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세련
삽화 ⓒ장세련

 

"도대체 네놈들은 누가 보낸 것이냐?"

 칼날이 제법 깊게 가슴을 베고 지나가자 이승균이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언양 무사들은 조금도 빈틈을 주지 않고 이승균의 몸을 베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이승균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옷은 모두 칼날에 베어져 너덜거렸고 몸 구석구석 칼날이 스치고 지나간 자리는 붉은 금이 나 있었다. 일부러 칼날이 깊게 들어가지 않도록 가볍게 베어서 쉽게 쓰러지지도 않았다. 이제는 더 이상 방어를 할 힘도 없어 보일 때 이선달이 나섰다.

 "잠깐 멈추어라. 이승균. 죽기 전에 할 말이 있으면 하거라."

 "이승균? 여기 이승균이 어디에 있느냐?"

 "그럼 네놈 이름이 무엇이냐?"

 "이름 따위는 없다. 나는 12 살수다. 다른 살수들이 네놈들을 반드시 벨 것이니 내 걱정하지 말아라."

 이승균이 마지막 힘으로 이선달을 향해 찌르기로 들어왔다. 이선달이 살짝 몸을 피함과 동시에 발뒤꿈치가 턱을 걷어찼다. 이승균이 그대로 나가떨어졌다. 언양 무사 한 명이 등 뒤에서 이승균의 심장을 찔렀다. 이승균은 몇 번 끄윽끄윽 소리를 내더니 그 자리에서 고개를 꺾고 말았다.

 "자, 이제 고치령으로 가자."

 넋을 놓고 있던 산꾼들은 그제야 정신이 돌아왔다. 저마다 한마디씩 하느라 술렁거렸다.    

 "이제 너희들은 어찌할 것이냐? 여전히 노각수를 따를 것인가? 아니면 털보 대장을 따를 것인가?"

 "털보요."

 "나도 털보."

 산꾼들은 너도나도 털보를 불렀다. 무술이 뛰어나다고 해서 자기들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것은 아니었다. 애꿎은 장꾼을 때려죽이는 잔혹함에도 혀를 내둘렀다. 그 일로 하여 김장복이 순흥부에 잡혀가고 산삼을 비롯한 귀한 약재까지 몽땅 털리지 않았던가. 아무리 먹고살기가 나아진다고 해도 관과 맞닥뜨리는 일은 피하고 싶었다.

 

 조선반도의 큰 축을 이루는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남쪽으로 뻗어 내려오다 태백산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소백산으로 연결된다. 고치령은 태백산과 소백산이 만나는 곳이다. 마구령에서 능선을 타고 고치령까지 가는 길은 그리 험하지 않았다. 능선을 따라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다 보면 한 시진 안에 도달할 수 있는 거리다.

 산 사람들은 저마다 병장기를 챙겨 들고 능선을 타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힘으로는 노각수에게 감히 대적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새로 나타난 다섯 명의 무사들과 이선달이라면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 같았다. 며칠간 노각수와 이승균의 힘에 밀려 고분고분 말을 듣기는 했지만,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은 아니었다.

 능선을 따라 걷다 보면 멀리 남쪽의 순흥이 내려다보였다. 며칠 전에 잡혀간 동료 김장복이 어떻게 되었는지 걱정이 되었다. 순흥의 장꾼을 때려죽인 것은 김장복이 아닌데 대신 잡혀가 참수를 당한 것은 아닌가 걱정되었다. 포졸들이 전후 사정도 물어보지도 않고 김장복을 데려간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지금 가서 노각수를 잡기만 한다면 손흥부로 끌고 가 살인범으로 넘기고 김장복을 구해오고 싶었다.

 고치령에 도착하니 털보가 반가운 얼굴로 일행을 맞았다. 아직 내려앉은 콧대가 성하지는 못했지만 두 눈에 반가움이 넘쳐흘렀다.

 "어서들 오게. 여긴 어떻게 오게 된 것이야?"

 "말도 마시오. 형님. 이분들이 이승균이란 놈을 아주 난도질을 해놓았답니다. 노각수란 놈도 찾아내서 절단을 내야지요."

 털보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다섯 무사와 이선달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잘 있었나? 노각수는 어디에 있는가?"

 "저기 국망봉에 다녀온다고 갔소."

 "국망봉에? 거기 뭐가 있길래?"

 "아마 국망봉에 사연이 있는가 봅디다."

 산 사람들과 언양 무사들은 물 한 모금씩을 마시고 곧장 능선을 타고 국망봉을 향해갔다. 고치령에서 국망봉까지는 줄곧 오르막길이었다. 산이 워낙 깊어 대낮인데도 심심찮게 산짐승들이 나타나 사람을 놀라게 했다. 이선달이 맨 앞에 서서 국망봉에 도착했다. 노각수는 국망봉 정상 바위 위에 미동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서른 명이 한꺼번에 몰려왔으니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서들 오시게."

 "죽을 때를 알고 있었군. 북쪽에 있는 여우가 널 구해주지는 못할 것이다."

 "말이 많구나. 내가 그깟 여우 생각이나 하는 줄 아느냐?"

 "그럼 여우 밑에서 승냥이 노릇이나 하는 주제에 생각할 사람이나 있겠느냐."  김태환 작가 (월·수·금 게재됩니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