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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 시인·요양보호사
김현주 시인·요양보호사

빛과 어둠이 다투는 미명의 시간, 어둠은 물러나지 않을 듯 짙게 드리워져 있다. 하지만 동이 트는 건 어떻게 막을 수 있나?

어김없이 찾아오는 불멸의 진리를 오늘의 태양은 또 말해 줍니다.

지금이 가장 좋은 때, 어제도 아니고 내일도 아닐 수 있다.

삶은 계획한 대로, 생각한 대로 다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새로운 곳을 찾아가는 미지의 여행길 같은 인생, 다만 여느 때와 같은 하루를 보내고 또 하루를 맞이하는 무한반복의 시간이다.

일상이 쌓이면 일생이 되고 그 수많은 이야기는 서사로 펼쳐지는 것이다.

올해도 빠르게 지나가 버린 순간들 속에 떠오르는 시 한 편이 있다.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이다

제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이 몇 개

저 안에 천둥이 몇 개

저 안에 벼락이 몇 개

(중략)

 

우리는 시간에 흐름 따라 익어가고 더 붉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5월에 이어 지난 11월, 시댁 가족들과 강원도 여행을 다녀왔다. 동해안을 따라 바다를 보고 삼척에서는 해안 길 따라 레일바이크를 타고 옥빛 바다와 눈부신 가을 햇살을 만끽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붉다는 표현보다 더 붉은 단풍을 구경하며 기암괴석으로 둘러 쌓인 산과 강, 강원도 자연의 신비함을 즐겼다.

굽이굽이 지나는 산들이 산 파도로 넘실거리고 산들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장엄한 풍경 앞에 차를 가다, 서다를 반복할 수밖에 없는 경이로움을 느꼈다.

빠듯한 일상에 시간이 무한 해제되는, 집에서 멀어져서 느끼는 타지의 여행길이 실감 되며 가족들은 웃음을 참을 수 없는 고교생들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 하하 호호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드넓은 바다와 저 멀리 수평선과 화창한 하늘을 보니 몇 해 전 먼 길을 떠나신 어머니 생각이 절로 날수밖에 없었다.

이 순간 함께 하면 얼마나 더 행복할까?

지역 특산품이나 맛집에서 식사할 때도, 어김없이 어머니 생각이 간절한 것은 아직도 못다 한 효에 대한 자책감이 아닐까?

어머니가 자식들에게 품은 성스러운 마음과 간절함이 '오늘의 행복을 만끽하는 것이다.' 생각하니 저절로 숙연해져 창밖을 보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어머니는 고단한 삶을 마감하기 전 형제끼리 우애 있게 지내며 건강하길 소망하셨다. 그 뜻을 모아서 형제끼리 매달 돈을 모아 여행을 하기로 정했고, 꾸준히 여행길을 떠나고 있다. 건강은 스스로 지키기 위해 요즘 열풍인 황톳길 맨발로 걷기 등 각자의 방법대로 하면서도 서로. 공유할 좋은 운동법도 나누며 소통하고 있다. 

어머니는 곁에 안 계시지만, 어머니 마음을 함께 하는 시간의 의미는 시간이 지날수록 나이의 속도대로 더 깊게 마음에 새겨지는 나날이다.

요양원에서 함께 생활하는 배 어르신은 하루에도 수없이 아들 넷, 딸 두 명의 이름을 손가락 꼽아 가며 말하고는 옆에 계신 임 어르신께 "그 집은 자식이 몇이요?" 물으신다. 임 어르신은 아들 셋, 딸 둘 이름을 또 손가락을 꼽으며 말하고는 마지막에는 꼭 남편 이름을 말하고 "우리 할아버지~"하며 허공을 지그시 응시하신다. 치매가 와도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자식들 이름이다. 곁에 있는 나에게 "자네는 얼라가 몇이고?" 물으신다. 어르신들 웃게 하려고 손가락을 활짝 펴면 "하하하하 그것은 거짓말이다. 얼라 열 명은 요새 사람들은 그마이 안 낳는다 그 저 서너 명 낳지" 하시며 소리 내어 웃으신다. 

배 어르신 입소 사연은 다소 남다르다. 집을 떠나 낯선 환경에서 잠을 자는 게 첨이라 오랜 시간 적응 시간이 필요하셨다. 마치 처음 유치원을 보낼 때 엄마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심하게는 몇 달을 분리 불안을 견디지 못하고 울기 때문에, 엄마들이 아주 힘든 경우들이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어르신도 문 앞에서 집에 간다고 고집을 피우시고 요양보호사들이 가까이 가면 때리거나 꼬집고 몸부림을 치시기 일쑤였다. 밤에는 잠을 못 주무셨다. 지금은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시고 즐거워하시며 생활하고 계신다. 

최근에는 주기적으로 요양보호사 실습생들이 실습을 위해 요양원을 방문 한다. 요양보호사 교육원별로 팀이 정해져 오는데 회사 정년퇴직하고 오신 남자분 두 분이 계셨는데 어르신들에게 인기가 많다. 김 어르신은 "나 좀 업어 줘요" 하시고, 한 어르신은 수줍어서 고개를 못 드시고 두 손을 꼭 모은 모습에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이 어르신들 평소와 다른 모습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안아 주는 일, 서로를 바라보고 웃어 주는 일은 가족들이 친밀하게 하는 행동이다. 어쩌면 실습생 남자 선생님들이 아들 같아 보이기도 하고, 젊은 시절 어쩌면 남편의 느낌을 연상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거울은 혼자 웃지 않는다. 내가 먼저 웃어야만 웃는 것이다. 웃는 일에 익숙지 않은 세월을 보낸 부모님을 웃게 하고 어르신들을 웃게 하는 것은 어쩌면 자식이나 돌봄을 하는 요양보호사나 사회복지사 등 요양시설에 종사하고 어르신들을 돌봄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몫인지도 모른다.

어느새 단풍이 붉은 잎을 떨어뜨리고 입동도 지났다. 지나간 시간은 추억이 될 것이고 또다시 태양이 떠오르면 하루가 시작될 것이다. 마음속 어딘가에 넣어 두었던 부모님과 함께 한 시간은 숙성되어 갈 것이다,

한 해를 마감하는 12월을 보내며 부모님에 대한 孝(효)에 대한 자아 성찰, 거울의 시간을 가져봄을 권한다. 김현주 시인·요양보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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