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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국 청하문학중앙회 이사·시인
정형국 청하문학중앙회 이사·시인

인간이 지구상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지금부터 약 300만~350만년 전으로 알려져 있다.

 최초의 인류는 아프리카에서 화석이 발견된 오스트랄로피테쿠스였다. 이들은 살기 위해 나무 열매를 따 먹고 동굴에서 생활하였다.

 오로지 생명을 이어가기 위한 수단으로 밤과 낮을 이어갔다. 이들도 어떻게 보면 생명유지가 행복이었을 것이다.

 인류 문명이 발달해 갈수록 행복의 척도는 변화하고 이를 위해 많은 종교가 탄생했다. 사상가나 철학자, 예수의 탄생, 석가모니 부처님의 고행, 모두가 인간의 행복을 염원하는 길을 걸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종교나 사상철학 등의 자신의 마음을 맡긴다고 행복은 항상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종교의 자유, 믿음으로 인해 나약하고 인간의 생명이 행복으로만 흐른다면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을 거다.

 천재지변이 닥치거나 큰 재앙이 덮치면 힘없는 인간의 생명은 속수무책이다.

 그래서 태양이나 달, 돌 등의 소원을 비는 샤머니즘의 원시종교 모태가 됐다.

 당연한 인류의 참 지혜인지도 모른다. 초자연적 존재와 직접 교류로 길흉을 예언하고, 병, 치료 등을 고친다는 행위로 중앙아시아 북아메리카, 인도, 한국, 일본, 동남아시아 등에서 무속(巫俗), 무술(巫術), 무신(巫信)으로 아직도 성행하고 있다.

 이 모두가 행복의 길을 찾기 위한, 수단과 방편의 행위이다.

 지금도 우리는 새해 덕담이나 작은 인사에도 행복하십시오, 행복하세요, 행복이란 단어를 빼놓을 수 없다.

 행복(幸福)은 기쁘고 즐겁고 만족을 느끼는 상태, 그리고 풍족한 삶, 원하는 것을 이뤘을 때 이런 모든 행위가 포괄적 의미로 해당된다. 여기서 행복이란 한자를 풀이해 보면, 1900년 전 허신의 '설문해자'에서 행(幸)이란 길하다는 것이며 흉하다는 것을 면한다는 뜻이다(吉而免凶也) 길(吉)이라 하는 것은 선하다(善)는 뜻이다. 그러므로 행복이라는 것은 선하다는 것이며 흉한 것을 면하게 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조금 더 깊게 들여다보자. 결혼을 하지 못한 연인들은 상대자를 만날 때 행복을 느낄 것이다.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은 건강한 몸으로 변할 때, 맛있는 음식, 경치 좋은 곳으로 여행을 떠나던지 카페에 커피를 마실 때 어느 것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행복은 완벽할 정도로 다 숨어있다. 우리는 늘 행복과 동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부모님 몸을 받고 이 땅에 태어난 이상, 삶을 포기할 수 없다. 행복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 어느 누구 한 사람도 불행하기 위해 살아가는 이는 없다. 

 조금만 자신의 상황을 되돌아보고 살펴보면, 행복 덩어리임을 알 수 있다. 두 발로 걸을 수 있는 행복, 두 눈으로 볼 수 있는 행복, 듣고 냄새 맡고 느낄 수 있는 행복, 천하를 다 주고도 살 수 없는 행복을 우리는 까맣게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님들께서는 이 순간부터 자신을 회광반조(回光返照) 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당신은 이 세상을 어떻게 사느냐 하고 누군가가 물어본다면 나는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하고 답을 내릴 수 있길 바란다.

 행복은 저 강 건너 저 산 너머에 있는 것이 아니다. 행복은 신기루와 같아서 잡으려면 잡히지 않는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기 때문에 행복하다. 행복은 만들어가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가져다주지 않는다. 부모, 형제, 자식, 남편, 아내, 친구 모두가 예외다.

 오로지 자신만이 행복을 가져올 수 있다. 필자도 한때는 행복에 대해 고뇌해 보았다. 조용한 암자를 찾아 노스님께도 여쭈어보았다. 혼자서 명상과 가부좌도 틀어보았다. 행복(幸福) 이보다 더 좋은 말은 없는 것 같다.

 행복은 누구나가 원하는 단어다. 그래서 원하기 전에 내가 누리면 된다.

 러시아 작가 도스토옙스키는 흔히 사람들은 자기가 친구가 이웃보다 더 불행하다고 스스로 한탄한다. 행복은 누가 그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아야 하는 길임을 알아야 한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다.

 이러한 작가님들도 펜을 잡고 밤새워 고뇌에 시름하며 행복의 답을 얻기 위해 며칠 밤을 밤새워 지냈을지도 모른다.

 요즘은 현대사회가 물질만능주의로 팽배해 있기 때문에 오직 돈만 가지면 모든 것을 가진 것처럼 돼버렸다. 돈이 없으면 고통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활에 필요한 만큼 불편하지 않을 만큼 가지고 살아간다면 행복의 조건은 마련돼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인간은 욕심의 동물이라 가지면 더 많은 것을 갖기를 원한다. 아흔아홉을 가진 자가 백을 채우기 위해 하나를 가진 자의 재산을 빼앗는다는 속담이 있다. 너무 많은 욕심도 절제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행복을 맛볼 수 있다.

 좋은 차, 좋은 집, 명품으로 치장한 옷, 명품 백, 등등 최고의 상품을 선호하는 한국인의 사치와 낭비로 물들어 가는 우리의 현실에 행복의 조건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큰 것에 만족하는 행복보다 작고 소중한 것에 행복하고 전율을 느끼는 감동의 삶이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소욕지족(少欲知足) 작은 것에 만족한다는 사자성어이다. 만족은 행복이다. 작은 것 하나에 만족하며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지혜롭고 슬기로운 나날이 되어 살아가면 좋겠다. 정형국 시인·청하문학중앙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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