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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장세련
삽화. ⓒ장세련

말을 마친 임영복은 다시 산채로 들어갔다. 산 사람들은 아까보다 더 술렁거렸다. 동쪽으로 가면 살 수 있다니 얼른 도망가는 게 맞지 않느냐고 떠들었다.

 "다들 들으시오. 정 살고 싶은 사람은 떠나도 좋소. 남아서 목숨을 바쳐 싸울 사람만 남으시오."  

 처음에는 서로 눈치만 살피더니 몇몇 사람이 무리를 지어 자리를 뜨자 모두 우르르 몰려갔다. 남은 사람은 언양 무사들 다섯 명과 두 사람이 고작이었다. 이선달은 남아 있는 두 사람을 보고 왜 같이 떠나지 않느냐고 물었다. 둘의 대답은 똑같았다. 어차피 죽을 목숨인데 동쪽으로 간다고 살 것 같지 않다는 것이었다.

 "사람이 태어나면  어차피 한 번 죽는 것인데 겁낼 필요가 뭐가 있겠습니까."

 "이곳에서 죽는 것도 괜찮을 것이오. 우리 모두 여기서 죽읍시다."

 "좋습니다."

 이선달을 포함한 여덟 명이 다짐하고 있는데 산채 안에 들어가 있던 임영복이 다시 밖으로 나왔다. 남아 있는 여덟 명을 둘러본 임영복이 입가에 웃음을 지었다.

 "남은 분들은 진정으로 대장부입니다. 내가 진심으로 여러분들에게 권하겠소. 이 자리를 피하던가 아니면 나와 함께 오히려 저들의 편에 서는 게 어떻겠소? 사실은 나도 저들의 속내를 알 수가 없소. 하지만 비참하게 개죽음을 당하지는 않을 것이오."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하지는 않겠소. 이제 나도 더 이상 매달리지 않을 테니 당신은 당신이 가고 싶은 길로 가시오. 저들의 앞잡이가 되어 올라와도 좋으니 여길 떠나는 게 좋을 것 같소."

 "그렇다면 여기서 기다려봅시다."

 임영복은 다시 산채로 들어갔다. 이선달은 언양 무사들과 산 사람 두 명을 데리고 첫 번째 목책으로 갔다. 목책은 산채보다는 한참 아래쪽에 설치되어 있었다. 여덟 사람이 목책에 막 도착했을 때였다. 산 아래쪽에서 바람이 불어오는 듯한 느낌에 눈을 비비고 아래를 응시했다. 고갯길 가운데는 가벼운 바람에 흙먼지가 일고 있었다. 그런데 길 양옆의 비탈에 바람이라고는 하기에 다소 과장되게 나뭇잎들이 흔들렸다.

 자세히 숲을 살피던 이선달의 눈동자가 점점 커졌다. 숲속에서 파도가 일 듯 나뭇잎들이 움직이는데 알고 보니 군사들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수백 명의 군사가 산길 양쪽 비탈에 붙어 다가오고 있었다. 길 가운데에 세워놓은 목책은 무용지물이었다. 처음부터 길을 버리고 산비탈로 올라오는 군사들을 막아낼 방법이 없었다. 적들은 목책이 설치된 사실을 미리 간파하고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잠시 후에는 산비탈로 올라온 군사들이 오히려 거꾸로 목책을 둘러쌀 것이 분명했다.

 이선달은 급하게 산채마당으로 후퇴했다. 적들은 이미 이쪽의 동태를 모두 파악하고 있었다. 잠시 후에 산채의 사방 숲에서 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족히 이백 명은 넘는 군사들이었다. 여덟 명은 꼼짝없이 마당 한가운데에 갇히게 되었다.

11. 불타는 순흥
그 시간에 순흥부는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안동에서 올라온 한명청이 이끄는 군사들은 제일 먼저 배소에 있는 대군을 잡았다. 포승줄로 묶어 순흥부로 데려갔다. 순흥 부사 이보흠은 포박되어 끌려오는 대군을 보고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일이 이렇게 빨리 진행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대군의 생각대로 영남의 민심을 한데 모으기에는 시간이 더없이 빨랐다. 이렇게 된 이상 자신은 대군과는 다른 길을 선택해야 했다. 무엇보다 걱정되는 것은 자신이 작성한 격문이었다. 

 한명청은 육방관속을 불러 모아놓고 일장 훈시를 했다.

 "우리는 이미 모든 소식을 듣고 왔다. 순흥에서 반역을 도모하는 무리를 빠짐없이 가려낼 것이다. 순흥부에서 금성대군을 제일 많이 만난 자가 누구였더냐?"

 한명청의 호령에 모두 다리를 후들후들 떨었다. 제일 많이 만난 것이야 이보흠 부사지만 함부로 말할 수 없었다. 그때 군사들 몇 명이 봉두난발을 한 사내를 마당으로 끌고 왔다. 바로 양물이 잘린 김장복이었다.

 "이 자는 누구냐?"

 "감옥에 있는 걸 데려왔습니다. 자신은 죄가 없다고 떼를 쓰는데요."

 "어찌 된 일이오?"

 한명청이 이보흠에게 물었다. 

 "저자는 마구령의 산적입니다. 무고한 장꾼을 살해했습니다."

 "이노옴. 네 놈이 무고한 사람을 살해한 것이 사실이렷다?"

 한명청의 목소리가 순흥부 전체를 쩌렁쩌렁 울렸다. 그 소리에 놀란 것인지 머리를 땅에 떨구고 있던 김장복이 고개를 바짝 쳐들었다.

 "나리 소인은 정말 억울합니다요. 사람을 죽인 놈은 따로 있습니다. 아직도 마구령에 있는데 노각수라는 놈입니다. 그자는 얼마나 흉악한지 주먹으로 사람의 대갈통을 부숴놓는 놈입니다. 저는 이날 이때까지 무고한 사람의 뺨 한 대 때려본 적이 없습니다."

 말을 마친 김장복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바지를 벗었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모두 깜짝 놀랐다. 모두가 김장복의 사타구니를 쳐다보았다. 모두 자신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양물이 잘린 자리에 아직 상처가 아물지 않고 있었다. 모여 선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김태환작가  (월·수·금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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