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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왕생이<br>
삽화. ⓒ왕생이

시작하면서 

역전 다방 이름 치고 귀향다방만큼 정감 있고 멋있는 이름이 또 있을까 싶다. 

 '귀향다방'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그리움이 물씬 묻어나는 이름이다. 그 다방이 울산 북구 농소읍 호계 역 들머리에 2020년 말까지 문을 열고 있었다. 그 세월이 장장 80년이다. 고향을 떠날 때 이 다방에서 가족들과 이별의 아쉬움을 나누었던 사람들은 객지에서의 설움이 더할수록 이 다방이 그리웠을 것이다.

 도로 교통이 불편하던 시절, 호계가 농소 일대 중심이기 때문에 호계역은 떠나고 돌아오는 사람들로 늘 붐볐다. 호계역에 내려서 대합실을 지나 역 광장을 가로질러 나오자마자 오른편에 귀향다방이 있다. 

 떠날 때 모습 그대로였다. 돈 많이 벌어서 꼭 성공해서 돌아오라던 레지 미스 김도 아직 있을까. 그녀의 은근한 미소가 눈에 삼삼하다. 발걸음이 자연스레 다방으로 향했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10년 전 그러니까 2013년 11월이다. 호계역은 단풍놀이 간다는 현수막이 대합실 입구에 붙어 있었다. 그때가 호계역이 잘 나갔던 마지막 시절이 아니었을까.

 그때 마담에게 “단풍놀이 손님들도 귀향다방에 오느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좌우로 크게 흔들었다. 아니어도 한참 아니라는 뜻이다. “요즘 다방은 지역 노인들이 단골"이라면서 웃었다. 과거를 들춰 무엇하랴마는 1970년대만 해도 기차가 연착한다는 역무원 방송이 나오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기차 손님들은 귀향다방으로 몰렸다. 갑자기 다방 입구에 긴 줄이 생겼다. 이 다방은 기차 연착이 영업수지를 올리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사실 그때는 기차가 연착을 밥 먹듯 하던 시절이다. 역 앞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귀향다방은 제2 호계역 대합실 역할을 했다. 가끔은 15분 연착한다는 안내방송을 해놓고 좀 일찍 도착하는 기차도 있었다. 커피를 다 마시기도 전에 멀리서 기적소리가 들리면, 남은 커피를 마저 마시려고 허둥거렸던 그 시절도 돌아보니 벌써 40년 전, 그 새 까마득한 세월이 하염없이 흘렀다. 

 2021년 12월 28일 호계역은 새로 개통한 송정동 북울산역으로 옮겨갔다. 기차가 오다 오지 않은 날 아침 호계역은 갑자기 적막해졌다. 철커덕 철커덕 달려오던 기차가 내지르는 기적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사람들로 붐볐던 역전광장은 한 대 두 대, 눈치를 보던 차들이 사람 대신 찾아오더니 어느 날 주차장으로 변했다. 5일 장과 더불어서 이 지역 중심가로 군림했던 호계역 일대가 곡예사의 마술처럼 순간 변두리로 변한 모습에 지역 사람들은 뭐가 먼지도 모르고 그저 어리벙벙했다. 기차역이 옮겨간다고 해도 별 탈이야 있을까 했는데, 탈이 나도 너무 크게 나버린 데 대해 귀향다방에 와서 서로 말없이 마주 보기만 했다고 한다.   

호계역 전경.&nbsp;유은경기자 2006sajin@<br>
호계역 전경. 유은경기자 2006sajin@

반촌마을 호계는

먼저 귀향다방을 말하기 전, 호계라는 지역에 대해 약간 설명이 필요하다. 지금이야 울산 북구 중심도시로 변했지만, 과거 호계는 농소면(읍)사무소가 있는 농촌 중심마을이다. 면사무소를 비롯해 파출소, 우체국 등 각종 기관이 호계에 있다 보니 타지 사람들은 면 단위 농소 보다는 리 단위 호계를 먼저 알았다. 이렇게 된 데는 호계역이 한몫했음은 당연하다. 

 호계는 지금이야 대단지 아파트가 밀집하면서 도심으로 변했지만 울산이 공업 도시로 발전하는 1970년대와 80년대만 해도 사실은 농촌도 또한 도시도 아닌, 도시 외곽의 어정쩡한 반촌이었다.

 1970년대 초반, 현대자동차에 근무했던 강덕수씨(76)는 “양정동이나 염포동에 셋방 구하기가 어려워서 차츰차츰 변두리로 나오다 보니 명촌, 진장, 송정을 거쳐 호계까지 왔다"라고 했다. 그는 호계에 집을 구하고 나서 제일 먼저 필요했던 것이 오토바이였다고 했다. 시내버스 노선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당시는 호계에서 현대차에 출근하려면 학성공원까지 와서 다시 방어진행 시내버스를 갈아타야 했다. 대신 오토바이가 있으면 어디에 살던 시내버스 시간표에 구애받지 않았다. 자가용 오토바이를 타고 퇴근하다 귀향다방에 들러서 커피 한잔 마시는 여유가 그 시절 낭만이었다고 기억했다. 이 다방 단골이 되면 편리한 것이 많았다. 가끔은 마담에게 청량리행 기차표를 사놓으라고 부탁했던 적도 있다고 했다. 그런 것들이 수북이 쌓여서 지금은 아름다운 추억이 됐다며 웃었다.

 그는 시내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비교적 방값이 싼 호계로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기존 역전다방과 지금은 교회가 돼버린 농소중학교 입구 다리 끌의 소정다방 외 10여 개 다방이 생겼지만 귀향다방 마담과 레지들 매너가 가장 좋았다고 했다. 가끔 늦은 저녁, 퇴근하다 귀향다방에 가면 마담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의미 있는 미소를 지었다. 모른 척 커피를 시키면 도라지 위스키 한잔하자고 수작을 걸었다. 이 맛에 비가 내리는 날은 귀향다방을 일부러 찾아간 사람도 있다. 또 때로는 레지 아가씨들이 붙잡아주지 않나 하고 먼저 농을 걸었던 시절도 있었다며 웃었다. 

호계역.<br>
호계역.

귀향다방

호계역 광장에서 나오면 오른쪽에 기차 고삐처럼 길게 늘어선 건물 중간쯤에 귀향다방이 있었다. 이 다방에서 경주 쪽으로는 호계 시장, 맞은 편 오른쪽은 농소면(읍) 사무소가 있고 송정 방향 도로를 물고 지서(파출소), 우체국, 농협, 초등학교 등 농소 중요기관들이 줄줄이 있다. 호계는 지역 행정타운이었고 번화가였다. 매일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기관에서 일을 끝낸 사람도 귀향다방에 들러서 커피를 한잔 마시는 것이 그날 일과를 정리하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러나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늘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았던 귀향다방도 동해남부선 철길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던 2년 전(2020년) 문을 닫았고 막창집으로 간판을 바꾸었다. 이 다방이 문을 닫은 것은 그냥 닫은 것이 아니라 울산 원조다방 가운데 한 곳이 아쉬운 역사를 접었다는 데 상실감이 크다. 

 사실 귀향다방이 문을 닫는다는 것은 동해남부선 복선화 공사가 시작될 때부터 기정사실처럼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문을 닫고 나니 이 지역 남정네들은 청춘 시절 소중하고 비밀스런 추억 하나를 잃어버린 듯 허전했다며 웃었다. 

호계역 철길.<br>
호계역 철길.

다방이 개업한 때는

귀향다방은 언제 개업했을까. 아쉽지만 물음표만 남는다. 다만 동해남부선 철도 역사에서 어렴풋이 다방 개업일을 점칠 뿐이다. 2015년 10월 어느 날이었다. 필자가 펴낸 『다방열전』을 중심으로 ubc 방송국에서 다방취재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필자도 취재진과 함께 이 다방을 갔었다. 다방취재를 하는 중에 다방에 들어선 노인 한 분이 있었다. 그에게 이 다방 이야기를 꺼내자 그는 아무 말 없이 등에 지고 있던 허름한 배낭을 내려놓더니 『다방열전』을 꺼내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다방에 대해 물어 볼라고 하면 최소한 이 책은 보고 와야지" 하는 것이었다. 미리 짜고 치는 화투마냥 사전에 필자가 약속하고 노인을 불러낸 듯해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새롭다.

 당시 팔십 중반이라는 농소 본토박이 그 노인은 “철모르던 시절부터 어른들이 귀향다방에 들고나는 것을 보면서 자랐다"라고 했다. 이를 근거로 치면 최소 해방 전후거나 아니면 1950년 한국전쟁 전후로 추정된다. 

정은영 울산불교문인협회장
정은영 울산불교문인협회장

 동해남부선은 전체구간이 부산진역에서 포항까지다. 호계역은 일본이 동대산과 무룡산에서 벌목한 목재와 곡창지대인 농소 신답들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전쟁물자로 수탈하기 위한 목적으로 1922년 10월 25일 조선총독부 관할 보통 역(驛)으로 영업을 개시했다. 그러다가 1950년 3월 10일 무장공비의 기습으로 역사(驛舍)가 소실됐고 1958년 8월 8일 역사를 개축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역사(驛舍)가 소실되고 새로 지어질 때까지 이 다방은 역 대합실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모든 것은 추정뿐이지만 그렇게 따져보면 2022년 기준해서 그 세월이 80년이다. 

 “만약에 그 추정이 사실이라면 귀향다방은?"

 입이 딱 벌어진다. 문헌상으로 남아있지는 않아도 울산 최초 근대다방이라고 하는 시내 성남동 동아약국 맞은편 신천지다방보다 개업이 빨랐다는 이야기가 된다. 1950년대 이미 이 다방이 영업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정은영 울산불교문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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