정작 '이것'이라는 물음표와 설명하는 특징을 연결하며 그것이 무엇인지 떠올리는 것은 쉽지 않다. 

 괜스레 별로 믿지도 않는 '사랑'이라는 단어만 계속 머릿속을 맴돌기만 한다. 너무 뻔한 내용이라고 생각하며 실망스럽게 정답을 보는 순간,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얼마나 '이것'을 소홀히 여기고 다뤘는가를 반성했다. 그리고 다시 처음부터 한 장 한 장을 음미하며 읽기 시작했다. 

 사실 정답이 그렇게 새삼스러운 것도 아닌데 나는 왜 그렇게 충격이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며칠 전 얼굴을 붉히며 민망함과 부끄러움 사이를 헤매던 이유가 아니었을까 싶다. 

 작가 빅터 D.O. 산토스 역시 때로는 '이것' 때문에 상처받기도 했을 것이다. 또한 깊은 위로를 받으며 묵묵히 '이것'의 힘을 믿고 걸어왔을 것이다. 그렇기에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주제인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이것'이라는 답을 찾아냈을 것이다. 특히 세계에는 약 7,168개의 언어가 존재하지만 그중 사용자가 적어 사라져 가는 토착어에 대한 작가의 안타까움이 담겨 있기도 하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나에게 물어본다. 나는 다른 언어를 그대로 흉내 내지 않고 '나만의 토착어'를 가꾸고 있는가, 그래서 인간답고 나답게 이 세상에 존재하는가.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어요. 여러분이 아는 그 무엇보다 오래전이요. 나는 어디에나 있어요. 모든 나라, 모든 도시, 모든 학교, 모든 집에. 나는 누구일까요?" 이수진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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