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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장세련
삽화. ⓒ장세련

밤이 늦도록 두 사람이 짜낸 계획이라는 것은 아주 단순했다. 안동에서 올라오는 군대를 막을 수는 없으니까 백두대간의 고갯길만 막아보자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끌어모은 무사들은 모두 산적으로 가장 시켜 죽령고갯길에 배치하도록 했다. 

 "지금 마구령에 있는 노각수라는 산적은 저쪽의 일급살수인 임영복이라 하는데 어떻겠습니까? 계유정난에 황보인 대감을 주먹으로 쳐서 죽인 자라 합니다. 함길도의 이징옥 장군을 제거하는 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합니다."

 "그런 자가 어찌 벼슬길에 있지 않고 살수로 남아 있는 것이지요?"

 "원래 사냥한 꿩은 주인이 먹는 법이오. 사냥개에게는 먹다 남은 뼈다귀나 던져 주는 법이지요. 더구나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도 잡아먹는다고 하지 않소."

 대군은 의미 있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적의 분열은 나에게 천군만마 같은 힘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잘만 하면 한 사람의 힘으로도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만약을 위해서 가지고 계시는 사발통문과 격문은 모두 안전한 곳에 보관하시던가 태워버리시지요."

 "알겠소. 이제부터는 신속하게 움직이고 비밀을 더욱 드러나지 않게 해야겠습니다."

 아까부터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듣는 사람이 있었다. 다름 아닌 시녀 김련이었다. 김련은 윤미가 온 뒤부터 심보가 완전히 꼬여 있었다. 자신은 밥을 짓고 빨래를 하는 외에 대군의 곁에 가까이 갈 수 있는 기회조차 잃어버리고 있었다. 거기다 윤미가 밤마다 대군의 방에서 같이 잠을 자는 꼴에 눈이 뒤집어졌다. 진작에 대군의 품에 안겨 만리장성을 쌓아야 할 것을 때를 놓친 것 같았다.

 윤미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나서는 순흥부의 관노인 급창이 더 노골적으로 김련에게 추파를 던졌다. 홧김에 급창에게 몸을 주어버릴까도 생각했다. 그러나 너무 성급하게 굴다가 일을 그르칠까 조심하고 있던 터였다. 배소의 들창문 옆에 바짝 붙어서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들은 김련은 가슴이 마구 방망이질 쳤다. 이건 분명 반역 모의가 분명했다. 자신은 언젠가 대군께서 대궐로 돌아갈 날이 올 것이라 막연한 기대감과 함께 분홍 꿈을 꾸고 있었다.  

 소문은 금세 산채 전체로 퍼졌다. 철기군이라는 말은 듣는 순간에 벌써 몸이 오그라들었다. 기껏해야 순흥부의 포졸들이나 보아왔던 사람들은 북방에서 오랑캐들을 상대로 싸우는 군사들의 모습을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그게 뭐 시래? 창으로 찔러도 들어가지 않는다며?"

 "창이 다 뭐야. 도끼로 내리찍어도 끄떡없다 하잖아."

 "그런 괴물이 왜 이리로 온대?"

 "글쎄 말이야. 진즉에 산을 내려갈 걸 잘못했나?"

 이선달은 술렁거리는 산 사람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애를 먹었다.

 "모두 잘 들어라. 철기군이 이리로 온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소문일 뿐이다. 설사 온다고 해도 걱정할 것은 없다. 우리는 이미 높은 곳을 차지하고 있으니 공격하기가 쉬울 것이다."

 이선달이 짐작으로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었다. 철기군이라 하면 온몸을 철갑으로 둘렀기 때문에 고갯길에서 활동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가파른 절벽 위에서 바위를 굴리면 감히 접근도 못 할 것이다. 이선달은 언양 무사들과 함께 철기군을 막아낼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말을 탄 철기군이라면 좁은 산길을 올라오는 것조차 쉬울 것 같지 않았다. 산길이 아닌 비탈길에서라면 오히려 몸을 움직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지금부터 적을 막아낼 준비를 할 것이다. 모두 무기를 내려놓고 목책을 세울 준비를 해라."

 이선달은 산을 오르는 길을 세 군데로 나누어 목책을 설치하도록 했다. 목책 위쪽에는 굵직한 나무를 굴리기 쉽게 토막 내어 쌓아놓았다. 굵은 바윗돌도 준비했다. 무기를 들고 직접 맞닥뜨리는 것보다는 자연물을 이용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모두가 나서 이선달의 지시대로 따랐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작업을 했는데 제법 그럴듯한 목책이 세워졌다. 정말 어지간한 힘이 아니고는 목책을 부수고 올라온다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산 사람들은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 생각하고 작업에 열심이었다.

 임영복은 온종일 산채에는 코빼기도 안 내밀었다.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고치령 쪽에서 어슬렁어슬렁 걸어 내려왔다. 산 사람들이 하루 종일 만들어 놓은 목책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다음날도 산 사람들은 부지런히 목책을 세우는 일에 매달렸다. 이선달은 임영복이 어떻게 하나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런데 아침을 들자마자 바로 고치령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이선달은 불러 세울까 하다가 내버려 두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나서서 지시를 내리려고 하면 자신과 충돌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사흘이 흘러갔다. 목책 세 개는 제법 튼튼하게 세워졌다. 아래로 굴려 보낼 통나무 동가리도 제법 많이 쌓아 놓았다. 이 정도면 한 번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저녁에도 임영복은 고치령에서 걸어 내려왔다. 이선달은 저녁을 마치고 일부러 임영복을 불렀다.

 "오늘 밤에는 나하고 이야기를 좀 나누어 보세."

 "그러지."

 임영복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자네가 보기에 어떤가? 이 정도면 철기군을 막아내는데 충분하지 않겠나?"

 "흐흐흐. 철기군이라고? 누가 그러던가? 철기군이 온다고."  김태환 작가 (월·수·금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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