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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덕출이 가족과 함께 촬영한 사진으로, 가장 오른쪽 의자에 앉은 소년이 서덕출이다. 상단에 쓰인 글씨로 미뤄 경술년(1910년)에 촬영한 것으로 추정된다. 울산박물관 제공
서덕출이 가족과 함께 촬영한 사진으로, 오른쪽 아래 의자에 앉은 소년이 서덕출이다. 상단에 쓰인 글씨로 미뤄 경술년(1910년)에 촬영한 것으로 추정된다. 울산박물관 제공

울산박물관이 '희망을 노래한 시인, 서덕출' 학술총서를 발간했다. 울산 출신 천재시인 '서덕출'은 지난 1907년 1월 8일 경상남도 울산 교동에서 태어났다. 이 책은 서덕출 시인의 장남 故 서대진 씨가 지난 2007년 울산박물관에 기증한 서덕출 선생 관련 자료의 사진 및 해설을 수록한 학술총서다. 이번 학술총서는 발간사를 시작으로 △서덕출 관련 자료의 수집 과정 △가족 인터뷰 △서덕출 관련 자료 소개 △논고 △부록 등이 실려있다. 기증 자료 중 서덕출 선생과 직접 관련되지 않은 자료는 수록하지 않았다. 또 타 기관 소장 자료인 경우에도 서덕출 선생과 관련이 있는 경우 이해를 돕기 위해 일부 수록했다.

일제강점기의 한국어 표기법에 따라 기록된 신문자료는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되도록 현대 한국어 표기법에 맞춰 수정했다.

 현재 울산박물관에 기증된 서덕출 관련 자료는 대부분 그를 오래도록 기억하고자 했던 가족과 동료들이 남긴 것이다. 

울산 출신 아동문학가 서덕출(徐德出, 1906 ~ 1940). 그가 작사한 동요 '눈꽃송이'는 세대를 아우르는 널리 알려진 노랫말이다. 
울산 출신 아동문학가 서덕출(徐德出, 1906 ~ 1940). 그가 작사한 동요 '눈꽃송이'는 세대를 아우르는 널리 알려진 노랫말이다. 

 서덕출의 본관은 달성이며 족보상의 이름은 정출, 호적상의 이름은 덕줄이다. 

 어린 서덕출은 마루에서 놀다가 다리를 다치는 불의의 사고를 당했고 그 후유증으로 평생 자유로운 거동이 어려운 장애를 갖게 됐다.

 집안에만 머무르는 것을 답답해하던 서덕출은 부친이 구해 준 여러 종류의 문예지와 잡지를 탐독하며 동요 습작을 시작했다.

 당시 소년 서덕출은 잡지 '어린이'를 가장 즐겨 읽었다. '어린이'는 문학가이자 소년운동가 방정환을 비롯해 색동회 회원들이 대거 참여한 당시의 대표적 아동 잡지였다. 

 이곳에는 동요와 동시, 동화, 만화 등이 실려 있었을 뿐 아니라 독자들이 직접 소감을 보낼 수 있는 '독자담화실'이 마련돼 있었다. 서덕출은 이곳에 여러 차례 글을 써 다른 지역의 독자, 편집자와 소통했다. 정규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하고 외부로 자유로이 나가기 어려웠던 그에게 '어린이'는 세상을 향한 통로였으며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무대가 됐다.

서덕출의 동생 서수인이 엮은 서덕출 동요집 '봄편지'. 울산박물관 제공
서덕출의 동생 서수인이 엮은 서덕출 동요집 '봄편지'. 울산박물관 제공

 서덕출이 동요를 발표하기 시작한 것은 1925년 4월호 '어린이'에 '봄편지'가 당선되면서부터다. '어린이'지는 독자의 응모작 중 우수한 작품을 뽑아 작품을 '입선동요'로 발표함으로써 동요 작가의 등단 창구와 같은 역할을 했다.

 시인의 사후 이뤄진 추모 사업은 크게 두 가지로 살펴볼 수 있는데 첫째가 동요집 '봄편지'의 발간이다. 또 하나의 사업은 현재 울산학성공원에 세워져 있는 '봄편지' 노래비 건립이다.

 그의 유고를 정리하는 데 가장 힘썼던 사람은 14살 아래의 동생 서수인이었다. 

 을산박물관에 소장된 서덕출 동요 원고는 총 6점으로, 동요집 '봄편지'가 2점, 신문에 투고된 작품을 모아 붙인 유고집이 1점, 필사본 원고가 3점이다.

 지난 1940년 엮은 서덕출 동요집 '봄편지'는 서덕출의 동생 서수인이 형의 원고를 정식으로 출간하기 위해 자필로 정리한 것이다. 

 서수인은 동요집을 발간하는 과정에서 여러 번에 걸쳐 형의 원고를 옮겨 쓰고 직접 삽화를 그릴 정도로 애정을 보였다. 

 '고 서덕출 선생 유고집'은 서덕출이 생전에 보관하고 있던 시들을 그가 대학 노트에 옮겨 붙여 정리한 것이다. 

1968년 7월 1일 울산 중구 학성공원 중턱에 건립된 서덕출 노래비의 모습(울산박물관 제공). 울산 중구문화원은 1970년 부터 매년 봄이 되면 이곳에서 울산 초.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서덕출 봄편지 글짓기 및 사생대회를 개최하였으나 2011년 부터 새로이 조성된 중구 복산동 서덕출 공원에서 행사를 옮겨 이어 가고 있다. 김수빈기자
1968년 7월 1일 아동문인회 '새싹회가' 중심이 돼 울산 중구 학성공원 중턱에 건립한 서덕출 노래비의 모습(울산박물관 제공). 울산 중구문화원은 1970년 부터 매년 봄이 되면 이곳에서 울산 초.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서덕출 봄편지 글짓기 및 사생대회를 개최하였으나 2011년 부터 새로이 조성된 중구 복산동 서덕출 공원에서 행사를 옮겨 이어 가고 있다. 김수빈기자

 서수인은 정식 동요집의 출간을 준비하기 위해 서덕출 동요 원고와 '봄맞이'라는 이름이 붙은 필사본 원고를 작성하며 수록 동시를 선별하고 교정하기도 했다. 이외에 민속학자인 최상수(1918~1995)가 광복 이전에 정리한 서덕출 시 원고도 박물관에 함께 기증됐다.

서덕출 장녀 서양자씨. 울산박물관 제공
서덕출 장녀 서양자씨. 울산박물관 제공

 

 서덕출 시인의 장녀 서양자 씨는 "아버지는 똑똑하고 현명하신 분이었다고 생각한다. 볼거리도 없었던 당시 몸이 불편한 분이 집안에서 그런 생각을 하신 것이 대단하다. 지금 살아 계셨더라면 얼마나 좋을까도 생각한다. 울산 공원을 지나가면서 꼭 한 번씩 들르곤 한다. 울산에 가면 우리 아버지가 남긴 것이 있다는 것이 뿌듯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김수빈기자 usks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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